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8복에 대해 생각해본다.
밴쿠버의 금요일 아침, 팔복의 다섯 번째 복이 떠오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요즘 세상을 보면, 서로에게 “안됐다”라고 말해 줄 여유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세계는 흔들리고,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유행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실패와 상처 앞에서 연민을 느끼기보다
“나도 버티기 힘든데, 저 사람은 왜 제대로 못 사나”라는 냉소가 먼저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게다가 사회 곳곳에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기존 시스템을 이용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린다’는 불신이 퍼져 나가면서,
약자를 향한 시선이 연민보다 분노와 피로감에 더 가까워지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럴수록,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 삶도 벅찬데,
타인의 아픔까지 품어야 한다는 말이
버거운 요구처럼 다가올 때가 있지요.
어제 인스타그램에서 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밴쿠버의 어느 버스 정류장,
휠체어를 탄 한 승객을 태우기 위해
버스 기사가 직접 내려와 여러 장비를 조정하며 돕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이 꽤 오래 걸렸는데,
사람들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채는 사람도, 짜증을 내는 사람도 없이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요.
그 영상 아래에는 한국인들의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여유가 없어서 저걸 못 기다려 준다.”
“예전엔 시설만 갖추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진짜 문제는 ‘마음의 여유’였다.”
라는 글들을 읽으며,
저도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떠올랐습니다.
공항에 마중 나온 선배들,
집을 구할 때 보증을 서 준 잘 알지도 못하던 이,
의료보험이 없던 어머니를
아무 조건 없이 치료해 준 패밀리 닥터까지.
‘시스템’이 나를 도와준 것도 있지만,
결국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건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됐다라는 마음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많은 긍휼을 입으며 살아왔습니다.
– 언어도 문화도 서툴던 이민 초기,
공항에서 “잘 왔다”고 웃어준 선배들의 얼굴.
–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나를 처음 알았음에도 기꺼이 보증을 서 준 사람.
– 의료보험이 없어 난감했던 상황에서,
“그냥 치료하겠습니다”라고 말하던 의사의 목소리.
이런 기억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해집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들이 내게 베푼 친절이
얼마나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었는지,
얼마나 귀한 마음에서 나온 결정이었는지.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들이 내게 보여준 것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구체적인 행동이 된 모습”이었다는 것을요.
그래서인지,
나도 누군가를 보며 안됐다라는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작게라도 행동으로 옮기고 싶어집니다.
큰일은 아니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받았던 긍휼의 향기가
조금이라도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은,
그들이 언젠가 하나님께로부터도 긍휼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일수록
다른 이들을 불쌍히 여기게 된다.”
긍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동정이 아니라,
“나도 약하고,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버틸 수 없었다”는
기억에서 비롯되는 감정입니다.
내가 이미 많은 긍휼을 입었다는 사실을 기억할수록,
다른 사람의 부족함이
조금 덜 얄밉게 보이고,
조금 더 안쓰럽게 보이게 됩니다.
안됐다라는 마음이 그때부터 다시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퍼져 나갑니다.
누군가의 작은 양보 하나가
또 다른 누군가의 여유를 낳고,
그 여유가 다시 또 다른 친절로 이어지는 것.
이 선순환이 바로,
오늘의 복이 세상 속으로 번져 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기도해 보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먼저
당신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가진 것, 누리는 것,
이곳에서 누렸던 친절의 기억들을 잊어버리지 않게 해 주세요.
그리고 누군가를 보며
‘안됐다’라는 마음이 스치고 지나갈 때,
그 마음이 그냥 감정으로 끝나지 않도록
작은 행동 하나로 이어질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긍휼히 여기는 자의 삶은
세상의 모든 불의를 다 해결하는 삶이 아니라,
오늘 눈앞의 한 사람을 향해
내가 받은 긍휼을 조금 나누어 주는 삶일지도 모릅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안됐다”라는 마음을 끝까지 잃지 않으려는 것,
그 마음이 퍼져 나가도록
작게라도 행동해 보려는 것.
그 길을 함께 걸어 가는 모든 이들에게
오늘의 팔복이 조용히, 그러나 깊게
스며들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