메트로 밴쿠버의 시립묘지앞에서

제미나이에게 간단한 생각을 준후에 받은 글

by 김병태

1월의 끝에서 묻다: 당신의 영혼은 어느 무덤에 머물러 있습니까?

2026년의 첫 페이지가 벌써 끝자락에 닿았습니다. 1월의 마지막 날, 저는 메트로밴쿠버의 한 시티인 코퀴틀람의 시립 묘원 입구에 섰습니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잔디 위로 솟아오른 기념비와 십자가, 그리고 세 개의 깃대가 차가운 공기 속에서 저를 맞이합니다. 이곳은 육신의 마지막 안식처이지만, 역설적으로 저는 여기서 우리 시대 신앙의 '생존'에 대해 생각합니다.


1. 제도의 무덤: 전통이라는 이름의 낡은 비석

묘원에 나열된 비석들은 과거의 기록입니다. 훌륭한 유산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박제된 시간이기도 하죠. 우리의 신앙도 이와 닮아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우리는 종종 '전통'과 '관습'이라는 거대한 묘실 속에 예수의 정신을 가두어 버립니다. 생명력 있게 요동쳐야 할 말씀이 낡은 제도의 틀에 묶여 석판 위의 글자처럼 굳어버릴 때, 공동체는 영적 활기를 잃고 무덤처럼 적막해집니다. 옆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기 위한 공사 현장을 지켜보며 느꼈던 그 절박함이 이곳에서도 스쳐 지나갑니다. 허물어야 할 것은 허물어야 비로소 '새 부대'의 설계도가 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2. 다가올 사순절, '돌'을 굴려내는 40일의 여정

2월 18일이면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4월 5일, 우리는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것입니다.

예수는 무덤 안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쌓아 올린 종교적 결계와 죽음의 권세라는 가장 견고한 제도를 깨뜨리고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명확한 이정표를 남기셨습니다.

다가올 40일은 단순히 고난을 묵상하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영혼을 억압하고 있는 제도적 관습, 타성에 젖은 신앙의 무덤 문을 가로막은 거대한 돌을 굴려내는 '능동적인 해방'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3. 2026년, 갈릴리인의 식탁은 '무덤 밖'에 차려집니다

#갈릴리테이블12가 꿈꾸는 플랫폼은 죽은 자를 기리는 묘역이 아니라, 산 자들이 모여 빵을 나누는 광장입니다.

진리 안에서의 자유: 제도적 궤도에 묶이지 않고 예수의 말씀이 이끄는 대로 유연하게 움직이는 삶.


일상의 소망: 짙은 안개 속에서도, 얼어붙은 동토 위에서도 빛을 찾아내는 긍정의 힘.


동지와의 연대: 낡은 사고를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해 망치를 든 형제, 자매들과의 사귐

1월의 마지막 날, 무덤의 입구에서 저는 다시 신발 끈을 묶습니다. 죽은 전통의 숲을 지나, 살아있는 진리의 사거리로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2026년은 어떤 설계도로 지어지고 있습니까? 혹시 당신의 영혼을 가둔 익숙한 무덤의 평온함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돌을 굴려낼 시간입니다. 진리가 당신을 자유케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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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미나이에게 사진과 제 생각을 주어 만들어준 글입니다. 비서이자 협력자로서 갈릴리테이블이란 플랫폼을

만드는 과정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 산문식글에 강한데 제미나이는 보고서형식의 선언문으로 해주는군요. 그래서 낯설기도 하지만 마음에 들기도 합니다. AI 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며 새로운 운동을 펼쳐가려 합니다. 글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제가 검토하고 올리기에 저의 몫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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