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군인 출신 대통령이 서거하고, 공백을 틈탄 신군부는 쿠데타로 정권을 획득한다. 억압적인 군사독재정권은 집권에 항의하는 반대파를 분쇄하기 위해 폭력적 탄압을 자행한다. 수많은 시민이 끌려가고 죽임을 당했다. 공권력에 의해 행방불명된 이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 유해 발굴 작업은 계속된다. 사라진 이들의 어머니들은 광장에 모여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사십여 년 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일어난 아픔의 역사이자 1980년 대한민국 광주의 끝나지 않은 비극이다. 신기하도록 닮은 지구 반대편 두 도시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좋은 빛, 좋은 공기〉는 1980년을 전후한 군부독재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치유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임흥순 감독은 미술과 영화라는 언어로 굴곡진 한국의 근현대사 속 시대와 공간을 넘나든다. 그의 영화는 맨몸으로 짊어진 모진 풍파에 역사가 된 개인의 파편을 잇는 매개체였다. 언제나 국가와 사회의 폭력에 잊히고 외면받은 이들의 미시사와 그 안의 슬픔을 조망했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5.18 민주항쟁과 아르헨티나 군부독재를 엮어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국가폭력으로 자상을 입은 행방불명자와 생존자, 유가족의 삶을 담았다.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이미 알고 있는 한국의 관객에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억은 아리도록 익숙하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정권을 잡은 군부는 권력을 이용해 조직적 테러와 고문, 학살을 이어간다.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는 이 만행으로 학생과 기자를 포함해 페론주의를 옹호하는 운동가와 동조자를 합하면 최대 3만 명이 실종되었거나 살해된 것으로 추정한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군부는 ‘죽음의 비행기’로 시신을 바다에 던지고, 인적 드문 묘지에 집단으로 암매장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오래전 독재정권은 물러났고 민주 정부가 들어섰지만 실종자의 가족들은 여전히 거리에 나와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로 41년이 된 광주의 학살 역시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다. 무연고 묘지와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은 트라우마가 되어 일상을 감싼다. 언어와 공간은 다르지만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은 흑백의 스크린에 함께 모여 국가와 시대의 경계를 허물고 기억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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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빛’의 광주(光州, Good Light)와 ‘좋은 공기’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Good Air)를 경유하는 영화는 공간에 담긴 현재성과 정치성에 주목한다. 5.18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의 복원을 위해 천 일이 넘도록 천막농성을 이어 온 5월 어머니들의 바람은 잊혀가는 1980년의 역사를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세워지는 과정에서 절반 가까이 철거된 건물에는 더 이상 당시의 생생한 기록인 총탄 자국과 혈흔이 남아 있지 않다. 역사의식의 부재로 공전을 거듭하던 복원 사업 과정을 참다못한 유가족 어머니들은 청와대 앞에서 투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아르헨티나가 이해하는 공간을 지켜내는 방식과 의미는 주목할 만하다.
1976년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 한가운데 몰래 시민들을 감금하고 고문해 온 강제 수용소인 옛 해군기술학교 건물, 일명 ‘클럽 아틸레티코’는 현재 기억의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당시의 참혹한 실상을 보여준다.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복판에서 존엄을 잃고 고립되었던 당시 수용자들은 끔찍한 아이러니 속에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광주의 시민들이 느꼈던 공포의 기억이 총격 소리와 헬기 소리로 대표된다면 클럽 아틸레티코의 생존자들에게는 그것이 탁구공 소리다. 고문과 폭력을 자행한 군인들이 여유롭게 탁구를 하는 소리는 수용소에 갇힌 이들에게 더없는 두려움의 상징이 되었다.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지옥과도 같은 나날을 보냈다. 부모와 함께 수용소에 갇힌 아이들은 고아가 되거나 강제로 입양을 당했고, 몇십 년이 지나 진상이 밝혀져 원래 가족을 찾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이 죽음의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되 현재의 담론이 모일 수 있는 정치적 공론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공간으로써 기념하고 전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사려 깊게 이해한 결과다. 그래서 삶과 죽음이 공존했던 공간인 광주의 옛 국군통합병원 역시 비슷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영화는 학살과 실종의 역사를 간직한 두 도시를 삶과 죽음이라는 테마로 엮어 개인에서 도시로, 과거에서 현재로 확장한다. 영화에서 쓰이는 두꺼비와 쑥갓의 이미지는 평범한 누군가가 사라지고 죽어갔던 5월의 죽음 속에서도 깨어났던 생명력을 상징한다. 많은 이의 삶이 스러져 갔던 5월에도 자연은 말없이 생명을 틔우고 있었다. 5월의 도시에는 산란기를 지나 호수에서 부화한 두꺼비 떼가 서식지로 이동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그 와중에는 미처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 죽어가는 생명도 있다. 같은 땅 위로부터 죽음과 삶이 공존하듯 과거의 역사가 현재로 이어지며 학살의 현장은 생존자들의 목소리와 고고학자들의 손을 빌려 다시 살아난다. 10여 일간의 고립무원 상태에도 치안과 일상을 유지했던 광주 시민들의 담대함과 시민의식은 총칼을 휘두르는 혼란 속에서도 장을 열었던 대인시장의 쑥갓으로 증명한다. 국가의 폭압에도 시민들의 삶의 의지는 여전히 푸르렀고, 절대 포기하는 법 없이 끝내 목적지에 도달해 왔다. 또한 컴퓨터 그래픽과 VR을 이용해 두 나라의 청소년이 원격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동아시아와 남미의 미래세대는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와 아픔을 공유한다. 각자의 방식대로 구현한 연대의 메시지는 쓰라릴지언정 우리에게 기억해야 할 이유를 찾아준다.
