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음악으로 행복해지는 여행들
그런 노래들이 있다. 듣고 있노라면 미지의 세계, 혹은 크고 설레는 무언가가 내 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노래들. 이런 노래들을 들으면 돌아오기 힘든 긴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든다. 북유럽의 대자연을 마주하고 들으면 좋을 만한 노래들이라고 하면 좀 적절할까. 참 좋다.
유럽 여행을 다닐 때 노래를 참 많이 들었었다. 주로 에피톤 프로젝트의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앨범을 많이 들었다. 딱 그렇게 작곡하지 않았을까 하는 곡들이 많아서 여행과 잘 맞는 음악이었다. 나는 주변 환경에 맞춰 듣는 음악을 선곡하는 편이다. 구체적인 상황까지 맞춰서 음악을 선곡하기도 한다. 예를들자면, 7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너는 순간, 아침이기에 해가 지하철 안으로 멋지게 들어오는 순간에 듣고 싶은, 아니 들어야만 하는 음악은 척 맨지오니의 Feels so good. 이런 식이다.
사실 음악을 그렇게 많이 깊게 듣진 않기에 선곡의 한계는 있지만, 그 안에서 나름 잘 맞추어 고르며 듣는다. 요즘은 각종 스트리밍 앱 덕에 보물 같은 아티스트들을 발견하는 것이 참 감사하다. 들어보고 싶은 음악이 쌓여있는데 각 곡당 3분씩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울만큼.
여행과 음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거리에서 만나는 악사들은 그 도시를 더욱 더 특별하게 해 준다.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만났던 남녀 혼성 듀오, 맨해튼 첼시 마켓에서 만났던 첼로 연주자-심지어 앨범까지 샀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만났던 아일랜드 전통음악 밴드. 그 중에도 최고였던건, 네덜란드 레이든으로 놀러 갔을 때 만났던 빅밴드였다.
한창 내가 살던 도시, 위트레흐트의 날씨가 꾸물꾸물했을 때 친구가 사는 옆 도시 레이든으로 놀러간 일이 있었다. 놀러가자마자 어느정도 날씨가 개어서 레이든 구경은 다행히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더니, 다음날 아침 날씨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화창한 날씨가 되어 있었다. 티 없는 햇살에 공기는 조금 쌀쌀한, 쾌청이라는 단어가 날씨로 현신한다면 이렇겠구나.라고 느껴질만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주말이었기에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마켓에 구경가기로 했다. 옷을 춥지 않을 만큼 입고 나와 조금 가니 하나둘씩 모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켓의 시작 부분에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점점 안으로 들어가니,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주, 아주 익숙한 음악이었는데, 이를 편곡해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만드신 빅밴드가 연주하고 있었다. 그 노래는 바로 Earth, Wind & Fire 의 September.
이렇게 좋은 날씨에 이런 음악이라니. 정말 행복해서 벅차올랐다. 음악 영화 안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장면 덕에 그 날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티없이 맑았던 푸른 하늘과 날아오르던 비둘기들, 고개를 들면 보이던 교회 첨탐 끝에 걸린 하얀 구름 한 조각과 Earth, Wind & Fire 의 September.
그냥 내가 듣고 있던 노래에 대해서 짤막하게 쓰려다가 여행 에세이를 써버렸다. 뭐, 그 덕에 좋은 기억들을 떠올렸으니 만족이다.
앞으로의 여행들에서도 더 예상치 못한 음악들이 나에게 다가와주었으면 한다.
그날 들었던, 최고의 노래.
Earth, Wind & Fire - September
https://youtu.be/Gs069dndIYk
유럽 여행 많은 날들을 함께 했던 에피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 - 시차
https://youtu.be/10qJenNpFp4
처음에 말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들게 만드는 음악들.
김동률 - Cosmos
https://youtu.be/SO8KzAsomTo
웨일 - 어느 북극곰의 이야기
https://youtu.be/Vba_1J9mdbk
코마츠바라 슌 - Kujira (고래)
https://youtu.be/CHxLrMNK9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