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덕분에 참 좋았고 고마웠노라고

라디오, 라디오 카세트

by 정윤희


10대 때 부모님과 겪은 갈등 대부분은 공부와 연결됩니다. 나태하게 시간을 보낼 때, 너무 오랫동안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붙잡고 있을 때도 받았던 잔소리의 결론은 숙제 및 공부로 연결되었죠. 그런 유형의 잔소리가 잔잔한 일상에 불과해 지금은 기억 속에서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없지만, 몇 가지 사라지지 않는 기억도 있습니다. 잔소리가 커져 전쟁처럼 거친 대립이 일어났던 순간들이죠. 그날 저는 라디오 카세트를 압수당했습니다. 그날의 화제는 방문을 열 때마다 매일같이 틀려 있던 라디오 카세트였기 때문입니다.




‘라디오’라는 매체를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습니다. 신문물로 가득 찬 사촌언니의 방에서였죠. 5살쯤 차이나는 사촌언니의 방은 늘 저의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언니 방을 구경하는 일이 마치 엄마의 화장대와 옷장을 구경하는 기분과 닮아 있었거든요. 어린이는 가질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던 안방처럼 제 방에서는 볼 수 없는 다소 덜 유치한 물건들로 가득했어요. 연필을 쓰는 제게 샤프는 신비로웠고, 연예인 브로마이드는 어쩐지 교복을 입은 언니들의 문화인 것처럼 느껴졌죠. 또 이모 댁을 방문할 때마다 언니 방에 있는 매니큐어를 바르는 게 낙일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 방보다 모든 문화가 앞서 있던 그 공간에서 많은 신문물들을 유입해 왔어요. 그날도 신문물을 구경하러 언니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평소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늘 우러러보던 공간이어서 그랬을까요? 방을 은은하게 채운 라디오 소리가 얼마나 느낌이 있던지. 그날, 그 방의 분위기는 제 마음을 사로잡았죠.




실은 제 방에도 노란 라디오 카세트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걸 통해 라디오라는 매체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었죠. 라디오로 새로운 감각을 느끼던 날, 저는 제 방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사실 예쁜 제 카세트는 영어 테이프를 재생시키기 위한 용도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활용되지 않고 있었죠. 그런 카세트로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니. 집에 돌아와 뽑혀있던 카세트 선을 다시 콘센트에 꽂았어요. 라디오 기능을 켜고 곧장 FM으로 맞추었죠. 그리고 매일 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리며 탐험을 했어요. 어떤 시간에 어떤 DJ가 진행을 하는지, 채널마다 어떤 분위기의 방송이 흘러나오는지, 선곡은 어떤 분위기인지에 대해서요. 그리곤 밤에 방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라디오를 듣다 잠드는 일이 좋았어요. 온갖 사연들이 재밌었고, 좋아하는 노래가 틀리는 행운이 나타나길 기다리기도 했죠. 좋아하는 연예인이 생기면서부터는 그들이 출연하는 라디오를 찾아 듣기도 했어요. 또 우연히 그들의 음악이 틀리면 볼륨을 높이고 스피커에 귀를 갖다 댔어요. 가사 하나하나를 귀에 새기며 행복해했죠. 밤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감수성을 채우는 일, 제 라디오 역사는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계속되었답니다. 저의 10대 시절, 밤 시간을 꽉 채워 낸 거죠.




사실 부모님께 혼이 날 만큼 그리고 카세트를 압수당하던 날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만큼 라디오에 애착을 가진 건, 단지 밤마다 듣던 그 느낌, 그 추억 때문만은 아니에요. 라디오는 제게 사춘기 시절 가슴을 답답하게 죄여 오던 어느 한 구석, 그곳을 숨 쉬게 한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대게 DJ는 전적으로 청취자 편이에요. 청취자의 문자를 읽으며 맞장구를 치고, 청취자의 사연을 읽으며 공감을 하고, 위로를 하고, 응원을 하죠. 저는 마치 사연의 당사자라도 된 듯 DJ의 말에 위로를 받고 힘을 냈어요. 또 어느 누구에게도 털지 못하고 속앓이 하던 문제가 꽤 종종 해결되기도 했죠. 라디오에서 나오는 수많은 말들(DJ의 말, 게스트의 말, 사연, 문자 등등)은 종종 제 머리를 띵하게 울려대곤 했거든요. 즉, 라디오는 10대 때 저의 정서와 감수성을 아주 깊숙이 책임지고 있었어요.




카세트를 압수당한 후, 성인이 되면 꼭 그것을 돌려내리라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예상치 못하게 세상은 급격히 변했어요. 방송국마다 라디오 어플이 생겨났고, 팟캐스트 같은 콘텐츠가 사람들 귀를 라디오에서 멀어지게 했죠. 이러한 변화에 저 역시도 변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당시 라디오 어플은 끊김 현상이 심했고, 팟캐스트 같이 한 주제를 전문적으로 하는 건 굳이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이러한 이유가 깊어지는 밤에 귀로만 듣던 수다에 대해 한참 갈증을 느끼게 했죠. 그러다 갈증, 그 마저도 제게서 잊혀졌어요. 그리고 그 사이 밤은 서서히 스마트 폰과 SNS가 채워내기 시작했답니다.




성인이 되고 한 3-4년쯤 지났을 때였을까요? 스마트 폰으로 매일을 채우다 문뜩 카세트로 듣는 라디오가 그리웠어요. 방구석 어딘가에 박혀있던 라디오를 꺼내 콘센트에 연결했죠. FM으로 설정하고 이리저리 주파수를 돌렸어요. 처음 라디오를 듣던 그날처럼요. 그런데 발전된 음질에 적응이 되어버린 건지 아님 카세트 기능이 저하된 건지, 지직 거리는 라디오 소리와 선명하지 않은 DJ 목소리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한 프로도 완전히 듣지 못한 채 빨리 꺼버렸어요. 예전엔 책상에 앉아 온갖 것을 다하면서 몇 시간씩 들었던 라디오를요. 저는 그날 카세트로 라디오를 듣는 시대가 완전히 가 버렸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소음처럼 느껴졌던 카세트를 다시 콘센트에서 뽑아 방구석 어딘가에 정리해 놓았죠. 나의 어떠한 시기에 덕분에 참 좋았고 고마웠노라는 마음을 담아내면서요.




돌아보면 이모 댁을 다녀와 제 노란 카세트를 다시 콘센트에 연결하던 날 그리고 책상에 앉아 라디오를 듣다 말고 혼이 났던 날, 라디오라는 매체가 부모님과 갈등을 일으키게 될지도, 카세트로 듣는 라디오가 영원히 마지막 날이 될 거라는 사실도 생각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저의 지금은 또 어떤 자극이 저의 감수성을 변화시키고, 어떤 예상치 못한 순간이 마지막을 고하며 또 가슴속에 추억만으로 남을까요? 그땐 덕분에 참 좋았고 고마웠노라고 말하면서요. (아! 혹시나 해서 말인데요. 제게 스마트 폰은 그 대상이 아니에요. 그냥 중독일 뿐이죠. 더 자극적인 대상이 생겨난다면, 2G 폰을 보낼 때도 그랬듯 아주 쿨하게 보내 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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