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이재킹> 리뷰
4DX 영화를 처음으로 봤다. 안경 쓰고 보는 3D는 알겠는데, 4D는 대체 뭘까. 안경은 배포되지 않았다. 왜? 이건 특수 안경이 필요 없고 좌석이 요동치는 롤러코스터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하이재킹처럼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영화가 제격이다. 영화 시작 전 광고 시간에 맛보기를 먼저 보여주는데 깜짝 놀라 가방이나 팝콘을 떨어뜨릴까 봐 꼭 쥐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하자 영화를 보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영화의 경우, 4DX는 마치 내가 "이북으로 넘어갈 뻔한" 비행기 안에 있는 것 같은 실감에 한 몫했다.
한국이나 북한을 주제로 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다 들어는 봤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커다란 착각이었다. 하이재킹이라는 영화가 홍보를 시작하면서 나는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두 사건을 검색해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솔직히 말해 나에게는 다른 어떤 간첩사건보다도 더 충격이었다. 1970년 전후와 비교할 때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그만큼 "격세지감"으로 달라졌다는 뜻일 게다.
이 영화는 1969년 YS-11기 납북 사건과 1971년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전자는 북한 공작원에 의해 여객기가 북한으로 넘어갔다가 조종사와 승무원, MBC PD와 기자 등 전문직 11명을 제외한 승객 39명이 귀환한 사건이다. 후자는 월북한 형을 둔 강원도 주민이 사제 폭탄을 만들어 비행기 납치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강원도 고성 해변에 불시착했으며 이 과정에서 조종사가 폭탄을 몸으로 막아 사망한 사건이다.
영화는 주인공 태인(하정우)을 두 사건 모두에 연루시킨다. 1969년 사건에서는 납북된 여객기의 엔진을 공격해 요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군인이었고, 1971년 사건에서는 제대 후 부기장으로 탑승한 여객기가 납북당한다. 1969년 사건에서 태인과 함께 작전에 투입되었던 후배 최동철(김동욱)은 1971년 사건에서 태인이 조종하는 여객기를 격추하러 나와 조우한다. 첫 번째 사건에서는 태인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던 후배 동철이 두 번째 사건에서는 태인과 같은 선택을 한다.
태인은 1969년 사건에서 비행기 격추 명령을 거부하는 바람에 불명예 제대했는데, 이는 본인의 사수였던 해당 비행기 기장이 '추격하지 말(고 승객을 살려달)라'는 뜻으로 고개를 젓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물론 태인도 같은 생각이 스쳤고 비행기가 '이북'으로 가더라도 협상으로 사람들을 귀환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문제는 기장을 비롯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돌아오지 못했고 귀환한 사람들은 '이북'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으며 평생 시달렸다는 것.
그러면 대체, 강원도 주민이 왜 우리 여객기를 납치해서 "이북"으로 간단 말인가. 우리나라 영화는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외국 영화처럼 그냥 나쁜 사람은 없다. 나쁜 사람은 나쁘게 된 배경이나 이유,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범인 이용대(여진구)는 월북자 동생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학대와 차별을 받고 급기야는 아마도 간첩 검거 실적이 필요했던 경찰이 놓은 덫에 걸려 감옥까지 간다. 감옥에 간 사이 굶어 죽어 방치된 노모를 화장하면서 그는 형을 만나 "이북"에서 사는 게 낫겠다는 선택을 한다.
태인은 이용대를 마지막으로 간곡히 설득할 때 그의 인생을 "역지사지"하게 한다. ’이 비행기가 "이북"으로 넘어갔다 오면 승객 50명은 물론 그들의 일가 20명씩 1천 명이 너와 같은 간첩 혐의로 평생 시달릴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주인공 태인, 후배 동철, 범인 이용대 등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들을 통해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은연중에 깔고 있다. 군인으로서 사명을 다해 명령에 충성하고 민간 여객기를 요격할 것인가? 아니면 여객기가 납치를 당한 상황이므로 승객의 목숨을 살리는 편을 택할 것인가? 억울한 내 인생을 위로하기 위해 죄 없는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거나 다 같이 죽을 것인가? 아니면 나와 같은 억울한 사람이 더 생기지 않도록 나를 희생하는 편을 택할 것인가?
물론 이런 선택은 한반도의 분단, 지금은 잘 쓰지도 않는 용어인 '북괴'와 '이북'의 존재가 만든 서글픈 현실 때문이다. 심지어 1969년 사건에서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한 기장의 집안마저도 '빨갱이'로 낙인찍혀야 하는 처연한 시절이었다. 1971년 사건 승객들은 1969년 사건에서 억류된 사람들을 "반면교사"삼아 휴전선이 다가오자 신분증을 파기한다. 특히 군인, 경찰 등은 신분증을 잘게 찢으라고 승무원이 안내한다.
경찰이었던 할아버지는 '이북'에 가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납치범을 공격하는가 하면, 언어 장애를 가진 노모는 자신의 장애를 부끄러워하던 검사 아들의 신분증을 찢다 못해 삼켜 씹어버리고 손짓으로 말한다. "이북에 가도 엄마가 끝까지 너 지켜줄게" 그렇기에 기장이건 범인이건 승객이건 이 영화는 아직도 휴전 중인 한반도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에게 '그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야 마는 것이다.
비행기를 주무대로 하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묘미는 탑건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초반에는 탑건의 연습 장면을 보는 듯하고 후반에는 탑건의 실전 장면을 보는 듯하다. 다른 영화에 비해서 비행기라는 비교적 제한되고 좁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영화적 연출도 볼 만하다.
아쉬운 점은 캐릭터와 배역의 비중인데 특히 우리 두 주연 배우님이 많이 아쉽다. 두 분 다 열연을 하셨고 출연하는 영화를 챙겨볼 정도로 좋아하는 분이어서 더욱 그렇다. 범인 이용대 역을 맡은 여진구 배우님은 처음 빌런을 맡았다고 하는데, 글쎄, 빌런이라면 아주 밉거나 연민을 불러일으켜야 하는데 어느 쪽도 아니었다. 물론 그 잘생긴 분을 영락없는 시골뜨기 총각으로 주저앉힌 자체가 이미 엄청난 연기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것은 전반적인 비중이 주인공 태인을 맡은 하정우 배우님에게 지나치게 쏠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부기장인 태인은 총도 맞고 칼도 맞고 폭탄도 막고 착륙도 시키고 승객들도 안심시키고 범인하고 협상도 하고 혼자서 너무 많은 역할을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기장은 양쪽 눈을 공격받아 앞을 못 본 채로 무력해야 했고 이런 상황을 대비해 투입된 항공 보안관은 영화 내내 밧줄에 꽁꽁 묶여 있다가 마지막에서야 범인을 사살한다. 태인의 역할 중 일부를 기장과 항공 보안관에게 나누어 주었다면 전반적으로 균형이 맞으면서 빌런도 그 나름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아쉬움 때문일까. 영화는 개봉한 지 2주 남짓되었는데 곧 스크린에서 내려오는 모양이다. 얼른 짬을 내서 달려가 보고 온 이유다. 나름 재미있고 볼만하며 1970년 전후 한국의 실상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영화인데 관람 인원은 오늘 기준 117만 명이다. 흥행 성적이 영화의 진가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디 더 많은 분들이 보시고 이런 영화가 더 많이 제작되어 분단의 현실을 알릴 뿐 아니라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더 잘 살아가도록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