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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Jun 04. 2023

기계가 삶의 질을 높였나?

가전제품

   여고에 재학하던 고등학교 시절 꼰대 같은 국어 선생님으로 부터는 배움을 가질 수 없었다. 다른 과목 선생님들이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박사 출신이라고 추켜세워주셨어도 그랬다. 명색이 문학을 공부한 사람이자 문학을 쓰는 사람 그리고 오랫동안 여고에 근무한 즉, 수많은 여학생 제자들과 인생을 꾸려온 사람에게서 나온 몇 가지 발언으로 귀를 닫았다.  


    

   “엄마들 집에서 뭐하노. 맨날 티비보고 놀지. 빨래도 세탁기가 하고 청소도 청소기가... 요즘 다 기계가 하잖아.”          



   기계의 등장 그러므로 여자가 살기 좋아진 세상이라고 현세에 태어난 여자들의 팔자를 추켜세웠다. 본인 나름은 말이다. 하지만 본인 나름 여자를 세워줬을지 몰라도 내게는 스스로가 가진 여자에 대한 사상을 요령껏 잘 감추어 포장해 낸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맥락과 어투에서 그 내면에 들어있는 여자에 대한 해석과 태도는 당시 콕 집어 말할 수 없었지만 어딘가 여러모로 불편했다. 물론 그를 나의 교육자로 받아들이지 않은 건 여자에 대한 발언과 사상 뿐이어서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기계, 가전제품. 각종 기업들은 편리한 생활에 한몫을 더하기 위해 휘황찬란한 걸 다양하게도 만들어 낸다. 우선 집안 살림에 기본인 청소기, 세탁기, 냉장고만 하더라도 기능들이 천차만별인 데다 부수적인 물품으로는 건조기, 식기세척기, 음식물처리기 등이 살림에 편리를 더하고, 믹서기, 커피머신, 에어프라이기 등이 살림에 재미를 더하라고 유혹한다. 그리고 소비자인 우리는 이들을 우리 삶에 개입하도록 허용하는데, 그 이유에는 ‘삶의 질과 편리’를 기대하기 때문일 테다. 또 실로 기업의 발명 목적도 그러할 것이며 나 또한 그들이 그러한 기능을 할 거라 믿었었다.           



   우당탕탕.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딘가 성가시다. 역시 사람은 기대를 하면 안 돼. 이 실망스럽고 성가시기만 한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한 날, 동네 생활용품점에서 청소기를 대폭할인하기에 넙쭉 샀다. 좋은 가격에 청소기를 구매한 기분에 그를 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드디어 내 방에도 청소기가 생기는구나. 무엇보다 수월해질 청소를 기대했다. 고작 작은 집을 청소하면서 전생에 대한 속죄씩이나 떠올리는 인물, 청소는 정말이지 취향에 맞지 않는다 말하는 인물인 내가 청소기를 사 들고는 돌아올 청소 시간을 기대했다. 삽시간에 광이 날 걸 생각하니 입꼬리와 광대, 넓어질 듯 말 듯 움찔거리는 코 평수 그리고 심장까지 제 멋대로 활개를 쳤다. 자, 청소기를 돌려보자! 박스에서 청소기를 꺼내 조립을 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콘센트에 선을 연결했다. 그리고...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쿠당탕탕! 제대로 출발도 해 보기 전에 선이 근처에 있던 물건들을 휩쓸어 버렸다. 어쩐지 싸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아, 이거 쉽지 않네. 어쨌거나 저쨌거나 겨우 방을 활보하기 시작한 청소기는 생각보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무게는 자기주장을 굳건히 했고, 그를 이끌기 위해 몸에 들어가는 힘이 그가 없었을 때보다 더 드는 것 같았다. 그리 넓지도 않은 방에 사치스럽게도 로봇청소기 생각이 났다. 삶의 질을 높이고자 투자를 했는데 왜 여전히 청소 중 사치스러운 생각이 드는 건지. 마지막으로 청소기 전원을 끄고 필터기에 담긴 먼지들을 쓰레기 통에 버리려는데 그만 그 모든 먼지가 왈칵 바닥에 다 쏟아졌다. 쓰레기통으로 조준을 마치기 전 생각보다 빨리 필터기 뚜껑이 열려버린 거다. 그러니까 결코 가볍지 않은 청소기와 힘겹게 씨름하여 방을 다 밀고 그 먼지들을 다시 바닥에 버린 셈, 결국 여느 때와 비슷하게 수동으로 먼지를 끌어모은 셈이었다. 그러므로 청소의 구간 구간을 참고 견디며 희망을 걸고 걸다가 마침내 생각했다. ‘이게 맞아? 내가 바란 청소의 질. 이게 맞냐고...!’ 정말이지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청소기 요놈 어딘가 성가시다.  


        

   독립을 하면서 얻게 된 집안일 대부분이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아침시간 역시 큰 골칫덩이였다. 아침 허기를 채우는 일이 이토록 고민거리이자 번거로운 일이었다니. 이 문제를 요령껏 잘 해내기 위해 여러 가지로 서칭 하다 보면 주로 추천되는 일은 과일 혹은 야채를 믹서기에 갈아 마시는 일이다. 재료들을 아무렇게나 넣고 휘리릭 갈아 꿀꺽 마시면 얼마나 간편한가. 그렇다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믹서기는 정말 최고의 애정템일 테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아침이 아무리 바쁘고 허기가 져도 혹 다이어트가 너무 시급하더라도 절대로 취급하지 않을 예정이다. 만약 그를 취급하는 날이 온다면 그 믹서기는 아마 자동 세척 및 건조 기능까지 탑재된 똑똑한 녀석일 확률이 높다.          



