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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엔 Jan 19. 2022

EP 01. 홍콩에서 새로운 세상을 찾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아 그냥 한 달만 어찌 병원에 누워있고 싶다.' 그게 우울증의 징조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이미 그 감정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


그 당시에는 가스라이팅인지도 몰랐던 말들에 치여 '나는 이직할 능력도 없을 거야'라는 불신이 점점 자라나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외부의 것들에 밀려 떠내려가던 어느 날, 다시 중심을 잡고 일어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냥 질러버렸다. 내가 꿈꾸던 삶은 이게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계속 사라지게   없었으니까.


운이 좋았던 인지, 그때 소위 말하는 '이동 ' 세게 들어왔던 건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지  2 만에 홍콩행이 결정 났다. 나도 놀라울 정도로 모든  빠르게 전개되고 있었고, 4월의 어느  나는 회사의 모든 이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며 내가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몸담은 회사를 떠났다.



홍콩에서 처음 찍은 풍경들

그렇게 새로운 국가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를 찾는 여정이 다시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니 너무 다행이었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다치지 않게 노력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건.


사실 시작은 설레지 않았다. 설렘보단 걱정이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비슷한 체계의 회사, 관련 분야, 심지어 해외. 어쩌면 도움받을 길 없는 타지에서 더 외로운 생활이 시작될지도 모르는 터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나는 참 많이 닳아있었구나. 그럼에도 축하와 부러움을 받으며(?) 나오는 그 길이 내심 뿌듯하긴 했다. 내가 그곳을 퇴사한다면 나는 꼭 나를 붙잡을 수 없을 만큼 좋은 기회로 나오고 싶었으니까.


이직이 확정되고, 홍콩으로 출국 준비를 하며 하필 바쁜 업무가 겹쳐 약 4주의 시간이 4일처럼 지나갔다.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유일한 팀의 장점이 그때는 참 크게 작용했다. 덕분에 주 1번 꼴로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비자와 기타 필요한 것들을 준비할 수 있었다. 11일 퇴사, 12일 출국의 말도 안 되는 일정이라 짐도 그냥 일주일 여행하듯 보이는 것들을 넣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이전에 여행을 왔었다고 어댑터에 바퀴벌레 약에 옥토퍼스 카드는 놓치지 않고 챙겨왔다.


어딘가에서 산다는 건 50KG의 짐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기숙사가 있던 때는 가구, 가전, 필수 소품들을 누군가 챙겨줬지만 여기는 학교가 아니었고, 집에는 가구도 없었고, 내가 가진 돈으로는 초창기 체류 비용도 해결할 수 없었다. 쓸 데 없이 코트도 두어 개 챙겼지만 정말 쓸 데가 없었고, 5월의 홍콩은 이미 한여름이었다. 50KG에 뭘 챙겼더라? 대체로 옷, 약, 전자기기, 호텔에서 먹을 식품, 화장품 정도였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무거웠네.


약 3년이 지난 지금은 그 당시 가져왔던 물품이 거의 남아있지 않는데도 100KG는 훌쩍 넘을 것 같다. (가전, 가구를 제외하고) 그간 그렇게 나는 홍콩에 정착했다.

캐리어 두 개에 담긴 나의 짐들


여하튼 바쁘고 바쁘고 바쁘고의 연속이다 보니 홍콩에 도착해서 처음 맞는 하루의 주말이 가장 여유로운 휴식이었고, 그다음 2달간은 또 업무에 적응하느라 집을 구하느라, 가구를 사느라, 8-9시 귀가가 기본이었다. 나의 첫 집은 썩 맘에 안 들면서도 괜찮다 싶은 공간이었는데 '좀 더 좋은'을 외치느라 며칠 더 집을 돌아보러 다녔더라면 나는 더 정신없는 5월을 보내지 않았을까. 집을 하루 만에 구한 덕에 바로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사 오기 시작할 수 있었고, 길도 모르겠고 말도 안 통하는 곳에 나의 안식처가 있다는 게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침대는 2, 커튼은  달이 걸려 처음에는 바닥에서도 자보고, 커튼은  타월로 대신했다. 처음에는 스탠드도 없어서 그냥 불을 켜두고 잤는데 이런  타지의 삶인가. 그간 쌓여온 피로 때문인지 침대가 없어도 아주 꿀잠을 자긴 했다. 그리고 아침이면 해가  들어서 오히려  상쾌하게 일어났던  같다 ㅋㅋㅋㅋ


커튼을 대신한 비치타올과 잡동사니들

충분히 둔감한 몸뚱어리 덕에 그렇게 가구가 없어도,  먹고  눕고  적응하는 홍콩살이가 시작됐다.

19.5. 홍콩에서 본 첫 침사추이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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