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6일의 기록>
역시나 연락이 없다..
<2024년 1월 17일의 기록>
일찍 경찰서를 다녀왔다
전세피해자로 선정이 되려면 임대인 고소장을 같이 제출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한다.
돈을 받기 위해 민사소송은 그대로 진행하고 고소장은 따로 직접 접수했다.
경찰서 민원실로 가면 상담을 따로 받을 수 있지만 우리는 피해자가 많아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고소장만 작성했다. 고소장 형식은 아주 간소했다.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인적 그리고 고소내용을 적을 수 있는 칸이 있었다.
우리는 인터넷에 있는 고소장 양식에 따로 작성해서 프린트해갔다. 고소장이 접수되면 담당 형사가 배정된다. 이후에 다시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한다. 증거자료는 나중에 형사에게 제출하면 된다. 고소장을 접수할 때 같이 내면 분실 우려가 있다고 한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부산전세사기를 검색하니 여러 곳이 나왔다.
전세사기 대책위원회라고 적힌 곳에 들어가 보니 우리와 같은 임대인에게 피해본 분들도 있었다. 대책위에서는 부산 시장에게 전세 사기 대책에 대한 간담회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며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돈을 받아내기 위해 몸무림쳤다.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는데, 사실 기대를 하고 있었나보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돈을 못 받겠구나 싶었다.
민사소송을 해서 경매가 진행되어도 남는 돈이 없고,
이미 임대인 명의로 된 건물은 없을 것이고,
몇 년에 걸쳐 추심을 한다고 해도 100억에 가까운 돈을 순서대로 받아내기란.
불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날린 1억 7천 5백.
거기에 소송을 하겠다며 변호사를 선임한 비용이 440.
그리고 앞으로 소송에 들어갈 예상 금액이 100만 원 가량.
그냥 있으면 1억7천5백만 날릴 것을.
괜히 500만원 넘게 더 잃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지만.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는 겁니다.”
라는 변호사의 말이 맴돌았다.
변호사 선임 계약을 하고 나니 괜히 더 불친절한 것 같고, 연락이 더 안 되는 것 같고. 나는 또 바보 같이 사기를 당한건가. 사기를 당해서 억울한 마음에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그 변호사마저 나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한 건 아닌가. 그러니까 잘 알아보고 선임을 했어야지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미리 어떻게 아나. 스스로 작아진다. 모든 책임을 남에게, 국가에게 덮어씌우고 싶은데 그것도 잘 안 된다. 결국 내 탓으로 돌아온다.
경찰서를 다녀오는 길에 버스를 탔는데 종점으로 가는 버스를 잘못 탔다. 네이버에서 알려준 대로 탔는데. 썅 되는 일이 없다는 게 이런건가. 괜히 눈물이 났다.
전세라는 제도는 한국에만 있다고 한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모두 좋아하는 제도이니 없애기보다는 보완이 필요하다.
내가 잘 알아보지 못하고 계약했으니까.
그러면서 보험도 들어놓지 않았으니까.
임대인이 갚을 능력이 안 되니까.
그렇게 어쩔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니 해결되는 것이 없다.
전세 사기를 당하고 나서 피해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았다.
부산시에서는 지원센터도 운영하고 있고 법률구조공단도 있다. 그곳에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알려주는 곳이다. 그 길은 인터넷으로도 알 수 있지만, 전문가에게 명확하게 들어볼 수 있는 곳이다. 거기까지다. 그 길이 온통 가시밭인데 조심해서 걸으라는 말을 해주는 곳이다. 해결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선정이 되면 이것저것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피해자로 선정되기도 어렵다. 선정 기준 자체가 높다보니 지원센터에 뭘 물어봐도 이곳은 접수만 하는 곳이라며 신청 후 국토교통부로 문의하라고 한다. 그리고는 전세사기로 심리치료가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문자 한통이 왔다. 상처를 내놓고 치료해주겠다는 싸패 같은 도시구나 싶었다.
대책이 없다.
대책이 없으니 대책이 분명히 필요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지치지 말라고들 하던데.
앞으로 좌절할 일이 많을 테니 지치지 말라는 뜻이었구나 싶다.