   믹서기를 세척하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롭다. 칼날을 분해하고 씻어서 다시 조립하는 일은 물론이고 무겁고 깊은 통을 설거지하는 일은 차라리 가지 수가 많더라도 접시와 도마를 설거지하는 일이 훨씬 편하다. 또 접시와 닮지 않은 모양에 부피까지 큰 용기가 식기건조대에 자리를 차지하면 그 또한 애물단지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작은 사이즈의 믹서기는 어떤가. 그건 작은 만큼 과일과 채소도 더 잘게 썰어서 넣어야 하고 많은 양은 갈리지 않는다는 또 다른 단점이 발생한다. 사회초년 생이자 첫 독립을 한 내 룸메이트도 호기롭게 구매한 커피머신을 사용한 지 몇 달 만에 사랍장에 넣어두었다. 그 커다란 머신을 더 이상 꺼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굳이 묻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정답을 알 것만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커피 맛 깊이에 큰 애정이 없다면 집에서는 믹스커피가 최고다. 여러 면모에서 간편하기로는 믹스커피를 이길 자가 없는 듯하다. 고로 허기를 채우고 싶은 우리 집 아침은 끓는 물에 털어 넣은 믹스커피 한 봉지와 도마 위에서 칼을 이용해 깎은 과일을 접시에 담아 포크로 집어 먹는 행위로 채워진다.       



   가전이 가만히 두어도 제 기능을 하면 좋으련만, 세탁기고 냉장고고 청소기고 어느 것도 관리 없이 환상적인 건 없다. 그 관리는 결국 인간의 몫이며 그게 현시대의 살림, 집안 ‘일’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기에 청소기가 삶의 질을 높여주는 건 좀 더 디테일한 먼지를 청소해 준다는 점 정도인 거 같다(이 조차 추측이다.). 즉, 결코 몸이 더 편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나 같은 경우 오히려 한 번 더 일이 많아졌다. 부직포 밀대로 마른 부직포와 젖은 부직포로 바닥청소를 했다면 청소기가 생긴 이후 청소기 돌리는 행위까지 덤으로 얻었다. 또 부직포보다 무겁고 다루기가 쉽지 않기에 에너지가 더 쏟기는 것도 같았다. 다만 앞에서도 말했듯 보다 청결한 공간을 보장받는다는 점이 청소기의 기능이자 가치쯤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가치를 가치답게 얻기까지 훈련이 필요하다는 시실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청소기 그거 그냥 쓰윽 돌리면 될 것 같겠지만 그 또한 유려하게 다루기까지 시간을 가지고 요령을 쌓아야 하는 일이다. 적어도 집안일이 취향 혹은 체질에 안 맞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분명 그렇다. 그러니 쉽고 편리한 물건이라고 광고하는 영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저걸 저렇게 유용해지도록 능숙하게 쓰는 걸 보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아무리 편리한 세상이라도 알고 보면 살림기술은 전문직이자 기술직이다. 그냥 되는 건 없는 법, 무엇이든 끙끙거리는 시간이 필요한 가보다.



   이런 나의 성별도 여자인 것처럼 그 시절 우리네 어머니 그러니까 여자라고 모두가 집안일에 타고난 건 아닐 거다. 다만 시대가 정해준 역할에 의해 취향에 대한 존중을 받지 못한 채 훈련되었을 뿐일 거다. 이제는 ‘집안일은 남녀가 같이 해야 한다.’와 같은 말을 세상에 외치듯 발언하여도 그다지 진보적이거나 앞서 나가는 말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러니 바깥일과 집안일 두 가지를 비교하며 어느 것이 더 힘들다고 힘겨루기 할 일도 아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경험해보지 않고 쉽게 생각할 수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말에는 분명 집중력을 잃지 말아야 할 테다. (이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여 년쯤 된 지금에 와서 그 국어선생님을 통해 얻은 교훈쯤이 된다.)          



   그나저나 집안일은 여자의 몫도 여자가 갖춰야 할 필수적인 역할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살림을 잘하는 남성을 볼 때가 살림을 잘하는 여성을 볼 때보다 더 감탄스럽고, 이상적인 살림을 하지 않는 남성을 볼 때보다 이상적인 살림을 하지 않는 여성을 볼 때가 더 충격적이다. 또 살림을 잘하는 남녀가 방송에 좋은 소재로 소개가 되듯 살림을 충격 적으로 하는 남성역시 당당하게 방송에 나와 충격과 동시에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런 유형의 여성은 잘 떠오르지 않는 건 방송도 여성 출연자도 그 파장이 여전히 부담스러워서는 아닌지... 어쩌면 한 시대의 여성의 삶의 질과 그 가치를 높이는 건 가전이 아닌 시선일지 모른다. 아니, 비단 여성뿐일까. 현존하는 모든 장르의 가치는 도구보다 시선에 의해 탄생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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