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건 지금이었다. 나태해지는 마음. 현재의 삶과 태도로는 마음을 증명시킬 수 없을 때. 그런 순간, 그러니까 지금 같은 순간이 올까 봐 선언을 주저했었다.
아마도 초등학생쯤부터였던 거 같다. 마음속에 어렴풋이 언젠가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단일성으로 책을 내 보는 경험이 아닌 계속해서 글을 쓰는 작가, 직업인으로서의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렴풋한 마음이었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남몰래 가진 꾸준한 마음이었다. 단,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입하는 조건도 있었다. 혹여나 아무리 대박이 터져도 작가를 메인업으로 가지지 않을 것, 기존의 업을 꼭 메인 업으로 유지할 것. 이건 꿈이 오로지 쓰기에 대한 욕구이자 감정과 생각을 세상에 표출하고 싶다는 알 수 없는 마음이지 문학이나 어떤 학문에 대한 깊이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평생 몰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밑천이 금방 바닥날 거라는 예상에서였다. 그래서였는지 성인이 되도록 작가가 되기 위한 대단한 움직임을 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 비치는 일도 거의 드물었다. 단지 살다가 그런 타이밍이 오기를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라는 마음을 바탕으로. 사실 ‘브런치 스토리’라는 공간은 작가를 꿈꾸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던 나에게는 좋은 선택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시작하지는 않았던 건 지금과 같은 우려 때문이었다. 꾸준하지 못할 까봐, 그 순간을 맞이할까 봐 그리고 독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할 까봐. 그렇게 글이라는 존재가 죄책감과 같은 대상이 될까 봐.
남몰래 가지고 있던 글에 대한 갈증이 극에 달했다 생각했을 때쯤 주변에서 푸시가 왔다. 내 마음을 알지 못한 채 한 푸시였다. 우연이었다. 정말 우연이었지만 그 우연을 운명으로 가장시켜 '지금인가?'하고 몇 년을 망설였던 브런치에 작가 등록을 했다. 그리고 주변에 널리 널리 알렸다. 몰랐겠지만 몰래 숨겨두었던 꿈, 작가를 공개적으로 꿈꾸려 한다라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지금 우려의 상황에 다 달았다. 꾸준했던 글 업로드도 줄어들다 흐지부지한 상태가 되어있다. 죄책감의 대상이 되었다. 나이가 들 수록 삶과 현실의 농도가 짙어진 탓이다. 사색할 여유가 없어지고 부지런할 체력도 자꾸만 떨어지는 탓이다. '탓' 다 핑계다라고 누군가 평을 내린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글을 미뤄두었어도 똑똑히 세워지지 않는 삶을 무너지기까지 하도록 둘 순 없으니... 와 같은 죄책감을 희석시킬 반박을 해 본다.
그동안 여러 번 이젠 글을 써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죄책감일 때도 있었고 마음이 선선해서 일 때도 있었고 혹은 마음이 선선하지 못해서 일 때도 있었다. 브런치 등록을 주저했던 것처럼 뭐든 돌다리를 수십 번씩 두드리는 성격 때문에 뭘 시작하든 그 무게를 무겁게 여기는 편. 그렇다 보니 무게를 짊어지고 에너지를 모으다 현실에 정신이 뺏겼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여전히 글에 대한 마음이 떠난 건 아니며 쉽고 가볍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또다시 오래도록 주저하게 되었다는 점.
우리의 현실처럼 치열한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글을 쓰고 싶진 않다. 개수 혹은 공백기를 위해 토해내 듯 마구 써 내려간 글로 마음을 증명하고 싶진 않다. 꾹꾹 눌러 담아 올바른 글이 세상에 새겨지도록 고민하고 애쓴 글을 쓰고 싶다. 미약하고 미미하더라도 세상에 기록되는 생각의 영향력을 잊지 않으면서. 부디 누군가에게 그럴듯한 경솔한 말발로 흐리고 침침한 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우려와 달리 우려를 만났을 때 그다지 후회스럽진 않았다. 약간의 죄책감은 적당한 책임감을 실었고 브런치 스토리라는 공간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정감을 주었다. 그리고 꾸준하지 못한 글 생성에 대해서도 여유가 생겼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가둬버린 압박에서 탈출해 마음을 놓지 않았다는 것 또한 꾸준한 태도 중 하나로 인정하기로 했다.
글은 취미이자 꿈 혹은 직업, 놀이이자 진심 그리고 화풀이 대상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되 속 풀이 대상일 수는 있는. 그 정도, 그 경계에서 너무 많이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쓰이고 녹여지기를. 그렇게 오래도록 삶에 둘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