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줄거리를 요약하면 간단하다.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한 암 환자 ‘강지원’이 남편에게 살해당하고, 10년 전으로 타임슬립하여 자신의 운명을 복수로 되돌려주는 이야기.
살해당하기 전, 강지원의 삶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남편은 주식에 빠져 돈 날리기 일쑤에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까지 때려치워 능력도, 생각도, 심지어 정자도(?) 없는 폭력적인 남자인 데다가, 그의 어머니인 시어머니 역시 21세기 시대를 역행하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과 내뱉는 말마다 소름과 고혈압을 불러일으키는 역대급 진상이다. 강지원의 엄마는 그가 학생 때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 가정을 떠났으며, 그의 곁을 오래 지켜온 하나뿐인 단짝 친구는 알고 보니 엄마와 바람난 남자의 딸이고 그래서 강지원을 불행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그를 뒤에서 지독하게 괴롭혀온 희대의 빌런이다.
세상의 모든 비극을 쏟아 부은 그에게 단 하나의 햇볕이 있었으니, 바로 아빠다. 택시기사였던 아빠는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준다. 지폐에 앙증맞은 하트를 그려 지원에게 주곤 했던 아빠. 한편, 사고로 사망한 후에 타임슬립으로 돌아온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니, 바로 남자주인공 유지혁이다. 아빠가 지폐에 그리곤 했던 하트모양을 가슴에 문신처럼 새긴 채 10년 전으로 돌아와 지원의 복수를 돕는다. 키 크고 잘생긴 연하에 집안까지 빵빵한 이 남자, 아빠 용돈의 축복이 끝이 없다. 이토록 지독한 설정 과다 드라마가 있을까.
본래의 삶이 불행하면 불행할수록 타임슬립 후에 더 큰 통쾌함이 돌아온다. 그 때문인지 복수를 꿈꾸는 드라마는 전생이 최선을 다해 망가져 있다. 시청자에게 달고 시원한 사이다를 맛보여줘야 하니까. 하지만 전생에서 자신을 짓밟은 사람을 현생에서 더 크게 짓밟아버릴 때, 복수가 시원하게 성공할 때, 커다란 쾌감이 찾아오는 순간에 나는 묘한 좌절감을 느낀다. 사이다는커녕 도리어 이전 삶의 짙은 불행이 마음속에 도드라진다.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순도 100%의 피해자가 된 것 같은 경험. 가해자가 없더라도 그런 순간은 쉽게 일어난다. 누구 하나 잘못하지 않아도 그런 경험은 꽤 오랫동안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하다못해 사소한 말다툼조차도. 그때 이렇게 대답할걸, 왜 적절한 대답은 나중에야 떠오르는 건지. 사이다의 순간은 이렇듯 항상 머릿속에 존재한다.
드라마에서 전시하는 사이다 전개가 내겐 잘 와 닿지 않는다. 관계에서 착취당하고 끝내 살해당한 피해자의 판타지로 읽힌다. ‘사이다 복수극’, ‘본격 운명 개척’ 등등 속 시원한 단어들로 꾸며진 이야기일수록 현실과 더 멀어지는 별세계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복수는 결코 사이다처럼 달콤하고 청량할 수 없다. 복수를 다짐해도 세상의 수많은 방해에 지지부진할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순간들로 마음 곳곳이 멍들고, 들출수록 덧나는 상처를 마주하는. 무거운 독에 가득 담긴 눈물과 더 닮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