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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Sep 11. 2021

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단순함

      단단히 막대기를 놓지 않고 있을 때에는 인생에 '실패'라는 게 오면 정신이 방황을 하다가도 머리에 쿵, 무언가 찧는 느낌이 들며 세상에 대해 반항심 비스무리한 감정이 내포된 승부욕이란 게 차올랐다. 그리고 그것을 동력 삼아 전투적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막대기 속엔 무너져 내린 감정이란 게 발굴되지 못한 채 있었으니, 막대기를 놓자 그것들이 참으로 감당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또 세상이 '실패'라는 무게를 선고했을 때는 도무지 그 어떤 단 사탕도 나를 일으킬 수 없었다. 그런 감정이 지배를 하니 내가 그토록 애처로울 수가 없다. 붙잡히지 않는 애처로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기분은 또다시 스스로를 애처롭게 만든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그땐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 불현듯 그 뜻을 깨닫게 되는 그런 때. 그런 문장도 있다. 완전히 이해되지 못한 채로 몇 년 동안이나 머릿속에서 맴돌아 이따금씩 그 뜻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문장.


 

   창밖에 놀이동산이 지나친다. 그런데 문뜩 이 문장이 이해가 되는 건 왜일까? 몇 년 전 같은 과에 다니 던 왕언니는 이런 말을 했다.      


   “힘들고 복잡할 땐 아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해. 그럼 쉬워져.”     



   왕 언니는 만학도 편입생이자 초등학생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였고, 나는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학생에 불과했다. 인생의 깊이가 부족해서였을까? 아님 아이들 세상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당시 그 말은 꽤 의미 있는 말이란 느낌이 들었지만 와닿거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아이의 어떤 면모를 보고 느껴야 하는 걸까? 어렴풋이 맑고 천진한 면을 주시해야 할 것 같았지만 명확한 정답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의문이 풀리지 않은 문장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지쳐 집으로 돌아가는 밤 기차 안에서 갑자기 이해가 되는 순간을 맞이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단단히 막대기를 놓지 않고 있을 때에는 인생에 '실패'라는 게 오면 정신이 방황을 하다가도 머리에 쿵, 무언가 찧는 느낌이 들며 세상에 대해 반항심 비스무리한 감정이 내포된 승부욕이란 게 차올랐다. 그리고 그것을 동력 삼아 전투적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막대기 속엔 무너져 내린 감정이란 게 발굴되지 못한 채 있었으니, 막대기를 놓자 그것들이 참으로 감당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또 세상이 '실패'라는 무게를 선고했을 때는 도무지 그 어떤 단 사탕도 나를 일으킬 수 없었다. 그런 감정이 지배를 하니 내가 그토록 애처로울 수가 없다. 붙잡히지 않는 애처로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기분은 또다시 스스로를 애처롭게 만든다.   

 


   스스로가 애처롭고 애처로워 오래된 기차만큼이나 격정적인 가슴을 견디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 밤, 창밖은 많은 것이 불분명했다. 그리고 어둠 사이에 잠시 스쳐지나 간 화려한 불빛과 역동적인 움직임은 내 마음과 기찻길의 빛, 그 빛들과는 상반된 분위기이기에 눈길이 갔다. 저곳의 기분은 나의 기분과 다를 거라는 확신, 다른 세상 일거라는 분명한 추측.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자신을 애처롭게 여기고 있던 아이를 저곳에 데려다준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될까? 입구에 도착하는 것만으로 금방 들뜨고 신나 하며 행복해지지 않을까?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것들만 한가득 모여 있는 작지만 커다란 저 세상이, 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흠뻑 빠져서 한껏 웃음을 머금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아이는 단순하다. 울다가도 사탕을 주면 금방 웃고, 울다가도 시선만 돌려주면 금방 잊는다. 그리고 당장 눈앞에 놓인 그 순간에 흠뻑 젖어 꼼꼼히 그 순간을 관찰하고 또 그곳의 매력과 재미를 찾아낸다. 아이라면 지금처럼 애처로운 마음이 들 땐 어떻게 할까? 기차를 타는 것만으로 기뻤을까? 창밖 화려한 불빛을 한 놀이동산을 발견한 것만으로 신이 났을까?


 

   사실, 말로만 듣던 놀이동산을 처음으로 발견하던 순간이었다. 몇 번이고 수도 없이 탔었던 기차였지만, 늘 밝은 날이라 놀이기구가 눈에 띄지 않았었다. 반가웠고 신기했지만 애처로움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감정은 아주 옅게 지나치고 말았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처럼 마음에 잠시 불어 온 좋은 감정이 그날 하루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또 보내도 감정은 애처로움이 점령했지만, 실은 시간에 쫓기며 급하게 해 먹은 아점이 맛있었고, 받은 수업에서는 기쁨을 만끽할 만큼의 칭찬을 받았다. 불편한 마음을 풀어보고자 좋은 풍경을 찾아간 장소는 역시나 좋았고, 풍경을 즐기느라 계획과 달리 타게 된 밤기차는 생각지 못한 깜짝쇼를 선사하 듯, 말로만 듣었던 그 놀이동산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순간순간 신나 할 순간들이 꽤 많았다. 그때마다 그 잠시 만큼은 오로지 그 순간이 준 기쁨을 기뻐하면 됐다. 그런데 그 잠깐의 순간들 조차 자꾸만 애처로움을 스스로 끌어오진 않았던가.


 

    그래, 뭐가 어찌 되었든, 너무 부정적이었든 아니든, 나에게 찾아온 애처로움은 그 소소한 기쁨의 무게보다 더 무거웠음을 인정한다. 그 무게가 마음을 꽉 눌러냈음을 인정한다. 그래도 아이라면 그 잠시 잠깐을 오로지 기뻐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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