<2024년 1월 19일의 기록>
오픈 채팅방 중에서 우리와 같은 임대인에게 피해를 본 채팅방이 따로 만들어졌다. 채팅방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코드가 필요했다. 코드를 받기 위해서는 신분증과 전세계약서로 인증이 필요했다. 혹여나 이 채팅방에 임대인이나 그 주변인물이 들어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보안이 철저한 것 같았다. 채팅방에서는 피해자들의 건물 목록, 소송 진행 상황 앞으로의 대략적인 계획 같은 것들이 공유되었다. 이미 작년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피해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심지어 이사한 지 두 달 만에 사건이 터진 분도 있었다. 사건은 터졌지만 아직 계약 만료가 남지 않아 이리저리 난감한 분들도 여럿 있었다.
임대인이 이리저리 손을 많이 벌려놓은 상황이라 피해자들이 많았고, 피해자들의 연대가 생기니 심적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SBS 기자에게 제보해서 뉴스가 나왔던 것처럼 타 방송사나 유튜브 등에도 제보를 꾸준히 하고, 국민청원이나 민원 등으로 사건을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사건이 커져야 관심이 생기고 그제야 고귀하고 높으신 분들이 천한 우리를 한번이라도 봐주려나.
<2024년 1월 25일의 기록>
어제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고 오늘 진술을 하고 왔다.
피해자가 많은 만큼 형식적으로 진행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 평 남짓한 조사실로 들어갔다. 나와 정원이가 앉고 맞은편에 경찰이 앉았다. 녹취를 할지 먼저 정하는데 보통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우리에게 질문을 했고 내용을 컴퓨터에 옮겨 적었다.
고소인은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 왜 고소를 했는지 등 세세한 질문이 오갔다. 약속한 날짜에 보증금을 주기로 했고, 날짜가 되어도 보증금을 주지 않았고, 임대인은 잠적해버린 현재 상황이 아이러니하게도 사기로 성립되기는 어렵다고 했다. 계획적으로 우리를 속이고 이윤을 취하려는 내용이 있어야하는데 그게 부족했나보다. 오히려 공인중개사인 척 우리에게 접근했던 보조인에 대한 사기 혐의가 더 인정될 것 같다고 했다. 보조인은 보조인이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고 임대인이 안전하다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사건이 터지니 모른 척 발을 뺐다.
진술 내용에는 자세한 금액과 날짜가 들어가니 진술하기 전에 미리 중요한 내용을 기록해서 참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좁고 조용한 조사실에서 2시간가량 진술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말하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하소연을 하는 것과 진술을 하는 것을 너무나도 달랐다. 오히려 내가 임대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경찰에게 납득시켜야하는 상황이라 더 답답했다.
진술이 끝나고 진술내용을 프린트했다. 우리가 준비한 증거서류와 합치니 꽤 많은 양이었다. 종이마다 지장을 찍고 경찰서를 나왔다.
민사소송은 변호사가 알아서 진행하고 있다. 가끔 연락이 와서 어떤 과정인지 설명해주었다. 신경 쓸 부분이 줄었지만 500만 원가량의 비용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부담이었다. 피해자 채팅방에서는 이미 셀프로 소송 중인 피해자들도 있었다. 소송이 한번으로 끝날 것 같진 않으니 다음에는 셀프로 해봐야겠다.
임차권등기명령이 결정되었다. 등본에 완전히 설정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원래 더 빨리 된다고 했는데 이번에 신청한 사람들이 많아서 지연됐다고 한다. 그래 피해자가 정말 많다.
언론사와 국민청원, 지자체 민원 등 다양한 창구로 내용을 알리라고 해서 이리저리 글을 썼다. 국토교통부와 부산 시에 따로 글을 올렸는데 국토부에서는 다시 부산 시로 내용을 이관했고, 부산 시에서 온 답변은 전세피해자 신청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냥 피해자들에게 공통으로 전달하는 내용이라 복붙한 느낌이 크게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쓴 글인데 답변이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왜 시위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아무도 관심이 없다. 내 이야기를 그저 어떻게든 넘기려고만 한다. 어쩌면 부산 시는 이 사건을 숨기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토록 아무런 대책이 없을 수 있나. 그딴 답변을 주고도 민원 한 건을 해결했다고 처리하겠지.
피해자 채팅방에서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개인 간의 채권채무 문제인데 왜 나라를 탓하며 해결하라고 하는지 선을 넘은 것 같다고.
개인 간의 문제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개인 간의 문제가 쉽게 생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의 문제이고,
100억이 넘는 사기 혐의가 인정되어도 최대 15년 형만 살고 오면 남은 인생 즐기며 살 수 있는 한국의 법이 문제이다.
전세 피해자의 대부분이 청년층이고 그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명백히 사회적 문제다.
시간이 지날수록 끓었던 감정이 조금이 메마른다.
메말라서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진하고 끈적하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