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생각해보는 8복의 의미
오늘은 비가 오는 날입니다. 화평케하는 자에 대해 생각하는데 영 생각이 안 나가는군요
그래서 오늘도 AI 에게 이렇게 부탁을 해봅니다.
" 비가 오는 날이네. 나의 무력감을 잘 보여주는것같이 우울한 비네. 화평하게 하는 자에 대해 7번째복에 대해 얘기하는 날인데 진도가 나가질 않네. 일상이나 전쟁이나 다 무력하잖아. 힘센놈은 지 마음대로 하고 잃을게 더는 없는 놈은 악으로 버티고 중재에 나설만한 나이스한 놈들은 사실 힘이 없어서 누구도 말을 듣지 않고 그래서 화평이란 단어앞에서면 그저 알아서 잘 끝내주기만을 바라며 무력한 느낌이 더 강한것 같아. 어떻게 화평하게 살지 참 ! 강한놈이 되야 하나 ! 약한놈인데 그저 순응하며 살아야하나 . 어중간한 위치에서 그냥 나이스한 척하며 무능한척은 안하고 살아야하나 ! 예수님말씀이 진짜 어렵긴하다 그래도 브런치용으로 다듬어서 써줄래 "
퍼플렉시티는 정말 긴 자료정리를 해줍니다. 너무 그럴듯해서 지루한 글이 됩니다.
마음에 안들어 다시 claude 에게 같은 글을 써주고 부탁합니다.
비 오는 날의 무력감, 그대로 담아서 써드릴게요. 오히려 그 솔직함이 브런치에서 가장 강한 글이 됩니다.
— 산상수훈 일곱 번째 복 앞에서
오늘은 비가 온다.
창밖을 보는데 이 비가 꼭 내 마음 같다. 무겁고, 흐리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는 비. 오늘은 산상수훈의 일곱 번째 복을 묵상하려 했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화평. 피스메이커.
이 단어 앞에 서면 요즘은 감동보다 무력감이 먼저 온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세상은 지금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힘센 놈은 자기 마음대로 한다. 국제법도, 여론도, 도덕적 호소도 — 힘 앞에서는 그냥 배경음악이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놈은 악으로 버틴다. 잃을 게 없으면 무서울 게 없고, 무서울 게 없으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이유도 없다.
그리고 중재에 나설 만한 나이스한 놈들, 그러니까 그나마 도덕적 권위가 있다는 사람들, 기관들, 나라들 — 그들은 사실 힘이 없다. 그래서 아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중동을 봐도 그렇고, 우크라이나를 봐도 그렇고, 우리 일상의 크고 작은 갈등들을 봐도 그렇다.
화평이라는 단어 앞에서 내가 느끼는 건 감동이 아니라 — 그냥 제발 알아서 잘 끝나주기만을 바라는 무력감이다.
그렇다면 화평하게 하는 자로 산다는 게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는 세 가지인데, 솔직히 다 별로다.
첫 번째, 강한 놈이 된다. 힘이 있어야 화평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 틀린 말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힘 있는 중재자가 평화를 만든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 힘을 얻는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잃는가. 그리고 힘을 가진 자가 화평을 원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두 번째, 약한 놈으로 그냥 순응한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살자.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가장 편한 선택이지만 — 그게 화평하게 하는 자의 삶인가. 그건 그냥 포기 아닌가.
세 번째, 어중간한 위치에서 나이스한 척한다. 갈등에 개입하는 척하지만 사실 아무런 비용도 치르지 않는 것. 좋은 말 하고, 양쪽 다 이해한다고 하고, 기도한다고 하고 —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무능한 척은 하지 않지만 사실 무능한 것이다.
나는 솔직히 세 번째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제일 부끄럽다.
화평하게 하는 자. 피스메이커.
예수님은 이걸 복이라고 했다. 근데 이 단어의 원래 의미를 들여다보면 더 무거워진다.
피스메이커는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peace-lover)이 아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peace-maker)이다.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다.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 평화를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용을 치렀다. 양쪽으로부터 욕을 먹었다. 한쪽에게는 배신자로, 다른 쪽에게는 적으로 불렸다. 편을 들지 않는다는 것은 양쪽 모두의 편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수님 본인이 그랬다.
십자가는 어떤 의미에서 가장 철저한 피스메이킹이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갈등 한가운데 자신의 몸을 던진 것이다. 강해서가 아니라, 잃을 게 없어서가 아니라 — 오히려 가장 많이 잃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하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 비용을 치르는 사람이다.
나는 오늘 이 비를 맞으며 여전히 무력하다.
중동의 전쟁을 멈출 수 없고, 주변의 깨진 관계들을 다 봉합할 수도 없고, 내 안의 갈등조차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
그런데 한 가지는 생각해본다.
어쩌면 피스메이킹은 거창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속한 작은 공동체에서 — 비용을 치르는 것. 편한 침묵 대신 불편한 말을 꺼내는 것. 내 편의 논리만 듣지 않는 것. 욕을 먹을 각오로 중간에 서는 것.
그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피스메이킹의 전부일 수 있다.
작고 보잘것없지만 — 그게 시작인 것 같다.
비는 여전히 온다. 그래도 한 주를 시작한다.
마태복음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고민을 담아 얘기하면 금방 글을 써주니 참 좋은 세상에 산다고 해야하나 !
아마도 내가 이런정도의 글을 쓸려면 몇시간 끙끙대었을텐데 ...
어제부터 생각이 진척이 안되 고민한다고 해주니 얘가 잘 정리해주니 개인이 증강되는 시기인것은 맞는듯하다.
이제부터는 창작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하나 ! 이 글은 몇 % 나의 몫이고 AI 는 몇 % 협업한것일까 !
나도 이럴진대 이제 인터넷에서 떠다니는 수많은 글들중 창작자의 고뇌가 담긴 글은 몇 % 가 남을까 !
다시 AI 한테는 자료만 찾으라하고 내가 글을 써야하나 ! 그런데 사실 나도 자료정리해서 쓰는거니 그게 그거 아닌가 ! 화평케하는 자처럼 글쓰는 문제도 이 시대에 어렵긴 마찬가지인듯하다. 어디까지 윤리문제인지도 헷갈리기도 하고 ... 그래도 화평케하는 자는 어려운 문제인데 얘가 잘 정리해주니 고맙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