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이에게는 울타리였다.

VPN을 깔다

by 유투코스

중국 이우에 도착한 첫 날,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유튜브에 접속하는데 화면이 멈춰 있었다.

‘인터넷이 끊겼나?’ 싶어 재접속을 시도했지만, 아니었다.

구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모두 막혀 있었다.

순간 멍했다.

“아, 맞다. 여긴 중국이지.”


한국에선 너무도 당연했던 세상이 단숨에 닫혔다.

그때부터 내 일상엔 ‘VPN’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VPN(Virtual Private Network)은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터널’이다.

다른 나라의 서버를 거쳐서 인터넷에 접속하게 만들어,

마치 그 나라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도구가 VPN이다.

기업 보안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중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는 생존 도구나 다름없다.

유튜브를 보기 위해, 구글 문서를 열기 위해,

우리는 수시로 서버를 바꾸며 ‘인터넷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중국 정부도 가만있지 않다.

국가 행사나 기념일이 다가오면 VPN을 대대적으로 차단한다.

그 기간엔 유튜브도, 메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야말로 ‘디지털 고립’.


처음엔 답답했다. 내 손발이 묶인 듯했다.

그러다 어느 날, 천둥이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뽀로로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아이가 천둥이다.

그날도 VPN이 잘 안 됐다.

뽀로로를 보여달라던 천둥이는 바닥에 배를 깔고 기다리고 있었다.

간신히 접속된 서버에서 30초짜리 클립 하나를 찾아냈다.

눈 위에서 미끄러지는 장면이었다.

천둥이는 깔깔 웃었다.

“아하하하! 뽀로로 넘어졌어!”

그리고는 자신도 바닥을 구르며 따라 했다.


그 순간, 문득 마음이 멈췄다.

‘이 아이가 이렇게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건…

인터넷이 막혀 있어서가 아닐까?’

인터넷은 양날의 검...

세상에서 가장 편리한 도구다.

지식도, 재미도, 전 세계의 연결도 모두 그 안에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무서운 덫이기도 하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 중독적인 게임, 폭력적인 콘텐츠들.

성인조차 빠져나오기 어려운 함정 속에

어린아이들은 너무 쉽게 빠져든다.

한국에 있는 조카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 유튜브 쇼츠에 중독돼 있었다.

식사할 때도, 화장실에서도 폰을 놓지 않았다.

부모가 빼앗으려 하면 울고 소리 지르고…

이미 ‘자극’이 뇌의 기본값이 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천둥이는

30초짜리 뽀로로 영상 하나에도 10분을 웃는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신기하고 의아했다.

아마도 그동안 영상에 적게 노출되어

아이의 마음이 아직 ‘순수의 영역’ 안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시스템이 대신 지켜주는 울타리


얼마 전 한국의 친구와 영상통화를 했다.

“야, 요즘 애들 유튜브 중독 심각하다.”

그의 한숨이 화면 너머로 들렸다.

“차단 앱을 깔아도 소용없어. 애가 비밀번호 풀더라니까.”

“여긴 그런 걱정이 없어.”

“왜?”

“그냥 시스템이 막아주거든.”

우리는 함께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엔 묘한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부모가 싸워야 하는 세상.

그에 비해, 여기서는 정부의 통제가 오히려 보호막이 되어 있었다.

‘불편함이 보호가 되기도 하는구나.’

늦게 줄수록 더 건강하게

언젠가는 천둥이에게도 스마트폰을 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능한 한, 그 시간을 늦추려 한다.

빠른 정보보다 더 중요한 건

‘바른 가치관’과 ‘자기 통제력’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녀에게 아이패드 사용을 금지했다.

빌 게이츠도 자녀가 14세가 될 때까지 핸드폰을 주지 않았다.

기술의 유익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오히려 기술을 늦게 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아이의 뇌와, 마음이, 세상을 감당할 힘을 갖기 전까지는

조금 불편해도 괜찮다는 의미일 것이다.

VPN이 막힌 불편함이

천둥이의 순수를 지켜주는 ‘시간의 완충지대’가 되어주고 있으니까.

불편함조차도 은혜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우에서 겪는 작은 불편함들이

신이 우리 가정을 보호하시는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VPN이 막혀서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구글도 안 되는 이곳에서

우리는 아이의 웃음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천둥이가 깔깔 웃을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고백한다.

‘그래, 이게 진짜 자유다.’


그리고 결심했다.

천둥이에게 가능한 한 늦게 스마트폰을 사주리라.

빠른 정보보다 깊은 만족을,

화려한 영상보다 단순한 기쁨을 가르치리라.

VPN이 막혀서 불편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자유롭다.

아이의 마음이 자극에 묶이지 않고

진짜 기쁨을 느낄 수 있으니까.

어제 밤, 천둥이가 또 물었다.

“아빠, 뽀로로 볼 수 있어요?”

“응, 잠깐만. 아빠가 찾아줄게.”

VPN을 켜고, 서버를 바꾸고,

겨우 찾아낸 1분짜리 영상.

천둥이는 그걸 보며 또 깔깔 웃었다.

나는 미소 지었다.

‘그래, VPN이 막혀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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