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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다 Oct 18. 2024

아들에겐 우산이 필요하다.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빨리 들어왔어?”

요즘 저녁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배드민턴을 치며 시간가는 줄 모르던 아이가 생각보다 이른 시각 집으로 들어왔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가 그 작은 머리를 떨구고 방으로 들어가 이내 울기 시작한다…


무슨일인지 영문을 몰라 이래저래 그 작은 속내를 들여다볼래쳐도 아이는 말없이 서럽게 울어버린다. 눈물콧물이 이내 범벅이 되어 뭔가 서러운 듯 한바탕 울음을 뱉어내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멈추고 싶은 울음소리를 끊어내지 못하는것처럼 들려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버렸다.


"무슨일인데? 밖에서 무슨일 있었어?"

이내 울음소리 반 하소연 반으로 웅얼거리는 아이의 말이 설움이 북받친 메아리처럼 귓가를 울린다.

"배드민턴 치고 있는데 여자애들이 나한테 욕하고 때렸어 이렇게~ 남군을 물리치자 하면서 여자애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배드민턴 채로 날 때렸다구… "

여자애들이 이유도없이 우리 아들을 왜 때렸을까 도무지 이해안되는 상황에 어리둥절한 나에게 아들은 또 억울함 가득한 얼굴로,

"근데 연우엄마가 와서 유리도 소중한 딸이고 선이도 예송이도 소중한 딸인데 나더러 나쁘게 굴면 안된다고 나한테 뭐라했어. 근데 왜 난 소중한 아들이 아니냐고!!!! 엉엉~~~~~"

처음엔 연우 엄마가 소중한 아들이라고 안해줘서 단순히 유치하게 질투나서 우는건가 싶은 마음에 피식 웃음도 나서 "울아들 엄마사랑으론 부족해? 왜 그런거 가지고 울어??" 했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기처럼 품속으로 파고들어 펑펑 울어버린다.


내심 속으론 그랬다. 이제 10살이나 된 사내녀석이 여자애들땜에 울기나 하고 받는사랑이 부족해 단지 말한마디 땜에 속이상해 이러는가 싶어 소심한 아들에 걱정이 앞서다가 문득 어린시절 내 모습이 떠올라 멈칫하고 말았다. 유전자의 힘이 무섭다지만 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던 외로운 어린시절의 나의 모습이 거울속에 투영된듯 생생히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렇다. 어린시절의 난 보수적인 집에서 그져 아들에게 쏠리는 그 관심이 내내 부럽기만 한 외로운 아이였다. 왜 할머니랑 부모님은 오빠만 챙기는건지, 나는 보이지 않는건지, 형제가 많은것도 아님에도 늘 뒷전인 나의 일상엔 어둡고 외로운 그림자가 따라다니는것만 같았었다. 그래서 소심했고, 눈물이 많진 않았지만 인정과 관심이 늘 고픈 그런 아이였었다. 


"사내녀석이 뭘 그런거가지고 그래! 그냥 신경쓰지마!!! 뚝!!!"

호기롭게 쿨내 진동하듯 내뱉었지만 아들의 설움은 사그라들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불속에 얼굴을 묻곤 “엄마가 가서 여자애들 혼내주라고! 왜 엄마는 아무것도 안해!!!"

소심한 복수를 꿈꾸는 아들에게 따끔하게 혼을 냈지만 한편으론 이런 문제가 생길때마다 그 “관계’에서의 논쟁을 피하기 위해 늘 아들한테 양보와 이해를 강요했던것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억울함을 온몸으로 호소하는 아들이 듣기를 바라며 거실로 나와 큰소리로 연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가만 안놔둘거야! 아주 그냥 누가 우리집 귀동이를 때리고 괴롭혀 응?” 

”왜 울아들한테 욕을 해 욕을!”


호기롭게 집안에서 흥분엄마 코스프레를 잔뜩하곤 집밖으로 나왔지만 누구라도 마주칠까 심장이 콩닥거렸다. 애들을 혹시라도 마주치게되면 물어봐야할지 피해야할지 머릿속이 꼬인 실타래처럼 복잡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그 찰나의 순간동안 수많은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을 필름처럼 지나간다. 


아이들은 나를 보자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어? 태민이 어디갔어요?"

"응 집에있지." (너희들하고의 일로 무척 속상해하고 있지)

그리고 아이들 문제에 전혀 개의치않는 무심한 태민이 엄마인냥 씩씩하게 걸어가는데  연우엄마가 와서 팔을 붙잡는다.

“태민이 뭐해요 태민이가 뭐래요?”

말문이 잠시막혔다. 그 찰나에도 뭐라도 말을할지 침묵할지 수없이 되물었다.

‘음..애들이 때렸다고…. ‘

"제가 늦게나와서 앞에 상황을 보진 못했는데 태민이가 욕을 하더라구요. 욕을….잘…하던데요? 씨……. 그리고 애들한테 바보라고… " 

나도 모르게 눈썹한켠이 찌푸려졌지만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그래서 제가 팔을 딱 붙잡고 연우도 우리집 귀한 딸이고 선이랑 예송이도 그집 귀한딸이라고 그렇게 나쁜말쓰면 안된다고 …했어요."

"아 네...." 짤막하게 대답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야하나 하던 차에 

"애들한테 무슨일 있었는지 물어볼까요?" 

연우엄마는 한사코 괜찮다는 나를 잡아끌어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따지는 어른처럼 보일까봐 피하고 싶었지만 연우엄마가 먼저 물었다. 


