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by 정윤희

TV 속 다큐멘터리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방송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심각한 내용을 다룬 그런 류의 다큐멘터리는 아니었고, ‘인간극장’ 같이 따뜻하고(아, 어쩌면 인간극장 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사는 이야기를 그려낸 다큐멘터리였어요. 주인공 삶이 그리 특별하지 않았고, 평범하고 소박하게 그러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었어요. 어렴풋이 기억을 좀 더 더듬어 보자면 젊은 부부가 제주도에서 피자집을 소박하게 했던 거 같아요. 내부가 크거나 화려하지 않았고, 손님이 줄을 서는 그런 가게도 아닌 거 같았어요. 부부의 외모나 스타일이 화려하지도 않았죠. 수수함 그 자체였어요. 이렇게 나열하다 보니 어쩌다 그들이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나 의문이 드네요.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선명하지 않지만, 어쩌면 제가 그들이 가진 특별한 사연을 잊은 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떤 사연으로 출연하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 대한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고도 그 어느 다큐멘터리 주인공들보다 제 마음에 예쁘게 자리했기 때문입니다.


소박하게 꾸며진 집, 제주도에 해가 밝으면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물로 예쁘게 씻은 후, 스킨, 로션만 가볍게 톡톡 바르고서는 멋스럽기보다 편한 복장을 툭 걸쳐 입고, 함께 손을 잡고 피자집으로 향합니다. 가게 문을 열고 그날 하루를 준비하죠. 저는 부부의 평범한 아침 일상을 이렇게 상상했어요. 눈을 떠서부터 출근까지의 모습이 화면에 담겨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기억 속에는 없으니 마음대로 부부의 아침을 상상해 볼 뿐입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그날, 오픈 준비를 하는 가게 속 부부의 모습은 꼭 그랬어요. 스킨, 로션도 굳이 비싼 걸 골라 쓰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소박함, 그 소박함 속에서 따뜻함과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그래서 그 자체만으로 예쁜 그런 사람들 있죠? 딱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가벼운 장난도 농담도 치며 환하게 웃어요. 때로는 의견 충돌로 다투기도 하고요. 아마도 그랬던 거 같아요. 실은 농담하던 그 모습도 다투어 토라지던 그 모습도 선명히 기억나지는 않아요. 이 또한 어렴풋할 뿐이죠. 단지 vj가 던진 질문에 대답을 하며 환하게 웃던 그녀의 얼굴, 예쁜 그 느낌만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어떤 내용의 질문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대답을 했었는지 이 역시 기억 속에서 사라져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제 가슴속에 그녀가 맴돕니다. 그녀는 굳이 예쁘게 보이려고 하지도 않았고, 화려한 모습도 아니었지만, 예뻤거든요.


멍하니 그들 이야기를 바라보다 보니 하루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와 TV를 끄고 세수를 했습니다. 화장이 씻겨져 내려갔죠. 그리고 잠옷, 아니, 그냥 낡아서 더 이상 외출복으로는 제 기능을 상실한 티셔츠를 입고 있는 제가 거울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상상을 했어요.

‘내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들처럼 예뻐 보일까? 예쁜 모습이면 좋겠다.’


제 옆에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니는 vj를 두었어요. 그리고 행동을 했죠. 최대한 척하지 않고 하던 모습 그대로요. 잠 잘 준비는 계속되었어요. 수건으로 얼굴에 물기를 닦고, 기초화장품을 차례대로 발랐어요. 거울 속 제 머리카락은 물에 젖어 이마 가장자리에 딱 달라붙어있었고, 뒷머리는 아무렇게나 질끈 묶여 있었으며, 목이 늘어난 낡아빠진 티셔츠에 잠옷 바지를 입고 있었죠. 아무렴 상관이 없었어요. 피자집을 운영하던 그녀의 예쁨은 이런 것들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일상 자체가 예뻐 보이고 싶다 생각하니 어쩔 수 없이 행동거지가 조금은 의식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동작이 보다 차분해졌고, 정갈해졌으며, 아무렇게 던져 놓던 물건도 차분히 제 자리에 두게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늦은 밤, 좀 우습지만 아무도 모르게 놀이는 계속되었답니다. 인터뷰는 하지 않았죠. 중얼중얼거리다 놀이를 들켜서는 안 될 것 같았거든요. 민망하고 부끄러우니까요.


화면에 비칠 제 모습을 상상했어요. 인터뷰도 하지 않고, 모두가 잠들어 버린 밤, 혼자서 잠 잘 준비를 하는 일상이었기에 굳이 다양한 표정이 필요하지 않았죠. 무표정으로 일관하면 되었어요. 하지만 무표정에도 표정이 있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사람, 그러니까 가슴 깊숙이 좋은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그 좋음이 뿜어져 나오잖아요. 그런 사람들처럼 이왕이면 미소를 띤 모습이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살포시 선한 얼굴을 하고 마음을 좋게 먹었어요. 내면이 갖춰져야 완성될 것 같아서요.


이 우스운 놀이는 밤이 깊어 잠이 들면서 끝이 났습니다. 상상일 뿐이지만, 아무리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하려고 해도 누군가 지켜본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마냥 온전히 있는 그대로 일 수는 없었어요. 아무리 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혼자 있을 때와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 때가 완전히 같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과감히 확신해 봅니다. 하지만 과도하게 과장된 ‘척’이 아니라면, 일상보다 약간 정돈된 행동 정도는 그 또한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해석하고 싶어요.


어떤 찰나의 일상이 영상에 담겨도 그 모습이 못났지 않길 바라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 속 많은 행동거지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은 더 따뜻하게 먹어야겠다 생각했죠. 그리고 가끔 제 곁에 가상의 vj님을 모셔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흐트러진 행동도 마음도 때때로 돌아봐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놀이를 시작해 봅니다. 놀다 보면 영상들이 쌓이고 쌓여 보다 더 예쁜 일상을 살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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