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한 여정에 있는 이들을 위한 헌정
아침이 밝아오네.
구글포토가 어제, 내가 걸어 다니던 해안가의 해지는 장면들과 해 뜨는 순간들을 한 번에 펼쳐 보여주었네.
파도 위로 흩뿌려지던 주황빛, 숨을 고르듯 천천히 떠오르던 태양, 그 빛 아래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네.
그 사진들을 보며 생각했어.
그때 나는 단지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빛은 이미 나를 위로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아무 말 없이,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를 비추어 주던 빛 말이야.
한편으로는, 제도와 전통 속에서 오랫동안 눌려 있었던 이들의 글을 읽었네.
규칙을 어기면 버려질까 두려워, 질문하면 믿음이 약하다고 낙인찍힐까 두려워, 마음을 숨긴 채 살아야 했던 시간들.
자유를 말하는 입술 뒤에, 실제로는 더 견고한 철문이 세워져 있던 공동체들.
그 글들을 읽으며 마음이 오래 무거웠네.
빛을 보기 위해 모인 곳에서, 오히려 빛을 가리는 벽이 되어 버린 현실이 안타까웠어.
그래서 오늘은, 그런 이들을 위해 기도하듯 글을 써 보고 싶네.
억압의 늪에서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이들, 자유의 길 위에 서 있지만 안개가 짙어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
그리고 언젠가 진정한 해방의 노래를 부르게 될 모든 이들을 위해서 말이야.
예수 안에서의 자유는,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허가증이 아니라
더 이상 죄의 목줄에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되는, 깊은 숨 같은 것이겠지.
사람의 시선, 공동체의 규칙, 지나간 실패의 기억이 나를 정의하던 자리에서
이제는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라는 음성이 나를 다시 불러 내는 자리로 옮겨지는 것.
그래서 그 자유는 언제나 누군가를 짓밟고 서는 승리가 아니라,
스스로 낮아져 다른 이를 일으켜 세우는 해방자의 얼굴을 하고 있을 거야.
나는 그 해방자의 모습을, 해질녘 바다에서 본 적이 있어.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서서히 사라지는 태양은
마치 “오늘 하루도 여기까지 함께 걸었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사람 같았지.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은
“어제의 어둠이 너를 삼키지 못했다고, 오늘도 새로 시작해 보자”고 조용히 말해 주는 것 같았고.
참된 자유를 가진 이의 얼굴은 아마도 그런 빛을 닮았을 거야.
자신이 지나온 어둠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어둠이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
상처를 품고 있지만 상처로 말하지 않고,
그 상처를 껴안아 주신 분의 사랑으로 말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해방자’라고 부르고 싶네.
쇠사슬을 휘두르며 또 다른 억압을 만들어 내는 가짜 해방자가 아니라,
자신이 먼저 풀려난 자리에서, 조용히 옆 사람의 사슬을 매만져 주는 사람.
누군가의 두려운 밤을 함께 지켜 주고,
“너는 잘못 온 것이 아니야, 여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속삭여 주는 사람.
오늘도 어딘가에서, 제도와 전통의 이름으로 눌려 울고 있는 이들이 있을 거야.
또 어딘가에서는, 오랜 억압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지만
한 번도 걸어 본 적 없는 자유의 길이 낯설어,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듯 서 있는 이들도 있겠지.
그들에게 이 아침의 하늘이 말해 주면 좋겠네.
“너를 가두던 문은 이미 열렸다고,
너를 붙들던 줄은 이미 끊어졌다고,
이제는 한 걸음씩만 옮겨도 괜찮다”고.
그래서 언젠가,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네.
나는 더 이상 두려움의 노예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숨 쉬는 사람이라고.
남을 통제하기 위해 믿음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상처 옆에 조용히 앉아 “너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노래해 주는 해방자라고.
오늘 아침,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 참된 자유의 빛이 우리 안과 우리 사이를 비추어 주길,
그래서 우리의 삶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작은 노래가 되길 소망해 본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