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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Sep 24. 2021

감정과 공간이 엇박을 이루는 순간

   나의 상태와 공간의 공기가 따로 노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엔 나만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기분, 외계인이 된 기분을 느낀다. 예를 들면 열이 펄펄 끓던 어느 날 우리 집 식탁 공기가 그랬다. 몸에 열이 펄펄 끓어 사방에서 근육을 짓눌러 내는 느낌이었다. 그 압력을 버텨내는 것만으로 힘이 들었고, 에너지를 몸이 버텨내는 데 전력을 다해 쓰느라 말할 에너지조차 없었던 날. 저녁이 차려진 식탁에서는 나머지 가족들끼리 재밌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밥도 반찬도 겨우 집어 먹고 있는 나에게 그날의 식탁, 그 공기는 그토록 이질적일 수가 없었다. 절대 웃음이 나지 않는 날 눈앞 스크린에서는 코믹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웃지 않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도무지 풀리는 일이 없어 화가 났다 울적했다 답답했다 어두운 감정 그 언저리만 맴돌고 있는 심정에도 그 심정을 알리 없는 곳에 가 애써 웃으며 그 공간의 공기를 맞춰내야 할 때, 분리되어 나온 거짓된 영혼을 바라보며 속에서는 더 깊은 어둠이 내린다. 다른 이들은 다 괜찮고 나만 이 처지인 것 같은 기분이 마음에 돌덩이를 하나 더 얹는 기분이 든다.



   감정과 달리 현실을 살아야 할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마음을 차분히 시키고 방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고 책이나 읽으며 뒹굴거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불규칙한 시간대에 아무거나 집어먹으며 대충 허기를 채워내는 느리고 불규칙적인 그런 하루가 딱 맞겠다 싶은 날. 하지만 그 감정을 접어두고 경쾌하게 일어나 파이팅 넘치게 현실을 살아야 하는, 감정이 현실 박자를 못 맞춰 내는 날 그래서 눈앞 현실이 더 분명 해지는 날, 보이기는 파이팅 전투적이었지만 마음 어느 한편이 괜히 더 지치는 느낌. 그 느낌을 외면해야 하는 현실이 또다시 지치게 만드는 듯했다.  



   흔들리는 감정을 회피하지 않기로 한 뒤로 감정과 공간의 이질감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순간들이 아픈 스스로를 얼마나 더 아프게 만드는지, 순간순간 더 지치게 만드는지 그리고 얼마의 견딤까지가, 얼마의 거짓된 감정 연기까지가 인간의 숙명인가에 대해서 생각한다.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해 버리고 대부분을 전투적이거나 쾌활하게만 살아내 버린 시간들 동안, 그 공간에 공기의 대부분을 내가 더 이겨버렸기에 헤아릴 수 없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며 감정의 성숙도를 높여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이해를 쌓을 때마다 유난히 주변의 죽음을 맞이하고도 현실의 삶을 멈춰 세울 수 없는 현생에 있는 사람들의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건 아마도, 죽음이란 게 미웠던 사람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되고, 함부로 저주할 수 없게 되며, 가슴속에 묻혀 있던 일말의 애정이었더라도 그 애정 때문에 그 죽음이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뭐 그런, 인간이 느끼는 극강의 슬픔과 같은 거여서 일지 모른다. 그런 마음을 하고도 추스를 세도 없이 당장 현실을 살며, 남들은 다 괜찮고 나만 이 처지인 것 같은 기분, 거짓된 연기를 하며 공간의 공기를 맞춰야 하는 순간을 맞이해야 할 테니까.



   이젠 13년이  되어가는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장례식. 장례를 치른  현실로 출근하던 아빠가, 할아버지 흔적이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공간을 마주하며 현실을 살아낸 아빠의  시기가 이제야 선명해진다. 그리고  이질감의 크기를 감히 추측해   없다.   



   그동안 이성적인 태도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되기 위해 무엇을 얼마나 놓치고 살았을까? 비단 스스로에게 외면받은 스스로의 감정만이 아니었을 테다.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 감정들로 뒤엉켜있는지, 어떤 감정들을 견디고도 살아가는지 배우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세상의 그리고 주변의 아픔도 기쁨도 더 섬세히 들여다볼 수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씩씩함을 장착한 나의 세계에 취해있던 나는 서서히 조금씩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프고 처절하지만 멈출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슬프고도 값진 귀한 인간 군상의 인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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