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감정
갓 20대가 되고는 그동안 몰랐던 감정이 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또 이렇게나 많은 감정을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에 놀라기 바빴다. 아마 느끼는 세상이 급격히 커지면서 새로이 느껴야 할 감정 또한 급격이 많아지게 된 듯했다. 그리고 세상이 커진 만큼 함께 20대가 된 주변에서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들 중에는 10대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가지고 삶을 이끌어가기 시작한 경우도 꽤 많았다. 가장 가깝고도 가장 마주하기 어려웠던 '나'라는 크고도 알 수 없는 세상을 마주한 지금, 그들 중 10대 동안 의사표현에 서툴고 모든 걸 속으로 담아 삭혀내왔던 유형, 그 유형에 속한 두 명이 알을 깨고 나오기 시작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때가 유독 생각이 난다.
싫음도 좋음도 아무런 의사도 말하지 않던 한 아이는 싫은걸 싫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의견보다는 ‘좋다. 괜찮다.’라는 말들을 주로 하며 모든 걸 맞춰주던 아이도 자신의 취향을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 둘은 직설적이고 거칠게 한 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마치 서툰 표현 탓에 의도와 달리 거칠게 행동하여 친구를 울리는 어린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그동안 한 번도 표현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래서 자신의 의사를 부드럽게 말하는 법을 연습해 본 적이 없었던 거다.
“뱉고 나면 내가 놀라.”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들 역시 이 문제를 인지하고 고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과 달리 색깔이 진했던 나는 좋은 건 좋다 이런 건 불편하다고 표현하며 희로애락을 분출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취향 따위 말고, 오로지 내 내면의 약한 소리, 내면의 약한 감정 따위는스스로가 알아주지 않고 살았던 게 아닌가, 지난 날을 돌아본다. 과연 언제나 괜찮은 줄, 아프지 않은 줄 알지 않았던가. 씩씩하고 강한 스스로를 대단히 여기기씩이나 하면서 말이다.
/////<추가 요망>
이제 스스로의 진실한 감정을 깨우치고 그 감정 흐름을 잘 타보기로 했다. 스스로가 알아주지 않아 치유받지 못했던 감정들을 들어주고 아껴주려고 한다. 이제 오랜 시간 켜켜이 먼지 끼인 감정들이 조금씩 먼지를 털고 나오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렇다. 그리고 받아 내 본 적 없는 감정들을 받아내는데 서툰 내가 있다. 서툴게 흔들리는 내가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문제를 인지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대 초반 표현이라는 숙제를 얻은 둘은 지금 뾰족했던 모서리들을 예쁘게 깎아내고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로 근사하게 변화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마음을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드러내며 그것을 잘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작한 지금. 스스로를 위협하려 드는 날카로운 칼날이, 서툰 감정들이, 언젠가 탄력 좋은 뭉툭한 막대기가, 근사한 막대기가 되기를 바라는 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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