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맞이한 특별한 교사절 이야기
뻥! 소리와 함께 시작된 감사
"3, 2, 1... 발사!"
담임 선생님의 신호와 함께 작은 로켓이 교실 뒤쪽편을 향해 발사되었다. 발사된 로켓을 보며 아이들이 일제히 "와아~!"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는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르고, 누군가는 로켓을 따라 뛰어가며 어디 떨어지나 목을 빼고 지켜봤다.
9월 10일, 중국의 교사절. 우리 천둥이의 반에서는 특별한 과학수업이 한창이었다.
개학 첫 주에 찾아온 감사의 날
사실 처음엔 좀 이상했다. 9월 1일 개학을 하고 겨우 일주일 만에 교사절이라니! 새 교과서의 잉크 냄새가 아직 코끝에 남아있고, 짝궁과도 어색하고, 선생님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 상태인데 벌써 감사하라고?
한국 같으면 "아직 뭘 모르는데 뭘 감사해" 이럴 법도 한데, 중국은 달랐다. 배움의 첫 단추를 감사로 채우는 셈이었다. 마치 "공부하기 전에 먼저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부터 배우자"는 것 같았다.
카네이션과 회초리가 공존하던 그 시절
문득 내 어린 시절 스승의 날이 떠올랐다.
"엄마, 선생님께 뭐 사드려야 해요."
부모님은 늘 고민이셨다. 카네이션은 기본이고, 팬티나 스타킹 같은 실용적인 선물까지. 온 교실이 카네이션 향으로 가득했던 그날의 달콤쌉싸름한 기억.
그런데 그때의 '존경'은 참 복잡했다. 회초리가 무서워서 꼼짝 못하던 교실. "선생님 말씀은 곧 법"이었던 시절. 맞으면서도 "선생님이 나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우리. 공포와 존경이 뒤섞인 그 시절의 스승의 날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 묘하다.
태상추 교수의 깨달음에서 시작된 교사절
중국 교사절의 뿌리를 찾다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1931년, 태상추라는 대학 교수가 농촌 학교를 둘러보다 깜짝 놀란다. 초등학교 선생님 월급이 농민보다도 적었던 것이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교육을 하겠나!"
그는 분개했다. 교육이 나라의 미래인데 정작 그 교육을 책임지는 선생님들이 이런 대우를 받다니. 그래서 6월 6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고 교사 대우 개선을 외쳤다.
하지만 1950년대엔 노동절과 함께 기념하게 되면서 교사만의 특별함이 사라졌다. 노동자 대열에 섞인 교사들. 뭔가 아쉬웠을 것이다.
그러다 1985년, 드디어 9월 10일이 공식 교사절이 되었다. 왜 하필 9월 10일일까? 바로 개학 직후여서다. 새 학기와 함께 감사를 배우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었다.
체벌은 사라졌지만 권위는 살아있다
중국 교실 풍경이 신기했다. 체벌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교사의 권위는 여전했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老师好!(선생님 안녕하세요!)" 큰 소리로 인사한다.
한국에서 교권 추락으로 고생하는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장면을 보니 참 대조적이었다. 무서워서 조용한 게 아니라 존중해서 조용한 교실. 그 차이가 느껴졌다.
소박하지만 진심 가득한 교사절
중국 교사절은 정말 소박하다. 거창한 선물 대신 아이들이 직접 쓴 편지와 그림. 학부모들은 위챗 단체방에 "祝老师们教师节快乐(모든 선생님들께 행복한 스승의 날을 기원합니다)" 를 올린다. 우리 아들도 며칠 전부터 열심히 카드를 만들었다.
"아빠, 선생님이 좋아할까요?"
삐뚤빼뚤한 글씨로 "谢谢老师(선생님 감사합니다)"를 적으면서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리고 로켓이 날아올랐다
교사절 당일, 깜짝 이벤트를 준비되어 있었다. 과학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할 로켓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실험을 해볼 거예요!"
선생님이 작은 로켓 5개를 꺼내자 아이들 눈이 반짝거렸다.
첫 번째 로켓. "3, 2, 1!" 발사! 곧게 하늘로 치솟아 올라갔다.
"哇!(와!)" 박수와 환호성.
두 번째 로켓은 비스듬히 날아가 옆에 있는 사물함 위에 떨어졌다.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 삐뚤게 갔을까요?" 선생님이 물었다.
"방향이 이상했어요!"
"로켓이 무거워서요!"
아이들의 대답이 쏟아졌다.
플라스틱으로 된 블럭 투석기도 있었다. 집에서는 시시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학교에서 선생님의 지도하에 친구들과 함께 하니 아이들은 마냥 신났다.
따뜻함 vs 엄격함, 그 차이
우리 아들 담임 선생님은 정말 따뜻한 분이다. 숙제를 틀려도 "아, 여기서 실수했구나. 다음엔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며 격려부터 한다. 지인들 아이들도 모두 그 선생님을 거쳐갔는데 하나같이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바로 옆반은 달랐다. 복도를 지나가다 들리는 엄한 목소리.
"조용!"
한 마디에 25명이 일제히 숨을 죽이는 그 반. 지인의 아이들은 집에 와서 종종 눈물을 흘렸다. 학부모들도 걱정스러워하면서도 "그래도 아이들이 예의범절은 배우게 되니까"라며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학교를 두려움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게 과연 좋을까?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인데 선생님에 따라 아이들의 하루가 완전히 다른 색깔로 물든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안쓰러웠다.
권위는 사랑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날 교실에서 로켓을 날리며 웃는 우리 아들을 보면서 확신하게 된다.
권위는 두려움이 아닌 사랑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담임 선생님의 권위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억압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경험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존경했고, 그 존경은 강요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었다.
배움은 감사에서 시작된다
학기 초에 교사절이 있다는 건 정말 의미 깊은 일이다. 모든 게 낯설고 긴장된 순간에 먼저 감사를 배우는 것. 지식보다 관계가 먼저고, 성적보다 존중이 먼저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지식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누군가의 존중 속에서 마음이 열리고, 감사의 경험 속에서 자란다. 그래서 교사절이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는 지혜로운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 속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문득 내가 만났던 선생님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었던 선생님. 늘 무서웠지만 감기로 결석하면 집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주셨던 분. 그때는 무서워서 떨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엄격함 뒤에 따뜻한 마음이 숨어있었다는 걸 안다.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은 달랐다. 얼굴도 이쁘셨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괜찮다, 천천히 해봐"라고 격려해주셨다. 영어를 못해도 창피하지 않은 교실을 만들어주신 분. 덕분에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리고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수업보다 인생 이야기를 더 많이 해주셨던 분. "공부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지금의 내 가치관형성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각자 다른 방식이었지만 모두 나에게 무언가를 심어주고 가신 분들이다. 엄격함으로, 격려로, 때로는 인생 조언으로.
그런데 지금 중국에서 아들의 교사절을 보며 깨닫는다. 진짜 좋은 선생님이란 아이들의 기억 속에 따뜻한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선생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감사받을 만한 어른이 되어라. 그 감사가 네 인생을 더욱 빛나게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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