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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적북적 Nov 06. 2018

내가 중년에 대해
기록하려는 이유

중년, 잠시 멈춤


지금 신체, 정신, 감정에 일어나는 엄청난 변화를 일련의 사진으로 기록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중년에 접어들어 기습 공격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을 있는 그대로 토해내고 싶다.


<중년, 잠시 멈춤>




친구는 인생의 후반기로
접어들자마자
자신이 인생 전반기에 이룬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는 것 같다며,
중년이란 나이에 비틀거렸다. 



친구가 말했다. “내 생각엔 정신적 폐경이 더 힘든 것 같아. 학교, 직업, 집, 아이들, 심지어 중요한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여태껏 내가 선택해온 모든 것에 대해 갑자기 다시 생각하게 되고 바꾸고 싶어지는 거지. 하지만 이제 다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바꾸기가 쉽지 않잖아.” 그 친구는 인생의 후반기로 접어들자마자 갑자기 세상이 후진 기어로 바뀌면서 자신이 인생 전반기에 이룬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는 것 같다며, 중년이란 나이의 대담한 공격에 비틀거렸다. 물론 남성이라고 ‘정신적 폐경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중년기 남성은 흔히 직장, 사회적 위치, 공적 역할에서 여성보다 안정적이라서 세월의 공격에도 보다 굳건하게 버틸 수 있는 발판 위에 서 있다. 




시간의 흐름과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을 마음속에 그려볼 때 떠오르는 이론이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와 나일스 엘드리지가 제시한 단속평형이론이다. 이것은 본래 데본기나 캄브리아기 같은 특정한 지질 시대의 화석 기록을 증거로, 급격한 변화에 의해 새로운 종이 갑자기 출현하면서 진화가 일어났다고 설명하는 이론이다. 굴드와 엘드리지는 급격한 변화에 의해 종이 확산된 증거를 자세히 살펴보고는 진화의 방향이 빙하기 같은 기후 변화에 따르거나 단조로운 속도로 진행되는 과정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나이 듦은 막을 수 없는 놀라운
변화들이 들끓어 오르고,
갑작스럽게 파괴적인 맹렬한
공격이 시작 되는 것과 같다.


오히려 진화는 자연의 지속적인 상태에 무리하게 개입하여 변화를 초래하는 충격 요법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런 이론을 한 개인의 일생에 축소 적용해보면, 나이 든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설명된다. 나이 듦은 막을 수 없는 놀라운 변화들이 들끓어 오르고, 갑작스럽게 파괴적인 맹렬한 공격이 시작 되는 것과 같다. 설상가상으로 그런 변화들이 우리 주변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몸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워지지 않는 잉크처럼 우리 몸에 흔적을 남긴다.




놀랍게도 중년이라는 것이, 혹은 중년이 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에 대한 글이 아직까지 많이 나오지 않았다. 1970년에 시몬드 보부아르가 나이 드는 과정과 노인들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현상에 대해 학문적으로 진지하고 감정적으로 솔직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침묵의 공모’라는 표현을 썼던 것처럼, 45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중년이라는 주제는 다들 쉬쉬하는 문제처럼 보인다. 



특히 폐경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논의가 적다. 농담 정도로 거론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 문제를 얼마나 도외시하는지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폐경기에 자신들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런 일이 일어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런 증상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폐경기 이후에 어떤 삶을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내가 이제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개인적인 고백이다. 모두가 내 얘기에 공감하고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얘기 중 많은 부분 이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에게만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하지만 나와는 비슷하지 않은, 특정한 인구통계 집단 밖의 사람들을 배제하는 장벽을 세우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나와는 다른 독신, 미망인, 흑인, 아이가 없는 여성, 레즈비언, 장애를 가진 여성들을 포함해서 어쩌면 남자들까지도 내 이야기에 공감하고 타 협점을 찾기를 바란다. 그래서 남편에게 출산 전의 모습을 찍어달라고 부탁했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쉰이라는 나이에 접어들면서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적어나갔다.




길을 가다 시들기 직전의 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꽃잎의 바깥쪽 가장자리는 이미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고, 꽃의 형태를 잡아주는 꽃받침은 힘없이 시들어가고, 꽃잎은 떨어지기 직전이지만, 그래도 사실 그 꽃은 삶과 죽음의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아름답기도 하다. 찰나의 순간을 사이에 두고, 활짝 피었을 때의 아름다움을 여전히 간직한 동시에 막 스러지기 시작한 모습도 갖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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