“태민이랑….. 무슨일이있었어?”

“내가 예송이랑 배드민턴 치려고 하는데 태민이가 자꾸 같이 치자고 하잖아. 난 정말 같이 치기 싫었다고! 그래서 내가 배드민턴 채로 이렇게 이렇게 때렸어 태민이를."

순간 연우 엄마는 무척 당황한것처럼 보였다.

“어머 니가 그래서 때렸어? 사이좋게 놀아야지… 어머 미안해요. 앞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아 진짜 같이치기 너무 싫다고!!!!!”


태민이가 불편하다는 것도 모르고 그 엄마와의 친분으로 방학때 여러번 아이들과 나들이를 가곤 했었다. 만나면 그런대로 어울리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도 집에오면 다음엔 연우랑 같이 안갔으면 좋겠다는 아이에게 이유없는 미움이 있나싶어 그져 무시하고 사이좋게 지내라고만 했었다.같이 있을때 이유없이 툭툭 치는 장면을 여러번 목격하고도 아이들 사이에서 흔한 장난이라고 치부해버렸다. 


아들한테 한없이 미안해졌다.

“음.. 연우야 너희들이 태민이가 싫으면 억지로 놀진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그래도 때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태민이도 아줌마한테는 귀한 아들이거든“

그렇게 한마디를 던지고 뒤돌아서 집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연우엄마가 허겁지겁 주변에 인사를 하고 아이들과 서둘러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일에 그져 감정만 충만한 울보같은 아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울아들 많이 억울했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한끝이 시려왔다.

그래 태민이 너도 엄마한테 얼마나 소중한 아들인데…다른집 딸들이 그런것처럼…

변명같지만 때론 양보하는게 배려하는게 미덕이라고 믿었던 어줍잖은 신념은 매번 하나뿐인 아들한테 양보와 이해를 강요하곤 했었다. 이전에 한번은 "왜 엄마는 다른엄마들처럼 할말 다 안하고 나한테 참으라고만 해!"라고 울부짖던 아들이 생각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집에 돌아와보니 아들은 이내 눈물을 거두고 자기를 구하기 위해 투사처럼 집을 나선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속상해도 나쁜말은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거친말은 하수들이나 하는거라고. 제법 쿨하게 대처하는 나름의 방법을 같이 궁리해보기로 했다.


난 여전히 마음이 껄끄러워 신랑한테 궁시렁거리고 있는 사이 내 핸드폰으로 들어온 연우엄마의 메세지를 태민이가 보더니 “엄마. 난 이거면 됐어. 연우엄마가 이렇게 엄마한테 문자보낸걸로 난 이제 괜찮아. 엄마가 나쁜일은 지나가면 다 잊어버리라고 했잖아. 이제 끝! 알았지?"


가끔 아들치곤 감성적이고 유리알처럼 여린마음으로  울다 들어오는 아들에게 쿨한 엄마 코스프레를 하면서도 어린시절 자신감이라곤 없이 소심해서 기센 아이들에게 치이기만 했던 나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춰져서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남들보다 큰 키를 닮지… 여린맘을 닮아버렸을까?


그럼에도 다행인건, 아들은 단순함의 정석을 타고 태어났는지 어린시절 나에겐 없었던 대담함과 고무줄 탄성보다 빠른 회복탄력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조금 여리면 어때. 오래품지않고 금새 지우개처럼 지워버릴수있는 그 능력도 같이주심에 문득 감사한 맘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들에게 필요한건 그닥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든 문제에 직면해서든 자신을 든든하고 지켜주고 있는 '엄마'라는 우산이었는지 모른다. 때론 아이처럼 응석부려도 못이기는척 안아주고, 아이들의 시시콜콜한 분쟁에서도 억울하지않게 늘 믿고 지지해주는 그늘막같은 부모가 옆에 있다는 믿음 이었던것 같다. 


어린시절부터 껌딱지처럼 쪽쪽거리며 키운 내 아이는 정말 나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 거울 속 어린시절의 나에게 해주고싶었 말들을 우리 아들에게 끊임없이 해줬던것 같다.

네가 외롭지 않길, 네가 상처받지않길 그래서 세상에서 어둠이 두렵지않은 햇살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건강하고 멋진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아낌없는 사랑을 해주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시절의 나'를 버리지못한 내 자신은 아마도 놓치고 있는 부분이 많았었던것 같다.


“엄마 지금 배드민턴 치러 나와줄수있어?”

어쩌다 한번 있는 아들의 부름에도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외면아닌 외면을 했던 내가 오늘은 기꺼이 운동복을 갈아입고 집을나섰다.

젤 친한 여사친과 둘이 경기를 하는내내 옆에서 쉴새없이 중계를 해줬더니 아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않는다. 해질무렵 오렌지빛으로 노을이 익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집으로 가는길, 친구와 꽁냥꽁냥 무심한듯 따스한 대화가 오가다 헤어짐을 뒤로하고. 슬며시 나의손을 꼭 잡고 집으로 가는길.

“와….엄마! 오늘 정말 최고의 날이였어!엄마도 진짜 재미있었지?”

“그럼! 엄마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들이랑 같이 시간보내서 진짜 짱이었어!

땀에 흠뻑 젖은채로 상기된 아들의 웃음과 꼭잡은 손이 가슴한켠에 따뜻한 온기를 채운다.

벗꽃잎을 흔들며 지나가는 밤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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