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만화를 봐야 할 나이일 때도 만화 대신 드라마를 봤었다. 어쩌면 어릴 적 아이답지 못했던 취향은 인간사에 대한 관심 때문일지 모른다. 세상에 대해 어찌나 궁금한 것이 많은지 어릴 때는 어른들끼리 이야기하는데 꼭 껴있는 아이 었거나 상대가 민망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며 관찰을 해 대신 민망했던 엄마가 나를 돌려세운 기억도 여러 번이다. 게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끝없는 질문들, 질문 무차별 공격에 엄마는 혀를 내 둘렀다. 어쨌든, 성인이 된 후, 드라마는 나에게 다양한 사람에 대한 이해, 감정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인생의 정답을 얻기 위한 한 요소로 활용되는 중이다. 드라마에는 캐릭터 하나하나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와 가치관 그리고 인생 성찰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대게 드라마의 첫 회는 캐릭터의 성격과 입장을 표현하는데 집중되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류의 드라마 주인공들은 대부분 밝고 경쾌하게 등장을 한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활기 있고 당차거나, 불행을 겪는 상황이라도 코믹하게 연출되어 시청자에게 무겁거나 아픈 감정이 전달되는 것을 최소화시킨다. 작가와 감독의 의도에 의해 표현된 긍정적 표현 일지라도 유연하게 삶을 대처해 내는 캐릭터, 그런 캐릭터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선망해 왔다. 알고 보면 평범한 모든 순간이 매력을 가졌거나 대부분의 위기가 웃어넘기려면 넘길 수 있는 일, 파이팅 넘치게 이겨내려면 파이팅 외치며 이겨낼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어떤 상황에 처해도 활력 있는 사람이 되자, 언제나 활력이 승리하기를!’
유럽 땅에 뚝 떨어졌다. 가족도, 친구도, 말 통하는 사람도 몇 없는 곳에 말이다. 처음에는 낯섦에 살다가, 이후에는 새로움에 살다가, 조금 더 이후에는 별것까지 다 담고 느끼며 살다가, 또 더 지난 후에는 모든 시간을 귀하고 아깝게 여기며 살다가, 그만 집중력을 잃어버렸다. 어느 날, 그만 익숙해지고 말은 것이다. 잔뜩 들어갔던 힘이 풀리고 왠지 바빴던 눈과 감정들도 풀렸다.
계획이 아무것도 없던 날, 아무런 감정을 가지지 않은 내가 익숙한 거리를 뚜벅뚜벅 걷고 있다. 익숙함 조차 익숙해진, 익숙해졌다는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한 ‘무’의 상태로.
‘아차, 걷고 있는 이곳이 유럽이었지. 내가 ‘유러피안’ 스럽다고 지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위를 둘러싼 이국적인 건물들, 미세먼지 없는 맑은 공기와 청명한 하늘, 태양, 외국어로 적힌 표지판, 돌길, 해석 불가한 음성들 그리고 그 거리를 선글라스 끼고 익숙하게 걷는 지금.
‘상상만으로도 멋진 그 상황이 현실에 펼쳐져 있는데 좋은 줄 모르고 감격하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언제 끝날지 모를 또다시 없을지도 모를 이 귀한 시간을 당연한 듯 받아들인 나를 다그쳤다. 하지만 이미 익숙해져 버린 걸 어쩌겠는가. 그날은 정말 설레어질 수 없었다. 어쩌면, 비록 또다시 따뜻이 감정이 오르진 않았지만 걱정과 고민 또한 없는 상태, ‘무’의 상태 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시간, 긍정적인 시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선망하는 삶은 ‘활기, 활력’이지 않았던가. 드라마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 완벽한 세트장이 탐이 났다.
‘활기차져라, 활기차져라, 지금은 멋진 순간에 있다.’ 거듭되는 주문과 거듭되는 실패.
‘어떤 캐릭터가 어떤 사연으로 이 거리를 걷게 되었든 분명 유럽 거리를 걷는 장면만큼은 명장면일 텐데, 나는 왜 될 수 없는 걸까?’
의문을 품은 머릿속은 현재 상황을 가지고 끝없이 작품을 써냈다. 그리고 몇 개의 시뮬레이션을 돌린 끝에, 음악, 음악을 깔기로 했다.
‘음악만 깔리면 멋진 장면이야, 나는 지금 멋진 장면을 경험하고 있는 게 분명해.’
때때로 일상이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고 있는 듯 느껴질 때, ‘지금도 음악이 깔리면 다채로운 장면이야.’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사소한 순간도 몰입하기 마련, 나름의 미를 찾아내기 마련이지만 그 조차 재미가 없을 때, 평범한 일상 속 그날의 온도는 어떤 음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결국, 배경음악을 선택해 내기 마련, 음악의 힘을 빌리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음악은 참 위대하다. 우리는 슬퍼지고 싶을 때 슬퍼질 수도, 기뻐지고 싶을 때 깊어질 수도, 어느 감정 하나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질 않는데, 슬픈 감정을 저장한 음악은 언제나 슬프게, 기쁜 감정을 저장한 음악은 언제나 기쁘게, 틀 때마다 연주할 때마다 의도한 감정이 표현되니 말이다. 신기하게도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온전히 끌어내기 힘든 감정들을 음악에 의지하면 끌어낼 수 있다. 때로는 슬픔이 더 깊이 슬퍼져 버리기를, 고독이 더 깊이 고독해져 버리기를 혹은 어둠에서 깨어 나오기를, 오는 어둠을 가뿐히 밀쳐내기를 바라는 순간, 그 순간들에 인간은 음악의 위대한 힘, 그 힘을 빌린다. 그뿐일까. 잠재되어 있던 망각하고 살았던 감정의 세포들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잠재되어 있는 감정, 잊고 있던 감정, 끌어내고 싶은 감정, 얻고 싶은 감정 등 무수히 많은 감정들을 인간은 망각하지만, 음악만은 기억해 주고 있다는 것이 다행인 일이기도 하다.
늘 하던 일을 하며 지나가는 똑같은 일상이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져도 좋고, 제일 찌질해져도 좋고, 제일 화려해져도, 세상을 다 가져도 좋다. 볼륨을 높이고, 건조하게 있던 메말라 버린 세포들의 문을 두드려 판타지 세상으로 빠져보자. 드라마 속 캐릭터처럼. 잔잔한 일상도 음악 하나면 충분하니까.
오늘도 이어폰을 꽂는다. 선망해 온 잡초 같은 캐릭터가 되기 위해.
사진 출처: 드라마 또 오해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