임흥순 감독은 작품 전반에 걸쳐 외면받은 여성의 상흔을 주제로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역사와 시대정신을 어루만져 왔다.〈비념〉에서는 제주 4.3 항쟁의 ‘할망’들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폭력과 외면을, 〈위로공단〉에서는 산업화를 이끌었던 구로의 여공부터 감정노동에 신음하는 서비스직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를 견인한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았다. 〈려행〉은 탈북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최근작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이념과 신념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세 여성 독립운동가와 빨치산의 개인적 삶을 한 세기에 걸쳐 풀어낸 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로 재현하여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의 맥을 잇는다.
〈좋은 빛, 좋은 공기〉 역시 군부독재에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슬픔과 저항으로 역사의 곡절을 채우는 삶을 보여준다. 이름마저 비슷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오월광장 어머니회’와 광주의 ‘오월 어머니회’는 군부독재 치하에서 학살되거나 실종된 자식들을 위해 결성된 어머니들의 조직으로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오늘날까지 집회와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서로의 나라에서 데칼코마니처럼 잃어버린 자식을 위해 투쟁하는 어머니들은 사회가 부정하고 강요받은 침묵에 당당히 반기를 외친다. 광주의 어머니들은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에 맞서 소복을 입고 가혹한 폭력에 피 흘린 채 싸워 오늘에 이르렀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어머니들은 ‘얼마 못 가 울며 도망칠 미친 여자들’이라는 조롱과 혐오에도 그들의 예측을 보기 좋게 뒤집고 흰 머릿수건을 두른 채 40년 넘게 목요일마다 행진과 운동을 이어간다. ‘실패한 투쟁은 포기하는 투쟁’이라는 신념 아래 싸워 온 그들의 용기는 지금의 사회를 만드는 값진 유산이 되었다. 아르헨티나의 어머니와 한국의 어머니는 서로 다른 경험에 같은 인상을 전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평온한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투쟁과 가족이라는 두 개의 삶에 지쳐 쓰러지더라도 그들이 싸움을 놓을 수 없던 이유는 자녀의 죽음이 의문으로 남지 않기 위한 분노와 의지의 몸짓이었으리라.
광주의 빛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기도 어리석은 인간의 추악한 욕망으로 잠시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시간이 있었다. 광주의 생존자들은 독재 권력의 최루탄에 숨이 막혔고, 계엄군에 끌려가 살아남은 아버지의 트라우마로 번진 폭력의 악순환은 한 가정의 숨통을 틀어막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강제 수용소에 갇혀 채광창 하나에 의지하던 시민들에게 군인들은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꺼져 가던 생명의 빛줄기마저 무참히 짓밟았다. 하지만 죽음과 피로 얼룩진 역사가 일어났던 땅만큼은 변하지 않았다.두 도시의 고통이 스민 땅은 살아남은 이들과 죽어간 이들을 품어내며 치유를 향해 천천히 깨어난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또 다른 새로운 시련들이 역시나 같은 땅을 디딘 채 기다리고 있다. 오월의 광주는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학살과 군부의 억압에 저항하며 함께 연대한다. 내일 우리는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들의 저항과 국가폭력을 기릴 것이지만, 삼십 년 전 오늘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당연한 일이 질병으로 취급되었던 편견과 차별이 세상에서 삭제된 날이다. 또한 오 년 전 오늘, 우리는 자신의 성별만으로 일상의 생존을 위협받는 공포를 느껴야 했던 누군가의 죽음이 우연이 아닌 필연임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좋은 빛과 공기는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올지 모른다. 상처 받은 인간에게 상실은 흉터로 남지만 의문을 해소하는 치유의 한 과정이자 다가오는 고난을 버틸 힘을 건넨다. 이 땅에 역사를 기억하고 끝내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좋은 빛과 좋은 공기를 찾아서,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