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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엔 Feb 02. 2022

EP02. 바퀴벌레 꿈 이야기

홍콩의 바퀴벌레

이런 경험을 할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꿈에서 생생하게 바퀴벌레를 마주하는 일 말이다. 홍콩에 와서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게 그 벌레들이 너무 곳곳에 많다는 건데, 처음 홍콩에 왔을 때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하필 집과 생활용품 관련해서 팁을 얻다가 신축 아파트에서도 그 벌레를 마주했다는 글을 봤던 터라 신축에 들어왔지만 언제든 집에서도 볼 수 있겠다는 그 두려움이 너무 컸다.



5월, 이미 여름이 시작된 홍콩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때를 가리지 않고 흔하게 그 벌레를 볼 수 있다. 너무 일찍 출근하거나 한적한 거리를 피해 퇴근 후에는 바로 귀가했던 큰 이유 중 하나도 그 벌레들이었다. 사람이 드물거나, 청소를 하기 전이거나, 다들 가게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바닥에 방치해 둔 밤이 되면 그야말로 그들의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스스ㅡ스스, 뭔가 들어본 사람만이 알아챌 소리랄까!


1년에 약 8개월이 여름인 덥고 습한 날씨, 길 위에 방치되는 쓰레기들, 음식물을 따로 버리지 않고 모아서 버리는 생활환경. 당연히 벌레가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런 곳에 하필 나 같은 벌레 쫄보가 적응해보겠다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이곳에서 벌레도 혼자 이겨내야 하다니ㅠㅠ 현관이라는 개념이 없는 홍콩 집에서 문과 바닥 사이 0.5 센티미터 정도의 틈은 너무나도 넓어 보였고, 5월은 정말 매일, 6월은 2-3일에 한 번 간격으로 그 벌레를 꿈에서 만났다. 어쩌면 별 것도 아닌 벌레에 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싫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초연 해지는 건 쉽지 않았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아파트를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바퀴벌레를 만난 적이 있다. 입구 바로 앞에서 서성이는 그 친구 때문에 내가 몇 분을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더니 아파트 시큐리티 아저씨가 보고선 빵 터져서 그 친구를 처치하곤 나를 들여보내 준 적이 있다. 그 후에 아저씨는 나를 보면 같이 바닥을 살펴봐주었고, 덕분에(?) 나는 항상 안전하게 아파트를 드나들 수 있었다. 퇴근 후, 내가 만든 나의 최우선 과제는 최대한 벌레를 피해 집으로 빨리 가는 것이었다.


출근과 퇴근 때까지 움츠리며 다녀야 하다 보니 문득 교환학생 시절이 그리워졌다. 우리는 교내 기숙사가 아니라 교외 아파트에 함께 살았다. 윗집에는 오빠들, 옆집에는 언니들, 그리고 집 안에도 나를 도와줄 친구가 둘이나 있었다. 실수로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나왔던 날에는 룸메이트와 아파트 근처 시설을 배회하며 도와줄 은인을 찾았고, 무거운 짐을 옮길 땐 오빠들의 도움을 받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 집에 돈벌레 같은 게 들어왔는데 하필 봄방학 시즌이라 벌레를 무서워하는 언니와 나만 남겨졌다. 그때, 언니가 덜덜 떨면서도 벌레 잡는 걸 도와줬는데!


문득 그런 공동체 생활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가끔 그 벌레가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악몽을 꾸고 나면 괜스레 더 외로운 것 같고 그랬다. 당장은 안 나오길 바라는 것, 밖에서는 잘 피해 다니는 것이 상책이었다. 시간이 흘러 흘러 술 마시고도 집을 찾아가는 홍콩러가 되었지만, 여전히 가끔 바퀴벌레 꿈을 꾼다. 그리고 걔네는 봐도 봐도 징그럽고 무섭다. 그 언젠가 홍콩을 떠난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바퀴벌레는 아닐지?


어떻게든 청결하게 유지하려 노력했던 주방

지금의 나는 매일 바닥을 보며 걸어 다닌다. 누구보다 잘 피하고 싶고, 죽은 그 벌레들도 내 신발에 묻히고 싶진 않기 때문에! 물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홍콩의 바퀴 친구들은 날아다닌다. 지인 중 한 분이 밤에 산책을 한 후에 집에 들어왔는데, 우연히 옷에 붙은 바퀴벌레가 새로운 곳에 왔다며 신나서 집 안으로 날아들어갔다고 한다. 으악! 그 친구를 잡기 위해 굉장히 애쓰셨다고...!


혹 나중에 홍콩에 오게 된다면 꼭 바퀴벌레를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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