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의 낡은 아파트옥상에서
아들이 사는 밴쿠버 아파트 루프탑에 올랐다가, 뜻밖의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그곳에는 1927년이라는 숫자가 선명히 새겨진, 1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딘 낡은 종 하나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처음 이 종이 만들어졌을 때, 그 소리는 마을 구석구석을 잔잔하게 울리며 사람들의 일상을 깨우고 위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화려한 도심 건물의 옥상 위에서 '옛날'을 상징하는 박제된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 낡은 종을 보며 우리 시대의 신앙을 떠올립니다. 어쩌면 우리가 믿는 예수는 화려한 교회 건물과 견고한 제도, 그리고 수백 년 된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박제'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요?
99%의 사람들은 그 박제된 예수를 관람하며 안도감을 느낍니다. 박제된 종은 시끄럽게 울리지 않기에 우리의 평안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명력을 잃은 종은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삶의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지 않는 예수는 더 이상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 이 낡은 종에게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어 울리기 시작하는 그림을 그려봅니다. 그 소리는 요란한 굉음이 아니라, 사람들의 굳어버린 마음을 잔잔히 파고드는 은은한 울림일 것입니다.
이 울림에 반응하는 이들이 바로 1%의 동지들입니다.
거룩한 의심: 낡은 시스템이 정답이라 말할 때, "이것이 정말 예수의 길인가?"라고 묻는 이들.
깊은 성찰: 유교적 기독교의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8복의 참된 의미를 삶으로 살아내고자 사투하는 이들.
본질을 향한 질문: 박제된 예수를 꺼내어 그의 말과 삶을 오늘 우리의 현실로 번역해 내는 개척자들.
박제된 전통 속에서 잠들어 있던 예수를 다시 우리 삶의 현장으로 모셔오는 일은, 멈춰있던 100년 된 종을 다시 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엔 쇳소리만 날지 모르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은은한 종소리가 1%의 동지들에게 닿을 때, 비로소 새로운 봄의 대지가 열릴 것입니다.
* 제미나이와 협업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