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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Jul 26. 2021

흔들려도 괜찮을까?

약함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여닫이 형태로 된 창문이 왔다 갔다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창문이 깨질까 겁이나 급하게 창문을 닫았다. 창문을 닫았는데도 격하게 부는 바람, 그 세기를 굳이 피부로 느끼지 않고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밖은 심하게 불안정하다. 반면 나는 창문의 개방 여부와 상관없이 바람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에서 바람이 불기 전부터 머무르고 있었다. 즉, 처음부터 바람의 영향권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창문을 닫고 나니 공간은 보다 더 차분하고 안전하며 안락한 느낌이 든다. 내가 창문을 보호해 내면서 함께 더 안전해진 느낌이다. 덜컹이는 창문을 바라보며 바깥과 상반된 공간의 느낌을 느낀다. 그리고 바깥에서 온 몸으로 바람을 맞이하고 있을 나무들을 상상한다. 거친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고 버티고 있겠지. 또 내일 밖으로 나갔을 땐 그 자리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를 지키며 무사히 잘 서 있겠지. 거세지는 바람과 깊어지는 고요한 저녁, 차분히 앉아 덜컹이는 창문을 바라보며 유독 밖에 서 있는 나무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나는, 나무 같은 사람일까?



   얼마 전 오래 감춰두고 혼자 해 오던 생각에 대해 용기를 내어 세상 밖에 내놓았다. 나라는 사람을 한 물체로 바꾸어 낸다면 아주 단단한 막대기 같은 게 아닐까? 속은 사실 텅하고 비어있지만 겉만은 그 누구도 변형시킬 수 없을 것 같이 단단한 막대기 말이다.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는 텅 빈 구멍을 보호하고 감추기 위해 단단하게 철갑을 두른 막대기.



   나는 어떠한 외부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 갈 길을, 내 삶을 걸어가겠다는 마음으로 꼿꼿이 스스로를 보호하며 살았다. 제3의 것이 나의 감정도 나의 삶도 좌우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외부 자극이 자극적 일 수록 더 거칠게, 더 꿋꿋이, 지지 않고 버텨냈다. 이런 모습에 인간세상에서는 ‘멘탈 갑’이라 불리게 되었지만,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불안이 요동을 쳤다. 센 척하고 살았지만, 사실 거칠고 꼿꼿하지 않고서는 버틸 방법이, 그렇지 않고서는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였음을 가장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단한 막대기가 더 센 자극을 만나면 아무런 탄성 없이 뚝하고 부러져 버리 듯, 내 삶도 어느 날 더 센 자극을 만나게 된다면 다져놓은 보호막은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 채 뚝 부러져버리겠지. 그리고 텅하고 빈 실체를 드러내며 온갖 자극을 오로지 받아내야 하겠지. 그때 난 이겨 낼 수 있을까? 비어 있는 속, 그 실체의 존재를 세상밖에 드러내는 건 부러져버린 막대기를 감당하는 것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약함을 인정하고 공표해 버리면 정말 약해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럼에도 실은 나약할지 모른다고 막대기가 부러지는 그 순간이 두렵다고 공표한 용기에 누군가는 아니 너는 진짜로 강한 거 같다고 했고, 누군가는 조금의 유연함을 가지고 살아도 된다고 했다. 그들의 의견을 곱씹었다.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실체도 나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할까? 자극의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면서도 다시 탄력을 일으켜 결국 이겨낼 수 있을까?


 

   최근 생활이 단순해지고 조용해졌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자주 보낸다. 그러는 중에도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멩이가 통 하고 던져지면 조용하던 물에 일렁임이 생기 듯, 단순한 생활에 조그마한 감정들이 평정심을 흔들려고 들 땐 여러 방식을 써서 방어막을 친다. 방어막 치는 걸 스스로에게 들킬 땐 가슴 깊숙이 숨겨져 있는 나약한 실체가 불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흩트려 놓으려 드는 이 감정 결을 받아들이고 그 결에 따라 적당히 흔들려도 무사할까? 내일의 나무처럼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자리에 무사히 잘 서 있을 수 있을까?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상상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힘주지 않고 물리쳐내지 않고 도망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흔들리면 되는데... 감정 결에 따라 자연스럽게 더 많이 기뻐하고, 더 많이 아파도 하고, 슬퍼도 하고, 좋아도 하고, 견디기도 버티기도 하면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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