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제게 책에 대한 마음을 물어올 때면 ‘읽으려고 노력한다.’라고 대답해요. 책을 좋아한다거나 많이 혹은 자주, 잘 읽는다고 말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책을 좋아해서, 그런 이유로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어릴 때부터 책의 중요성에 대해 귀에 딱지 앉도록 들었지만 도통 마음이 생기지 않았어요. 늘 회피의 대상이었죠. 오죽하면 책을 읽지 않아 나중에 피눈물 흘릴 날이 올 거라는 예언을 듣기도 했답니다. 중학생이 되어 성적표를 들고 울던 날, 그날이 바로 책을 회피해 왔던 날들에 대한 벌이 떨어진, 그런 날이라 생각했죠.
얼마 전 사려던 책이 있어 서점에 들렀습니다. 원하던 책을 손에 쥐었음에도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어슬렁어슬렁 서점을 돌아다녔죠.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딱히 더 살 책이 있는 것도, 더 읽고 싶은 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사놓고 다 마무리하지 못한 책도 밀려있었는데 말이죠. 손에 한권만 들려있음에 공허함을 느껴 책들 사이를 빙빙 도는, 그 걸음을 이해해보려다 언젠가 예술을 주제로 대화했던 때를 떠올렸어요.
예술이라는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희의 대화는 미술작품으로 치중되는 분위기였습니다. 미술에 전혀 일가견이 없는 저는 다들 하나쯤 좋아하는 미술작품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저는 그 유명한 세계적인 작품을 보고도 감정을 느낄 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거든요. 원래 다들 그런 거 아니었나요? 어쨌든 미술에 조예가 크지 않다는 한 명이 나타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는 미술과 가까워지고 싶어 미술관에 가 하루 종일을 보내다 온다고 했어요. 그건 예술에 대한 한 가지 노력이라고 했죠. 그런 그에게 누군가 이런 피드백을 했습니다.
“미술을 이해하고 싶어 미술관에 가서 하루 종일을 보내고 오는 거, 그 자체가 미술을 좋아하는 거 아닌가?”
그는 이 말을 듣고 미술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죠.
저에게 책을 즐긴다는 건 늘 해내지 못한 숙제 같은 거였어요. 그런데 ‘읽으려고 노력한다.’라는 거 자체가 책을 좋아하는 중인걸 까요? 미술을 이해하고 싶어 종종 미술관에 찾아 하루 종일을 머물다 오는 그의 노력이 어쩌면 미술을 좋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 거처럼요. 스스로 그곳에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곳에 노력을 부어보는, 그 정도가 그것을 좋아하는 거라면, 저 또한 지난날 책에 부었던 노력에 대해 나열해 보고 싶습니다. 책에 대한 제 마음을 다시 생각해 보고 싶거든요.
돌아보면 침대 머리맡엔 꽤나 높은 확률로 늘 책이 있었습니다. 잠들기 전 찔끔찔끔 읽을 두 , 세권 정도 가요. 마무리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려 같은 책이 오랫동안 제 곁을 지키긴 했지만요. 대학생 때는 시험기간이 끝나면 꼭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에 발길을 두었고 , 요즘도 도서관에 간지 좀 뜸해졌다 싶으면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 가끔씩이라도 습관처럼 들립니다. 그리곤 늘 다 읽지도 못 할 거면서 적어도 두, 세 권씩을 빌려와요. 반납일이 다가오면 매번 괜히 욕심부려 무겁기만 했다고 생각하면서도요. 서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드는 한 권을 품에 안고도 꼭 다른 책을 계속 더 뒤적거리죠. 책 한 권을 집어 들자마자 바로 쿨하게 계산대로 간 적이 없어요.
미미하지만 이토록 책에 대한 노력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결핍에 대한 몸부림, 채움에 대한 강박이자 집착이며, 나라는 인격체가 조금이나마 나아졌을 거라는 안정감 또는 더 나은 인격체에 대한 욕구 같은 거라 생각했어요. 좋아한다고 말하기 뭣한, 단지 ‘노력’ 그 자체요. 하지만 얼마 전 서점에서 책들 사이를 빙빙 돌며 책을 고르기는커녕 그동안 해온 노력의 역사를 사색하다 보니, 노력 아닌 ‘좋아함’이 묻어있는 역사도 있는 거 같았습니다.
고등학생이던 언젠가 특정 요일마다 친구와 도서관에 내려가 책을 반납하고 새로운 걸 골라오는 일이 학교생활의 한 재미이자 취미인 적이 있었고, 책상 위에 교과서와 문제집 따위를 담처럼 쌓아 올려 그것을 방패 삼아 수업시간 몰래 책에 몰입하던 적도 있었죠. 또 외국에 있는 동안은 책에 대한 갈증을 느껴 간절히 한국 책을 구하던 때가 있었고, 그런 자신을 보고 언제부터 그렇게 책을 많이 읽고 좋아했다고 이러나 하며 우습게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좋아함’이란 게 어떤 감정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노력한다는 건 잘해보고 싶다는 뜻이고, 잘해보고 싶다는 건 대게 좋아하기 때문이니, 노력을 붓는 곳엔 결국 좋아함이 깔려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 무언가 생각이 나고 자꾸 떠올리게 되는 것, 그것 또한 좋아함의 증거이겠죠? 그럼 저는 이제 책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라고 말해도 되려나요? 아니, 책에 대해 노력한다라고 생각해 온지도 꽤 오래되었으니, 어쩌면 저는 꽤 긴 시간 동안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간장 맛이 진하지 않다고 간장이 아닌 건 아니고, 된장 맛이 진하지 않다고 된장이 아닌 건 아닌 거처럼, 제각각인 감정의 농도도, 그 농도가 미미하다고 해서 감정의 명칭이 바뀌는 건 아니죠. 저는 미미하지만 제 안에 흐르고 있던 감정들을 얼마나 많이 모르고 혹은 오해하며 지나쳤나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책이라는 존재가 그랬던 거처럼,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고 지나쳤을 그 수많은 것들이 아쉬워집니다. 놓치지 않고 알아차렸다면 제 삶이 좀 더 풍족했을 테니까요. 아! 좋아함이란 감정이 마냥 좋은 감정들만 파생시키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어느 한편 덕분에 평화로웠을지도 모르지만요.
어쨌든 서점을 빙빙 돌다 결국 한 권 만 손에 들고 나왔습니다. 요즘엔 마무리하지 못한 책도 빌려보고 싶은 책도 정말 많이 밀려 있거든요. 그래서 책 한 권을 더 가져오지 못했기에, 비록 책을 통한 더 나은 인격체가 될 한 번의 기회를 상실했을지 모르지만, 책 속을 걸으며 책 한 권만큼의 가치를 얻었다 라고 마무리하려고 한다면, 너무 오글거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