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고민이 많아질 땐 큰다는 것이다

인지부조화는 인간의 근본적인 학습 매커니즘

by Emily in Seoul

싸우는것은 싫다

고통스러운 건 벗어나야 한다

고민을 거절하는 것이 상책이다


대부분의 힘듦을 타인에게 토로하면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한 대책을 말하거나

고통에 공감하는 감정적 연대를 보여주곤 한다.


일반적으로 내/외면적 고통은 비정상적인 상태로 여겨지며

빠르고 원만하게 해결되어, 사라지길 원한다.

특히 깊은 상처로 인한 고통은 도끼에 찍힌듯한 흉터가 남기도 하는데

일반적인 경우에 그 것은 굉장히 지양되는 것이다.


불편함을 유발하는 고통은 ASAP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일까?

더불어, 나의 고통은 어떠하였는가?




3년 전의 내 모습은 작은 체구에 나름의 고통을 온전히 개워내지 못해서

어떤 출구로던 배출 (배설에 가까운)이 필요했고

가까운 사람들은 그 고통을 받아내느라 힘든 경우가 많았다.


특히 타인에 비해 스스로 자초한 고통을 많이 느끼는 편이었는데,

최근에서야 명확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에 입각하여 제안된 9가지 지능 중

사람들에게 익숙한 언어논리 지능, 예술 지능 등이 아닌

'자기 성찰 지능' 이라는 인자가 있다.


이 인자는 스스로의 현 상황과 미래의 비전 사이의 갭을 비교적 정확하게 인지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삶의 기류를 움직이기 위해 노력하는 재능이다.

건설적인. 이 단어 하나로도 하늘이 내려준 축복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20대 소녀가 그 능력을 성숙하게 활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비교적 자기 성찰 지능이 높았던 필자는 상승욕구가 매우 높은 사람이였고,

더불어 관계 지향성은 매우 낮은 사람이었기에

성장통을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성숙도가 부족했다.


그렇기에, 타인이 보기엔 쓸데없는 고민이 많고

현실에 만족할 줄 모르면서 동시에 밖으로 그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미운 7살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부모던, 애인이던, 선생님이던

부족한 실력에 비해 대담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 나를

버거워 했음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 이상을 컨트롤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물론,

나의 비전과 현실의 인지부조화는 여전하다:)

최근 남편과의 대화에서도 미래와 비전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특유의 시니컬한 톤앤 무드가

그의 달콤한 주말을 산산 조각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통을 달갑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통이 있기에 성장이 있을 것이며, 그렇기에 행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함을 다름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나의 오만함을

낯부끄럽게 깨달았던 순간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조금은 더 성숙하게 그 과정을 밟아나가고 싶다.


작은 발걸음이지만 조금씩 더 의미 있는 시간을

질적으로 만족할만한 결과를 만들어가는 30대를 꿈꾸며.



작가의 이전글[성찰] 찰나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