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건 둘째치고, 성실하게 갚아라
29살이다.
아직도 고등학생 같은 20살도 아니고,
확실한 성숙함이 있는 30살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
외모에 대해 딱 논하기 좋은 나이다.
20살땐 외모에 마음을 쓰는 어른들을 보면 이해가 가진 않았다.
내 기준에 그들은 그리 미적으로 유효하지 않았으며,
외모가 직접적인 이득과 연계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옷을 신경 쓴다던가
네일아트를 한다던지의
섬세함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했었다.
이모나 엄마가 항상
"너는 공부는 좀 되었고, 외모에 좀 신경을 쓰라" 고 하실 때 마다
나름대로 개성있게 잘 하고 다니는데 뭘 어떻게 더 하라는 거지? 생각을 했었다.
물론 외모에 1도 관심이 없는 선머슴 스타일은 확실히 아니다.
실질적으로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외려 궁금증은 꽤나 많은 편이었어서
내 얼굴이 어떤 유형이고, 어떤 색이 잘 어울리고, 어떤 체형이고,
이런 것들은 참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필자에게 외모라는 것은 철저히 미학 관점이였으며,
눈의 비율과 코의 위치 종아리의 둘레 등으로 재단될 수 있는 숫자의 영역이었다.
다만, 미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것은 꺼려졌는데 (그래서 화장도 잘 안했던 것 같다),
무심한 듯 여유로운 태도를 견지하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지금의 생각을 말해보겠다.
결혼을 하면서, 외모 고민에서 완벽히 해방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에서 처음 겪는 노화에 철저히 생각이 바뀌었다.
더이상 외모는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미학이 아니다.
역력한 생존의 몸부림이자 매일 전쟁의 결과물이다.
나처럼 외모에 대한 고민이 아닌
외모에 대한 투자와 노동을 해왔던 사람들은
당당히 그 보상을 받아내고 있다.
야근에도 시들지 않는 강인한 피부력과
화장하지 않아도 적당히 생생한 얼굴과 표정
삶의 자존심을 높이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근본이 된다.
어떻게 더 연명할지 머리 굴리고 수쓰는 것보다
성실하게 갚아나갈 때 더 이득을 보는 마이너스 통장처럼
외모는 매일의 신성한 노동과 경이로운 열정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진정한 아름다움에 존경을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