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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Sep 05. 2021

한때 우리 오빠들이 비밀인 이유

아이돌

   '어떤 연예인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참 쉽게 받는 질문이지만, 그때마다 '너무 많아서 모르겠어요.'라고 답하기 일수다. 어느 누구도 맹목적으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순간 번뜩 떠오르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열정이 식었는지 어떤 연예인도 깊이 좋아하지 않는다. TV에 나오면 멈춰 세우는 정도에서 그친다. 예전처럼 모든 스케줄을 다 챙겨보고, 기사를 검색하는 등 이름바 ‘덕질’은 하지 않게 되었다. 늙은 걸까?



   연예인에 대한 마음이 맹숭맹숭해진 지금과 달리 10대 때는 정말 많은 유명인을 좋아했다(아니, 사실 지금도 열정 말고 숫자만 따지면 정말 많은...). 가수, 배우, 스포츠인 등등. 그중에서도 팬심을 가장 많이 표출한 건 단연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있어봤다는 ‘우리 오빠들!’, 아이돌이었다.  우리 오빠들이 TV에 나오는 건 다 보고, 라디오 나오는 건 다 듣고, 앨범에 있는 노래 가사는 다 외우고, 오빠들 파트도 다 외우고, 기사 나온 건 다 읽고, 오빠 아버지가 운영하는 싸이월드도, 오빠 동생이 운영하는 다음 카페에도 자주 방문했다. 또 우리 오빠들의 팬이라는 친구와 친구가 되었다. 나의 세계가 오빠들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열정을 태운 나의 세계는 오빠들이 각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서서히 흐려졌다. 그리고 이제 오빠들은 ‘한때 나의 세계’ 정도가 되었다. 가끔 생각이 나거나 인터넷을 하다가 눈에 걸리면 잘 사는지 뭐하고 사는지 잠시 궁금한 정도로 아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가끔 응원하는 정도의 존재로 남아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오빠들을 좋아하기 전부터도 정말 많은 유명인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가장 열정적으로 마음을 쏟은 대상은 오빠들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떤 연예인 좋아했어?’하는 과거형 질문에 ‘그 오빠들’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얼버무리며 숨겨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전히 한때의 오빠들로 증(憎)보다는 애(愛)의 감정이 확연히 더 많은데, 나는 오빠들이 부끄러운 걸까?



   한창 오빠들 중심으로 나의 세상을 만들어 가던 시기, 중학생이던 어느 날, 앞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 언니는 중학생 고객에 맞춰 어떤 아이돌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내성적인 내가 빠른 템포 내에 입을 떼지 않는 틈을 타 먼저 추측에 나섰다.     



   "0000?"


   고개 절레절레.


   "00000?"


   고개 절레절레.


   "그럼 누구 좋아해?"


   그제야 수줍게 부끄러워하며 입을 떼었는데.


   “....”



   미용실 언니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나의 오빠들이 누구누구들 보다 인기가 많지 않긴 해도 모를 만큼 안 유명하지는 않은데... 그들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걸까?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아마 좋아하는 걸 무시당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최초의 순간이었던 거 같다. 지금에야 ‘그 미용사는 걔네 좋아하는구나라도 한마디 해 주지 에잇.’하며 툭 털어내면 그뿐이지만, 그땐 내 세상이 받은 무시가 크게 가슴에 그였었다.   



   아마도 이때의 영향이 지금까지 그들을 좋아했었노라고 드러내지 않는 태도에 영향을 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비록 지금은 한때의 오빠들일 뿐이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 좋은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기에 그래서 잘 지내길, 잘 되길 바라고 있기에. 여전히 마음 한 구석 아련한 애정이 남아있어서 그래서 그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뜨뜻미지근한 마음조차 굳이 알고 싶지 않다. 그들을 좋아했다고 굳이 내 입으로 세상밖에 소환시켜 평가받게 하고 싶지 않다. 나의 소중한 것을 마음속에 잘 간직하며 보호해내고 싶다.   



   혹시 이런 게 내 자식 밖에서 싫은 소리 안 들었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 같은 걸까? 아니 근데, 우리 오빠들 한창때 사고 친 적 없는데!   



사진 출처: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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