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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Aug 20. 2021

잘 흔들리고 싶다

약함 2

   불쑥불쑥 화가 올라오는 날이다. 그렇다고 화가 날만한 사건을 겪은 건 아니다. 마치 잠들기 전 사소한 기억들 때문에 이불 킥을 난발해 대는 순간처럼 아주 사소한 과거의 순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감정을 흐트러트린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거칠게 눌러내는 내가 있다. 웃어넘기며 별 일 아닌 것처럼 받아들일 혹은 넘겨버릴 여유가 없다. 과연 이러한 대응이 옳은 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이런 모습이 내가 원하던 이상적인 인간상은 아니었던 거 같다. 긍정만을 집착하던 내가, 이젠 그게 어떤 모양이든 자연스러운 마음을 잘 들어주기로, 부정적인 감정에도 마음을 열어주기로 하자마자 위기가 온 것이다.


 

   이제까지의 나는 사소한 과거가 현재의 감정을 불안정하게 만들 땐 그들을 외면하고 회피해 버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현재에 공존하는 사소하지만 좋은 어떤 것들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집중해 냈다. 이러한 대응이 가장 이상적인 방식인 줄 알았다. 이른바 긍정, 무한 긍정.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게 과연 옳기만 한가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긍정이라는 대응은 꽤 건강한 대응처럼 보이지만 긍정의 교과서처럼 살아온 내 속에서도 가끔은 원인 모를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속을 한바탕 크게 휘저어 버리 곤 했으니까. 외면받고 회피받은 감정은 긍정으로 이겨내어 진 게 아니라 어딘가 치유받지 못하고 소외받으면서 삐그덕 삐그덕 고장이 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러한 의심 끝에 불안정한 감정도 외면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거라 받아주고 들어줘 보기로 마음먹었다. 강압적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나 자신에게 치이고 치어버린 나의 존재를 아껴주고 보듬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아주 사소하지만 나를 흔들어 놓는 감정들을 인정해 낸다.


     

   ‘너는 지금 답답하구나. 답답해도 괜찮아.’     

          

   ‘너는 지금 그게 밉구나.’   

            

   ‘너는 지금 흔들리는구나, 그래도 괜찮아.’   


  

   조금이지만 조심스럽지만 마음에 바람이 불어 들 틈을 열어둔다. 두렵지만 조금씩 조심스럽게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바람결이 훅하고 지나쳐가도 충분히 무사함을, 괜찮음을 느껴낸다. 그런데 불쑥 훅! 꽤 묵직한 질량의 바람이 들어오니 침착하게 받아내기에 버거움을 느낀다. 그들을 이겨내기 위한 도구로 화를 사용하는 내가 있다. 익숙하지 않은 현상과의 마주함에 당황스럽다. 거칠어진 감정에서도, 그를 대처하는 모습에서도 불편함을 느낀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가. 더 잘 해내고 싶다.



   얼마 전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여닫이 형태로 된 창문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저러다 깨지면 어쩌나 하고 급하게 창문을 닫아주었다. 내 손길이, 바람으로부터 방어기제를 발휘하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던 창문을 보호해 내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창문은 무사히 닫히고도 바람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칠 순 없었다. 여전히 바람결에 흔들리며 덜컹거렸다. 그렇지만 내 손길이 닿기 전 보다 안전해 보였다. 무사할 것 같았다. 그날 밤 우리는 함께 바람으로부터 안전했다. 나는 바람을 막아 주는 창문으로부터, 창문은 내 손길로 인해.  

 


   돌아보면 그렇다. 나는 마치 이 지구별에 혼자 도착해 혼자 살아내고 있는 것처럼 어딘가에 마음을 의존하지 않고 그렇게 스스로 단단하게 아니, 딱딱해지도록 힘주어 내며 꼿꼿하게 버텼다. 약해지지 않으려고 더욱 긴장시켜내고 날을 세워냈다. 때로는 내 손길로 창문이 보다 안전해진 것처럼 주변의 역할이 필요한 법일 지도 모르는데. 위기에 처한 창문과 내가 같이 더 안전해진 것처럼 약한 모습을 애써 감추지 않고 서로를 채워주며 같이 견디는 게 더 단단해지는 일일지도 모르는데.   



   흔들어대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흔들려 보기로 마음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당하기 어려운 결을 만났다. 그 결을 감당하지 못해 발현된 감정이 고작 불쑥불쑥 올라온 화. 그 결과가 화여서 그리고 그 모습 또한 감당이 되지 않아서 당황했다. 회피하지 않기로 했기에 화가 올라오는 마음을 꽤나 한참 들여다보아야 했다. 시간이 지나 마침내 차분해졌을 땐 이런 생각을 했다.       


    

   ‘잘 흔들리고 싶다.’      



   어떻게 흔들리는 게 잘 흔들리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사람은 누구나 약할 수 있다고, 아주 자연스러운 거라고 스스로를 잘 다독여야겠다. 그리고 ‘나 지금’ 흔들리고 있다고 세상에 소리 내어 인정하는 날을 스스로에게 맞이하게 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약함과 약함이, 같이 약함이, 단단한 혼자보다 더 안전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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