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경계선

진실함과 솔직함 그 경계에서

by 정윤희

요즘은 사춘기를 ‘중2병’이라 부릅니다. ‘북한이 중2 무서워서 못 쳐들어온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사춘기의 절정에 다 달아 있는 중2는 까칠함 그 자체로 묘사되죠. 그 시기 부모는 매일 살얼음 판을 걷는다고 해요. 자식이 언제 폭발할지 모를 일촉즉발 상태로 방에 쿡 박혀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중2병, 사춘기의 개념을 뛰어넘은 사람이었어요. 일촉즉발은커녕 웃기 시작했죠. 굴러가는 낙엽에도 웃는 꽃다운 나이라고 했던가요? 저는 정말 이상할 만큼 웃었어요. 별것에 웃기 시작해서 그 별것에 웃는 나 자신이 웃겨 또 웃고, 별것에 웃은 스스로를 웃겨하며 또 웃어버린 나 자신이 어이없어 또 웃고... 멈출 수 없는 웃음에 배꼽 잡고 괴로워했어요. 배가 너무 당겨 웃음을 멈추고 싶은데 계속 웃음이 났거든요. 이처럼 선한 사춘기도 없을 거라 자부해 봅니다.


호르몬 장난질에도 웃어버린 저. 그 버릇을 어디 멀리 보내지는 못했어요. 별것에 웃는 스스로가 웃겨서 또다시 웃던 저는 (다행히도?) 떠나갔지만, 별것에도 잘 웃는 성인으로 자라났어요. 이건, 이런 모습이 부끄러워 비밀이었는데, 용기 내어 비밀을 공유해 보자면, 사실 여전히 혼자 있을 때도 씰룩씰룩 미친 사람처럼 잘 웃어요. 가만히 있다가도 별의별 생각으로 혼자 웃고, 거울 보고도 별 생각이 다 들어 혼자 웃고, 샤워하다가도 크크크 하고 혼자 웃어요. 중2 때 든 허파에 바람이 완전히 다 빠져나가지 못했을까요?

밝고, 웃음이 많은 건 좋은 일이지만, 저에게는 고민이기도 했습니다.

‘웃음이 너무 헤픈 건 아닐까? 너무 헤퍼서 가벼워 보이진 않을까?’

이런 고민에 이런 위로를 받았었죠.

“잘 웃으면 좋지. 너 또 진지하잖아.”

만족스러운 위로였어요. 저런 해석을 또 듣고 싶어 다른 곳에 가서도 헤픈 웃음이 고민인 듯 털어놨어요. 그런데 헤픈 웃음을 가진 스스로를 내심 좋아하고 있었던 걸까요? 아님, 실은 '헤픈 웃음은 좋은 거야.'라는 말을 듣고 싶어 고민 인척 털어놓고 다녔던 걸까요? 돌아온 의외의 대답은 가슴을 쿵 내리 찧었어요.


“아냐 헤프지 않아. 너 냉정해.”

그동안 가졌던 웃음에 대한 세계관을 뒤 흔드는 발언이었어요. 제 고민은

‘나는 어떤 모습을 한 사람인가.’, ‘나는 누구인가.’로 변신되어 돌아왔죠.


웃음 많은 연예인을 꼽자면 배우 차태현을 꼽을 수 있어요. 그의 웃음은 유쾌하죠. 예능프로에 언제나 적합한 웃음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웃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난 진짜 잘 웃어. 웬만하면 다 웃겨. 못 살릴 게 내가 웃어 살기도 해. 그런데 나는 웃어주진 않아. 진짜 웃겨야 웃어.”


아마도 이런 웃음을 냉정한 웃음이라고 말하나 봐요.

진실 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노력했었고요. 그런데 솔직하게 사는 게 진실 되게 사는 거라 착각하며 살았어요. 가식을 부릴 만큼 능청스럽거나 뻔뻔스럽지도 못했죠.


진실, 진심, 솔직, 가식, 거짓, 배려 이 같은 감정선들의 경계가 혼선을 일으켰어요. 아니, 너무 과할 만큼 명확하게 구분 지어 스스로를 냉정하게 만들었죠. 진심이 아니면 반응하지 않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어요. 하얀 거짓말이라는 배려를 베풀지 못할 때도 있었던 거 같고요. 눈곱만큼이라도 재미가 느껴져야 웃었던 저는 이해 안 된 상대의 웃음 포인트에 함께 해 주지 못했어요. 적당히 무안하지 않게 웃어줄 수 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냉골 같은 가슴을 가지고 로봇처럼 칼 같이 반응하는 저를 발견하며 얼굴이 빨개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나마 웃음의 기준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사실 아직 진실, 진심, 솔직, 가식, 거짓, 배려와 같은 감정들이 어떤 모양을 가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식 없이 솔직하다는 말은 가식과 솔직함 두 단어를 부정과 긍정으로 대조시키지만, 솔직함은 때때로 누군가의 가슴에 칼을 꽂죠. 솔직하지 않고, 진심 없는, 거짓된 그러나 적당히 부린 가식웃음엔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배려는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든다지만, 과한 배려는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죠.

진심은 통한다고 했지만, 거짓품은 가식, 그 자극적인 맛, 그 기세에 치여 깊고 진한 진심이 꽤 자주 소외되었음을 느낍니다.


혼란스러워요. 얼마만큼 더 웃어주어야 하고, 어디까지 웃어야 하며, 어디서 웃음을 감추어야 할지 그 정도에 대해서요. 그런데 이런 결론을 내리려고 합니다.

'적당히 선한 마음이 닿아있는 곳까지'

'선한 마음이 넘치지 않게 닿도록'

이 정도가 적당하지 않나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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