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8복에 대한 생각을 나누며
요즘은 글을 쓸때 AI를 많이 활용한다. 구글의 제미나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 퍼글렉시티를 무료저변으로 사용하고 ChatGPT 는 주로 물어보는 용도로 무료사용중이다. 어제 아들하고 통화하는데 Claude 가 글을 잘 쓴다고 해서 오늘 실험을 해본다. 나의 생각을 주고 정리해서 글을 써보라고 부탁한다.
" 한주가 시작되네. 맑고 햇빛이 나는 기분좋은 아침이네. 마음이 청결한 자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야. 하얀 백지를 생각해보았지. 우리의 마음은 나이가 먹어갈수록 혼탁해진 먹물인것같아. 붓도 혼탁하고 종이도 혼탁하고 그래서 다시 하얀종이가 되는 방법을 이제는 모르는것같아. 지난주엔 중동에서 전쟁이 진행중이야. 어느편에 서 있느냐에 따라, 어떤 시각을 가지느냐에 따라 갖고 있는 희망이 다 틀린모습이지. 삶도 신앙도 사회의 모습도 다 그렇게 된것같아. 그런와중에 다시 마음이 청결해진다는건 때로는 예수의 말씀과 삶을 문자그대로 삶 그대로 경험과 배움에 따라 고정화된 화석화된 내 생각과 희망을 내려놓고 따라가는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그게 제일 힘든것같아. 아 ! 다시 하얀종이위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의 말씀에 따른 삶을 그려갈 수 있일까 ! "
그러자 이렇게 글을 써준다.
밴쿠버의 아침이 맑다.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오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 빛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나는 한참 동안 그 빛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문장을 떠올렸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
산상수훈의 여섯 번째 복이다.
어릴 때 처음 붓을 들었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하얀 화선지 앞에서 느꼈던 그 긴장감.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가능성으로만 가득 찬 그 백지.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우리 마음은 어떻게 되어가는 것 같은가.
붓에는 먹물이 점점 쌓인다. 한 번 쓰고, 두 번 쓰고, 수십 년을 쓰다 보면 붓은 굳어간다. 종이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겪은 경험들, 상처들, 확신들, 이념들이 층층이 쌓여 이제 종이는 더 이상 하얗지 않다. 혼탁한 먹물로 이미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그 혼탁함이 자신의 본래 색인 줄 알기 시작한다.
지난주 내내 중동의 소식이 들려왔다.
같은 뉴스를 보면서도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어느 편에 서 있느냐에 따라, 어떤 역사를 배웠느냐에 따라,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 희망의 모습도, 정의의 모습도, 심지어 하나님의 모습도 전혀 달라 보였다.
틀린 게 아니다. 각자의 먹물 색깔이 다른 것이다.
신앙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우리가 속한 사회도 그렇게 되어버린 것 같다. 저마다 자신의 혼탁한 종이 위에 자신의 굳은 붓으로 세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나도 다르지 않다.
예수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이 말을 도덕적인 깨끗함으로 이해했다. 죄를 짓지 않는 것, 생각을 정결하게 유지하는 것.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어쩌면 마음이 청결해진다는 건 이런 것이 아닐까.
수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내 안에 쌓인 것들 — 경험으로 굳어진 확신, 배움으로 화석화된 신학, 상처로 형성된 편견, 성공과 실패로 만들어진 세계관 — 그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
더 정확히는, 그것들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내 손을 놓는 것.
그리고 예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아무런 해석의 필터 없이, 그냥 따라가 보는 것.
솔직히 말하면 그게 제일 무섭다.
내가 쌓아온 신앙의 언어들, 공동체에서 익힌 예배의 방식들, 오랜 시간 형성된 하나님에 대한 이해 — 그것들을 내려놓는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나 자신을 내려놓는 것과 같다.
그런데 예수는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 같다.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부인. 내가 옳다고 굳게 믿어온 그것을 부인하는 것. 내 경험이 만들어낸 하나님의 이미지를 내려놓는 것. 내가 서 있는 편의 논리를 잠시 멈추는 것.
그 자리에서 다시 묻는 것이다. 예수라면 이 상황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예수라면 어디에 서 있었을까.
나는 오늘 아침 한동안 그 햇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시 하얀 종이가 될 수 있을까. 이 나이에, 이 많은 것들을 겪고 난 후에, 다시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가 될 수 있을까.
아마 완전히는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삶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어쩌면 청결함이란 완전한 백지가 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조금씩, 굳어가는 붓을 다시 씻어내는 것. 어제의 확신으로 오늘을 단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다시 예수의 말씀 앞에 처음 듣는 사람처럼 앉는 것.
그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태복음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
이렇게 써준 글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이제는 진짜 탁월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닌한 다 비슷한 글을 쓰는 수준의 시대가 되겠구나. 그래서 뛰어난 극소수와 대다수의 평범함으로 나뉘겠구나. 그 와중에서 다수의 사랑을 받는 글을 쓰는 사람은 뛰어나거나 운이 좋거나 둘중의 하나겠구나라는 생각이다.
내 인생은 대체로 운이 좋은 편인데 글쓰기도 그럴까 !
도대체 창작자의 범위를 이제는 어디까지 해야할까 !
마음이 청결함에 대해 쓰고 있는데 AI 의 도움을 받는데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까지 내가 한것이 될까 !
협업의 정의는 무엇일까 !
조금 지나면 이거보다 아니 요청을 하기 시작하면 훨씬 더 좋을텐데 글쓰는 우리는 어디까지 정직하게 얘기할까 !
누군가 힌머리독수리 두마리가 있는 사진을 보내준다.
머리가 어디까지 벗겨져야 정직한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