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탈리아로 갈 거야!”
중학생이던 그때, 대뜸 막연하게 이탈리아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20대가 되어서도 입버릇처럼 이탈리아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만 스물셋, 늦봄과 초여름 그 어디쯤, 정말로 공부할 책을 바리바리 싸 들고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탔다.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두 달 동안은 밀려오는 행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걸까?’ 이 모든 상황이 의심스러울 만큼 끊임없이 행운이 따랐다. 예기치 못한 행운이 찾아올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어서 어디에 넙죽 절이라도 해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이십여 년 인생에 이런 두 달은 처음이야 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치면서도 마음 한 편엔 아쉬움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 이유인 즉 슨, 커피와 술, 그 액체들에게 완벽한 행복을 완성하기 직전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맑은 물 보다 흔할지 모를 액체, 이탈리아의 자부심이자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이탈리아 커피. 한국보다 몇 배나 저렴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맛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곳은 천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쓴 맛을 이십 대 중반이 되도록 이해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커피와 호흡이 그리 좋지 못한 몸뚱이, 그런 체질을 가진 내가 억울하게도 이 천국과 하필 인연이 닿아버렸다. 억울함이 이 뿐이면 좋으련만, 정말이지 나란 인간은 성인이 되면 즐길 수 있다던 액체란 액체는 죄다 어울리지 않는 몸뚱이 인가보다.
매일 같이 날이 예쁜 이탈리아의 여름, 선선한 바람이 불고 뉘엿뉘엿 해가 떨어질 때쯤, 이탈리아 젊은이들에게 핫 하다는 거리로 나갔다. 대리석을 운반하는 운하였다던 곳.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는 운하의 양옆으로는 길게 늘어선 노천 테이블과 고풍이 흐르는 건물 그리고 푸른, 붉은, 어둑한 빛이 조화를 이룬 하늘. 그 배경 벗 삼아 한껏 멋 낸 멋쟁이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앉아 가볍게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 유럽의 묘미는 단연, 노천 테이블이지. 이런 완벽한 유럽의 장면을 맞이하다니.’ 가슴이 설레었다. 그러나 흥분이 오를 때쯤 깨달은 것이 있었다. 어른이 되면 합법적으로 즐길 수 있는 쌉쌀한 맛, 그 액체 고작 한 모금에 이상증세 보이는 재미없는 몸뚱이가 바로 내 몸뚱이라는 사실을. 비록 혼자지만 그 장면에 합세할 용기가 충만히 있는데, 그 장면을 눈앞에 두고도 관람객으로 그쳐야 하는 신세에 억울함을 머금어야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매일같이 카페에 들러 선채로 커피 한잔을 입에 탁 털어 넣고 제 갈 길을 간다. 그런 이탈리아 문화에 자연스레 이곳의 한국인들도 틈나는 대로 커피 한잔씩을 마시곤 하는데, 때때로 나에게도 커피 제안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슬픔 섞인 거절을 하며 덤으로 “제가 이 나라에 살게 되었는데, 커피와 술을 할 줄 모릅니다.”라고 덧붙이곤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니, 그럼 무슨 재미로 살아요?”라고 되물었다.
그날도 선배의 커피 제안에
“저 커피도 술도 못해요, 여기 사는데....”
라고 아쉬운 소리를 했다. 그리고 다름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그럼 무슨 재미로 살아?”
‘그럼 그렇지.’ 익숙한 반응에 속으로 빙긋이 웃던 그 찰나, 예상지에 없던 질문이 추가로 꼬리를 달았다.
“그럼 스트레스를 뭘 로 풀어?”
“취미가 뭐야?”
연달아 온 두 질문에 똑똑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스트레스 해소?, 취미?, 그게 뭐였더라....?’ 분명 알아주는 강한 멘탈의 소유자로서 씩씩하게 혹은 신나고 행복하게 이 삶을 살아가는 중인데 왜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인지. 그날 하루 온종일 머릿속에 물음표를 달고 다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 정답을 알 수 있었다. 질문을 받던 그 순간에도 머릿속을 맴돌 단어 ‘글’, 글이었다.
‘글 쓰는 것이요. 제 취미이자, 놀이이자, 스트레스를 담아내는 수단이자, 생각정리의 수단, 그리고 성별이 의심될 정도로 무뚝뚝한 저에게도 존재하는 감성과 표현의 욕구, 그 모든 욕구를 해소하는 수단, 제 만병통치약은 글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그때 뱉어야 했던 답이었다.
그랬다.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성인이 되고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힘들 때나, 감성에 젖은 날에도 글을 썼다. 자필로든, 개인 매체든, 핸드폰 메모장이든, 어디든지 무수히 담았다. 이 오랜 취미를 왜 말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피를 가진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취미라는 게 그 사람의 색을 짐작시키기 마련인데, 한국 사람들의 고질병이 있다면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남의눈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나도 뭐 그리 특별하지 않은 평범함 한국 사람에 불과하기에 글쓰기라는 취미는 어쩐지 진지하기만 해서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거나 허세 가득한 사람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외에 비슷한 부류인 독서도, 피아노 치기도 모두 걸러냈다. 그리고 정반대 성격을 가진 부류의 취미도 떠올랐지만 그 역시 걸러냈다. 너무 생산적이지 못해서 나태하게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취미라기엔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니, 그나저나 취미 하나 말하는데 뭐 이리 감별을 많이 하는지, 어디 면접이라도 보는 중인가? 어쨌든, 별 사소한 것에도 심각하게 남을 의식하는 삶이 물들어 있는 것 같아 두려웠다. 이러다 내가 없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모든 취향이 남의 시선에 의해 변하고, 적당히 멋없지도 그렇다고 너무 멋있지도 않은 것으로 선별하고 선정하여 합격시킨 취향. 취향에도 없는 취향. 그것들이 어느 날 나의 모든 것을 정복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이 모두 다 정복해 버리기 전에 미우나 고우나 나의 것을 찾고 지켜나가야 할 테다.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