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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Oct 24. 2021

프로 행복 집착러의 행복 비결

   후회 같은 건 하지 않는다고 글을 썼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단언하고 선언해 버린 그 글이 오래도록 눈에 밟힌다. 이런 게 후회일까? 이런 걸 후회라고 하는 거라면, 난 모순적인 글을 쓰고, 그 모순을 스스로에게 들켜버린 셈이다. 그런데 이 모순을 인정하고 이제 네 인생에서 했던 후회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면 또 딱히 영향력을 가진 대단한 후회는 없었다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프로 행복 집착러이다. 내 인생의 가장 큰 가치는 나의 행복이다. 행복 집착병이 중증에 달해 행복을 잃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행복을 앗아갈 그 어떤 것들을 무던히 경계하고 그것들이 내 인생에 개입되지 않도록 철저히 방어한다. 그 주요 대상에는 후회가 있다. 후회는 늘 인간에게 고통을 선사하니까. 착각을 해서라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 따위가 내 인생을 흔들어 놓을 수 없다와 같은 마음이랄까? 어쨌든 어떤 방식을 써서라도 내 머릿속을 오래도록 뒤 흔들, 큰 뭉치의 후회 같은 건 만들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던 거 같다.



   후회 없는 인생이란 게 말이나 돼?라고 묻는 다면 그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하겠다. 언제나 마음을 따라왔다고. 그 순간 하고 싶은 대로 했기 때문에 후회할 수조차 없다고. 나는 큰 뭉치가 될지 모를 어떠한 행동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 신중히 마음을 들여다본다. 진짜 내 마음이 어느 쪽에 기울어져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크게 울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마음에 확신이 서거나 기울기가 선명해지거나 또는 크기가 참을 수 없이 커져버리면 그 길을 미련 없이 간다. 그리고 그다음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을 한다. 모든 면에는 장단점이 있다. 선택되지 않은 그 선택지에도 단점은 있다. 가보지 않고는 어떤 변수가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나는 현재의 장점을 누리겠다. 이 장점들이 나를 위해서 온 특별한 행운인 것처럼. 가보지 않은 길, 그 판타지가 나의 지금을 흔들어 놓을 수 없다.  그리고 나의 지금이 나를 흔들어 놓는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어쩔 수 없지.’, ‘그러려고 그랬나 보다.’라는 주문을 외우며, 그들이 내 감정에 최소한의 영향력만을 가하도록 방어해낸다. 일이 이렇게 풀리려고, 그 순간 내 마음이 그 선택을 하도록 기울어진 게 아닌가. 사실  이 같은 생각만큼 속 편한 소리도 없지만, 이런 상황은 더 이상 인간이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게 결론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 그저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멘탈이 강하다고 말한다. 정말 대단하다고, 넌 정말 강한 여성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어떤 것이 나를 흐트러뜨려도 꿋꿋이 눌러내거나 더욱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며 하는 말들일 것이다. 하지만 실은 그 모든 게 나의 나약함 때문이라면? 사실 나는 단단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보다 작고 약한 사람임을 밝힌다. 후회를 방어해 낼 만큼 강한 게 아니라 실은 후회라는 고통이 왔을 때 감당해낼 자신이 없는 거라고. 그래서 착각을 해 서라도 후회를 하지 않아 버리는 거라고. 이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알고 있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이 너는 정말 단단하다고 추켜세워 줄 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용기조차 없을 만큼 약한 사람이니까. 약함을 드러내는 순간 정말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감당할 자신도, 용기도 없기에.



   본능이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거 같다. 어떠한 충격을 그대로 받아낸다면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져 버릴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그토록 단단하고 또 누구보다 더 커다란 방어막 속에 나를 깊숙이 감추고 보호해 왔던 거 같다. 그런데 이토록 커다랗고 단단한 무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부터인가 두려움이 커졌다. 어떤 것 보다 딱딱하고 단단한 막대기는 보다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어떠한 탄성도 없이 뚝 부러져 버리니까. 이처럼 단단한 척 허세 로운 내 인생도 언젠가 뚝하고 부러져 버릴 것만 같다. 그 공포감이 나를 뒤덮는다. 이제 나는 나약함을 조금씩 인정하고 드러내며 아픔, 고통 따위를 감당하는 법을 익혀야 할까? 아님, 행복만을 누리며 방어막만을 계속 단단하게 다져가며 살아도 안전할 수 있을까?



   우선, 어제는 밤 10시에 불쑥 올라온 초콜릿에 대한 간절한 마음과 다이어트가 충돌했다. 절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참지 못해 밤 11시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마치 금단현상이 일어난 사람처럼 손을 떨며 카드를 급히 집어 들고서 말이다. 편의점에서 가장 진하고 달아 보이는 초콜릿 과자 두통을 품에 안고 돌아와 새벽에 몇 개고 과자를 까먹으며 행복했다. 후회는 하지 않았다. 다이어트보다 초콜릿에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이 찌고 몸에 좋지도 않은 단걸 굳이, 그것도 밤에, 굳이 사 와서 까지 먹으려 하는 나를 말리던 엄마에게 살찐 나의 몸뚱이도 나는 사랑한다, 살보다 내 정신이 더 소중하다 따위의 답도 없는 방어기제, 말 안 듣고 철딱서니 없는 딸을 자처하며 행복을 앗아가려는 세력으로부터 보호했다. 사소한 것까지도 철저히 방어하고 보호하며 행복을 사수해내는 내가 있다. 체중계의 숫자 앞에서 후회를 꾹 눌러내며, 지난밤 내 마음이 그랬기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나를 지배해 냈다. 어제와 오늘의 나는 아직 약함을 드러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202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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