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와인 식문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와인”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양식이라든지 고급주류, 고급문화를 떠올리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연출하는 와인의 이미지는 대체로 화려한 배경 속 소위 상류층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와인 잔을 나누며 비즈니스를 이야기하고 있다든지 넓고 좋은 집에서 성공한 남성 혹은 여성이 혼자 와인을 음미하고 있는 장면들 따위다. 이렇듯 와인을 성공, 로맨틱 또는 격식 차린 고급의 이미지로 연출하는 영상들 덕분에 다양한 매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우리의 머릿속에는 그들이 와인을 연출하는 대로 각인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와인을 주로 기념일이나 축하할 일이라거나 분위기 잡는 용도로 자주 사용하며 소비한다.
그러나 나에게 와인이란 그저 서양의 “소주”다. “소주”는 한국인이라면 가장 익숙하고 친밀감이 느껴지는 서민의 술이 아니던가. 와인 역시 유럽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그들의 술이라고 보면 된다. 단지 서양과 동양으로 구분되어 문화가 달랐을 뿐이다. 홍대, 연남동, 건대 입구, 강남, 신림 등등은 다양한 연령대별로 주류문화를 즐기는 가장 대중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상권들이다. 그 상권에 가서 가게들을 들여다보면 모든 테이블에 소주잔과 소주병이 놓여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인들은 저녁이면 꼭 와인을 곁들여 저녁 식사를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내가 저녁에 반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유럽의 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면 낮이든 밤이든 밖의 테라스나 심지어 공원에서도 와인을 먹고 있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한 손에 와인 잔을 들고 광장에서 버스킹하는 노래에 맞춰 춤추는 풍경도 볼 수 있다. 와인은 서양에서 단지 “식문화”의 한 부분일 뿐이다.
2021년, 와인은 현재 한국에서 대중적인 주류 식문화로 자리잡혔다. 와인을 낮에 먹는 낮술 문화가 생김에 따라 정오부터 여는 와인바를 흔히 볼 수 있으며 와인 바틀샵을 기반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도 생겼다. 한국의 외식 트렌드를 알고 싶다면 대기업들을 보면 파악하기 쉽다. 와인의 대중화를 일찍이 파악한 대기업들은 “오늘 와인 한잔”, “와인 주막 차차”라는 와인 프랜차이즈를 선도했고 “오늘 와인 한잔”만 해도 서울 주류 상권들에서는 꼭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와인은 대형 마트나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서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와인 바틀샵보다는 맥주 바틀샵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와인 바틀샵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양상을 보면 짧은 시간 동안 한국에서의 와인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동시에 한국에 빠르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이러한 양상을 통해 와인을 ‘한국의 주류 식문화’ 라고 하기에는 다소 과장된 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와인이 한국의 주류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라고 언급한 이유는 COVID-19 사태로 인한 영향이 크다. COVID-19 사태 이후 와인바에서 와인 딜리버리 서비스가 대중에게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고 간편한 캔 와인, 컵 와인이 대중화됨에 따라 집에서 와인 파티를 즐기는 일도 많아졌다. 혹은 COVID-19 사태 이후 실내보다는 야외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고 그에 따라 한강에서 와인을 먹을 수 있는 한강 와인 패키지라든가 플라스틱 와인 잔도 생산되었다. 오히려 밖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술을 먹을 수 없는 제한된 주류 문화가 와인의 대중성에 힘을 실어준 격이 된 것이다. 더 이상 와인은 ‘고급’의 이미지가 아니다. 한잔에 2,900원이라는 문구를 내건 가게들이 즐비해 있고 집에서도 편히 와인을 즐기며 20대 초의 젊은 소비자층도 소비하는 대중적인 한국의 주류문화가 되었다. 즉, 와인은 더 이상 소비성의 외식 트렌드가 아니라 자리잡힌 하나의 주류 식문화라는 것이다.
와인이 본격적으로 대중화가 되면서 다양한 와인 페어링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파스타, 스테이크와 같은 양식을 취급하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선보이는 곳이 일반적이라면 한식에 동남아의 다양한 향신료를 가미한 퓨전 한식, 한식을 이용한 와인 플래터 심지어 코리아 그릴 다이닝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다소 값이 나가는 고깃집에서도 와인 리스트라며 와인을 취급하는 곳을 자주 볼 수 있다. 와인과 한식을 페어링하는 곳이 늘어감에 따라 와인은 더 이상 서양만의 식문화일 수 없다. 즉, 한식과 와인의 조화는 한국의 독자적인 와인 문화를 생산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인들은 능동적 먹는사람으로서 한식과 와인의 다양한 페어링을 찾아가고 있다. 솥밥과 와인, 분식과 와인 심지어 청국장과 와인도 매우 잘어울리는 조합이다. 솥밥과 와인을 페어링하고 분식과의 와인의 조화는 이미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있고 그러한 페어링바도 존재하고 있다. 가만히 다른 나라에서 넘어오는 타 문화권의 식(喰)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국의 식문화와 더불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서 한국인들은 계속해서 자국의 식문화를 앞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또한 현재 한국의 와인 문화는 “내추럴 와인”이라는 또 하나의 트렌디 토픽이 대중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단지 이렇게 와인을 “소비”만 함으로서 와인 문화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지 묻고 싶다. 그저 하나의 주류 문화로 놔둘 것이냐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는 차별적인 “한국의 와인 식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한 발 더 앞서나아가야 할 때가 오지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때문에 오늘도 필자는 여느때와 같이 와인셀러들에게 묻는다. "오늘은 무슨 와인이 들어왔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