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전날, 아이의 설렘
소풍을 하루 앞둔 저녁, 아들은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혼잣말을 했다.
“과자는 몇 개가 좋을까? 음료수는 뭘로 할까?”
말끝마다 작은 설렘이 튀어나왔다. 입학한 지 두 달, 아직 중국어는 서툴렀지만
이번 소풍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친구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1980년, 내 기억 속 소풍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1980년대 초, 우리 반 소풍은 늘 북적였다.
50명이 넘는 아이들이 걸어서 목적지까지 갔다. 그때는 아이들이 참 거칠었다. 싸움도 잦았다. 과자를 빼앗기거나, 줄을 새치기하거나, 누군가 울음을 터뜨리는 일도 흔했다. 선생님은 호루라기를 불며 "조용!"을 외쳤고, 우리는 순간적으로 숨을 죽였다가 다시 떠들곤 했다. 도시락은 대부분 김밥이었다. 어떤 집은 햄이 들어갔고, 어떤 집은 단무지만 빼곡했다. 나는 옆자리 친구의 김밥을 부러워하며 "나랑 바꿀래?"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는 모두 한국어를 했지만, 정작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서툴렀다.
버스 안, 예상치 못한 첫 다리
아침 일찍, 아이들은 노란 버스에 올라탔다. 아들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잠시 뒤, 까만 눈동자가 반짝이는 중국 여자아이가 옆에 앉았다.
조용히 앉아 있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호기심이 가득했다. 아들이 과자 봉지를 열어 바삭한 소리를 내자, 소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谢谢!” (셰셰—고마워)
과자를 입에 넣은 소녀는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아들의 손을 덥석 잡았다. 심지어 볼에 장난스럽게 입을 맞추며 “우리 이제 친구야”라고 선언하듯 웃었다.
아들은 순간 놀라 얼굴이 붉어졌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지만, 이 아이는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 솔직함이 언어보다 더 빠른 다리를 놓았다.
흔들다리 위에서 시작된 동행
도착한 후, 아이들은 줄을 지어 흔들다리를 건넜다. 나무판자는 삐걱거렸고, 다리가 출렁거릴 때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강물 위로 번졌다.
아들은 살짝 긴장했지만, 소녀가 주저하지 않고 다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같이 가자”는 말 대신 손이 말해 주었다. 손을 맞잡은 채 건넌 다리는 그냥 다리가 아니라 두 아이의 우정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였다.
바다 속 터널, 눈빛으로 나누는 감탄
아이들은 바닷속을 재현한 푸른 터널로 들어갔다. 가상의 고래와 물고기들이 눈앞을 헤엄쳤다. 아들은 그저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는데, 소녀는 팔을 툭 치며 말했다.
“봐봐, 저기!”
그리고는 아들의 팔을 붙잡고 고래가 지나가는 방향을 가리켰다. 늘 한 발 먼저 감탄을 표현하는 여자아이 덕분에, 아들은 혼자 보는 것을 넘어서 함께 보고 ‘공감하는 법’을 배워갔다.
반짝이는 복도, 깜짝 뽀뽀 사건
빛이 반짝이는 복도에서 단체사진을 찍을 때였다. 아이들이 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서 있는 순간, 소녀는 갑자기 앞으로 쑥 나오더니 아들의 볼에 뽀뽀를 했다.
아이들은 일제히 “와아~!” 하고 환호했다. 아들은 얼굴이 빨개졌지만 입꼬리는 끝내 내려가지 않았다. 좋아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소녀의 당당함이 주변 공기까지 밝게 만들었다.
점심시간, 도시락보다 배부른 마음
점심이 되자 초록색 둥근 테이블 위에 도시락이 펼쳐졌다. 중국학교는 학교에서 도시락을 제공한다. 오늘 메뉴는 하얀 쌀밥에 볶음채소, 계란토마토에 여러 반찬이 있었다.
이 시간은 선생님이 정해준 또다른 친구들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다른 친구들도 천둥이가 신기한 듯 천둥이 숟가락 자기 반찬을 올려주고 말을 걸며 쉴새 없이 재잘거린다.
아들은 머쓱하게 웃었지만, 마음은 이미 배부르고 따뜻했다.
언어 대신 음식으로 마음을 나누는 순간, 아이들은 더 가까워졌다.
놀이기구 위의 용기
분홍빛 목마를 타고 소녀는 의기양양하게 고삐를 잡았다. “사진 찍어!”라며 공주처럼 뽐내는 그 모습은 당당했다. 옆에 있던 아들을 향해 “너도 타, 무섭지 않아. 내가 옆에 있을게”라고 말하며 격려했다.
시소에 앉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까르르 웃는 두 아이의 모습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완벽하게 맞는다는 걸 보여주었다.
폭포 아래에서
소풍의 마지막은 웅장한 폭포 앞이었다. 시원한 물소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아이들이 줄을 지어 노래를 불렀다.
수십 명의 아이들 사이에서도 소녀는 늘 우리 아들 옆에 있었다. 사진 속 가까이 붙어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은, 그날 하루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집에 돌아온 아들은 물었다.
“아빠, 언어는 통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재밌었을까?”
잠시 생각하더니 스스로 답했다.
“그냥 같이 놀고, 손 잡고, 웃으니까 금방 친해졌어.”
돌아보면 모든 시작은 작았다. 버스에서 내민 과자 하나, 다리 위에서 잡아 준 손 하나, 복도에서 건넨 장난스러운 뽀뽀 하나. 그 작은 행동들이 모여 하루를 특별한 추억으로 만들었다.
부모가 배운 것
어른들은 종종 좋아한다는 말을 망설이고, 마음을 감춘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좋아하면 손을 잡고, 음식을 나누고, 웃고,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그 솔직함이 우정을 가장 빠르게 자라게 한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중국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다음 날의 작은 선물
다음 날 아들은 작은 지퍼백을 가방에 넣었다.
안에는 한국 사탕 몇 개가 들어 있었고, 종이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谢谢.(고마워)
글씨는 비뚤어져 있었지만, 아들의 마음은 무엇보다 뚜렷했다.
그 작은 메모는 아이의 마음에 새로운 우정을 붙이는 리본 같은 것이었다. 사탕 몇 알, 짧은 문장 하나. 하지만 그 안에는 40년 전 나의 소풍에서는 미처 담지 못했던 마음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마음을 먼저 건네는 용기만은
언제나 변함없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