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는 !

사순절에 8복에 대한 생각을 담아서

by 김병태

밴쿠버의 수요일 아침, 사순절 세 번째 묵상 주제는 팔복의 “온유한 자”입니다.
저는 이 온유함을 친절의 범위를 얼마나 멀리까지 넓힐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이해해 보고 싶습니다.

1. 온유를 ‘친절’로 다시 읽어 보기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단순히 성격이 부드럽고 말싸움을 피하는 정도를 넘어섭니다.
온유는 힘이 없어서 조용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힘을 의도적으로 누그러뜨려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에 가깝다고 설명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온유를 이렇게 바꾸어 말해 보고 싶습니다.

“온유함이란, 나와 타인, 그리고 소외된 이들을 향해
얼마나 정교하고 일관된 다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결국 온유는, 내가 누구에게까지 친절할 수 있는지를 묻는 성품입니다.

2. 친절의 첫 번째 원: 나 자신에게

많은 사람들이 이웃 사랑, 공동체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놀랄 만큼 가혹할 때가 있습니다.

실수한 자신을 끝없이 몰아붙이고,
잠시 쉬고 싶다는 마음조차 “게으름”이라고 낙인찍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조차 친절하지 못한 마음에서
다른 이를 향한 온유함이 오래 유지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온유의 첫걸음은,
나를 향해 조금 더 다정한 눈길을 보내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완벽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나를 인정해 주는 것.”
심판 대신 이해의 언어로 나를 바라보는 것.

자기 자신에게 향한 이런 작은 친절이
이웃을 향한 친절의 씨앗이 되는 것 같습니다.

3.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두 번째 원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가족, 동료, 함께 사역하는 공동체,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이웃들.

낯선 사람에게는 정중하면서도
정작 집 안에서는 날카로운 말이 쉽게 나가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가깝다는 이유로, 오래 봐왔다는 이유로
우리는 이들에게서 온유함의 필터를 먼저 제거해 버리곤 합니다.

온유한 자가 된다는 것은,
“가까운 사람에게 더 무례해져도 괜찮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일상의 자리에서 가장 먼저 다정함을 연습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피곤한 하루 끝, 식탁에서 한마디의 감사 인사를 더하는 것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부모님께 조금만 더 귀 기울이는 것

동료의 작은 실수를, 예전의 내 모습으로 받아들이며 넘어가 주는 것

이런 작은 친절들이 모일 때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공기가 조금씩 부드러워집니다.

4. 현대판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에게

그러나 팔복의 온유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신명기와 예언서들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상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이들을 떠올려 보자면,

가족과 사회적 안전망 밖에 놓인 이들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된 소수자들

타국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막혀 부유하는 이주 노동자와 난민들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들을 향해, 나는 어디까지 친절할 수 있을까요.

온유함의 진짜 척도는
“나와 잘 맞는 사람,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만 다정한가를 넘어,
불편함과 어색함, 때로는 두려움까지 동반되는 관계의 경계 바깥으로
내 친절의 팔을 얼마나 뻗어 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5. 실천적 온유: 날 선 자아를 길들이는 일

문제는, 이 지점부터 온유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성향이 아니라
의식적인 선택과 훈련의 영역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배경, 다른 정치적 입장,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 앞에 서면
우리의 자아는 본능적으로 긴장합니다.
그 순간 튀어나오는 방어적 말과 표정,
이것을 한 박자 늦추고,
“그래도 먼저 듣고, 먼저 웃어 주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과정.

저는 이걸 “날 선 자아를 길들이는 작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SNS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보았을 때,
바로 공격적인 댓글을 다는 대신 한 번 숨 고르기'


'다른 문화권의 이웃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역사와 언어, 축제를 조금이라도 찾아보는 수고'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향해
“저 사람도 나처럼 사랑받아야 할 인간”이라고 한 번 더 마음속에서 되뇌어 보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쌓일 때,
우리의 친절은 점점 더 넓은 지대를 덮게 됩니다.

6.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약속의 의미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을 요즘의 언어로 이렇게 번역해 보고 싶습니다.

“친절의 품이 넓은 만큼, 세상도 그 사람의 영토가 된다.”

날 선 공격성과 두려움이 지배하는 마음은
세상을 끝없이 위험한 곳으로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부드럽게 열린 마음,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먼저 자리를 내어 줄 줄 아는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세상은 점점 더 많은 이웃과 풍경을 품은 공간이 되어 줍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는 말은
힘으로 정복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친절이 닿는 만큼
그 땅이 더 이상 낯선 적대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장소가 된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7. 이번 한 주, 나의 친절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사순절의 한가운데에서,
이번 주는 이렇게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얼마나 친절한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과 표정으로 어떤 공기를 전하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의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실천은 무엇일까


온유는 거대한 결심보다
하루에 한 번, 한 사람을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한 주,
나의 친절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그 지평을 조금 넓혀 보는 연습을 함께 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확장된 친절의 흔적 위에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약속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새겨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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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복의 생각은 저의 생각위에 제미나이와 퍼플렉시타가 글을 써주는 방식으로 협업하여 AI 를 활용중입니다. 저에겐 시간을 줄여주고 자료를 찾는 수고를 덜어주고 글의 내용도 자주 쓰다보니 저의 글쓰는 패턴을 점점 따라하는 중이라 유용한 도구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무료버젼만 쓰고 있어서 유료버젼이 얼마나 더 좋은지는 아직 경험을 못하였습니다. 프로작가들은 AI 의 표현을 넘어서는 창작이 필요하니 더 힘들겠다는 생각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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