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움이 경쟁력이 된 나라, 그리고 아이의 공책
천둥이가 중국 학교에 다닌 지 어느덧 두 달이 되어 갔다.
처음엔 낯선 언어와 교실 문화에 적응하느라 눈물짓던 날도 많았지만,
요즘은 스스로 일어나 교복을 챙기고, 학교로 향한다.
“오늘은 한자 시험이 있어요.”
아침 식탁에서 천둥이가 말했다.
책가방 안에는 빽빽이 써 내려간 한자 쓰기장이 있었다.
아들은 하루에도 수십 개의 한자를 외우고, 쓰고, 읽기를 반복한다.
한국에서 공부할 때도 한글 받아쓰기를 많이 어려워했는데
군말없이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짠해진다.
아들이 입학하기 전부터 중국학교의 암기교육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밤늦게까지 숙제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국제학교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국제학교도 암기는 기본이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처음엔 걱정이 앞섰다.
‘이 어린 나이에 그렇게 많은 걸 외워야 한다니 괜찮을까?’
‘틀리면 혼나지는 않을까?’
‘혼나면 주눅들텐데...!’
사실 내가 교실 안에서 선생님들이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위챗을 통해 보여지는 선생님의 언어와 태도, 아이들을 향한
마음을 보며, 심하게 혼내거나 질책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매일 올려야 하는 읽기영상과 암기영상...
매주 부과되는 암기숙제와 과제는
교육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끈질긴지를 느낄 수 있었다.
모국어가 아니니 아들에게는 버겁겠지만, 집중하며 과제들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중국의 암기교육이 가르치는 것은
단지 ‘기억력’이 아니라 ‘버티는 힘’, ‘집중하는 습관’,
‘끝까지 해내는 의지’도 함께 배우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많은 서구 학자들은 중국 교육을 두고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덮어놓고 외우기만 하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교육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그 안에 숨은 힘을 볼 수 있다.
사실 우리 세대도 그랬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학교에서는 암산, 받아쓰기,
단어 외우기가 일상이었다. 칠판 가득 적힌 수학 문제를 빠르게 풀어야 했고,
교실마다 “구구단”을 외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단조롭고 고단했던 시간이었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짧은 시간 안에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가난했지만, 배우려는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그 시절의 암기와 훈련은 한 세대 전체를 일으킨 생존의 기술이었다.
중국의 교육도 그와 닮았다.
중국은 오랜 세월 동안 ‘기초지식의 체계적 축적’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왔다. 수학, 과학, 언어, 기술... 방대한 양의 내용을
어릴 때부터 반복하고 익히며 몸에 새긴다. 이건 단순히 시험 점수를
위한 과정이 아니다. 기초가 단단해야 생각이 자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같은 글자를 쓰고, 공식을 외우고,
틀리면 다시 고쳐 쓰며 정확성을 배운다.
그 과정 속에서 집중력과 인내심이 자라난다. 이런 반복의 힘은 결국
국가발전의 힘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정밀 계산이 필요한 반도체 산업, 오차가 허용되지 않는 우주 기술,
끊임없는 실험이 필요한 첨단 과학의 현장에서
그들은 놀라운 정확함과 꾸준함을 보여준다.
‘암기’는 창의성의 반대말이 아니라, 창의성을 떠받치는 근육이었다.
중국은 그 근육을 수억 명의 아이들에게 오랜 세월 동안 길러온 나라다.
이러한 배경에는 ‘표준화된 학습 시스템’이 있다.
14억 명이라는 거대한 인구를 효율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중국은 통일된 교과서와 시험 체계를 유지한다. 교사가 누구든, 어느 지역이든,
같은 교재와 기준을 통해 국가 전체의 학력 수준을 일정하게 맞춘다.
이 표준화는 단순한 획일이 아니라, ‘집단의 리듬’을 맞추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 덕분에 중국은 거대한 인구를 하나의 속도로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중국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제는 ‘암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암기를 토대로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다양한 교육이 확산되고 있다.
탐구형 수업, 프로젝트 학습, STEAM 교육, 토론과 발표 수업 등
새로운 시도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중국은 암기를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암기 위에 생각을 세운다.
기억이 튼튼해야 사고가 깊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에 급부상 중인 인도도 마찬가지다.
인도 역시 오랜 암기식 학습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국가교육정책(NEP 2020)을 통해 암기를 토대로 사고력과
창의성을 함께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외움의 기초 위에 이해와 응용을 더해가는 것이다.
그 결과, 상위권 대학과 IT 산업을 중심으로 기억과 사고가
조화를 이루는 교육문화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암기교육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조상들의 공부법이 떠올랐다.
조선의 선비들은 새벽닭이 울기 전 서책을 펼쳤다.
그들의 공부는 단지 글을 읽는 일이 아니었다.
한 문장을 백 번 읽고, 백 번 되새기며
그 뜻이 몸과 마음에 스며들 때까지 반복했다.
‘백독백습(百讀百習)’은 그들의 배움의 기본이었다.
글을 외우는 것은 그저 기억의 훈련이 아니라,
그 뜻을 삶으로 새기는 과정이었다.
세종대왕 역시 어려서부터 경전을 외우고 또 외우며,
글의 깊은 뜻을 깨닫기 위해 수없이 되풀이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암기는 암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 외움이 곧 통찰이 되었고, 통찰이 정책과 발명으로 이어졌다.
외움은 생각의 뿌리가 되었고, 생각은 세상을 바꾸는 씨앗이 되었다.
그들의 공부에는 시험도, 경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을 다스리고,
배움을 통해 마음을 넓히려는 끊임없는 수양이 있었다.
나는 그 정신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지식보다 인격이 먼저이고,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며,
‘사람을 깊게 만드는 일’ 그것이 교육이라고 믿는다.
밤이 깊어가고, 천둥이는 이제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도 공책 한쪽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이제 진짜 다 했다!”며 이불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곧장 잠이 들었지만, 작은 손끝엔 여전히 연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손을 살짝 펴주며 속삭였다.
“우리 아들, 오늘도 수고많았어.”
창밖으로 부는 바람이 잔잔했다.
이제 내일이면 또다시 눈을 비비며 학교 가방을 메겠지.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
배움이란 결국 완벽한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하루를 견디고, 또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마음을 키우는 일 아닐까.
오늘도 그 마음을 품고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배운다. 진짜 공부는, 어쩌면 이렇게 하루하루를
다해 살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