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의 내용은 사실을 기반으로 할 수 있지만, 결론은 픽션입니다.
혹시 저녁에 바쁘세요? 오늘 말고 괜찮으실 때. 미지 씨가 내게 물었다.
미지 씨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집에 먹을 건 딱히 없는데 집밥을 같이 먹자면서. 미지 씨는 자취를 하니까 높은 확률로 열 평 남짓의 원룸이나 투룸에서 살 것이다. 그곳에서 단둘이, 미지 씨와 마주 앉아 저녁밥을 먹는다. 그 모습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누군가의 자취방을 혼자서 방문하는 일이 대학교 졸업 이후로 처음이었다.
역시 여름이었다. 퇴근 후에도 거리가 환했다. 저녁 바람이 나름 선선히 불어주었지만 그래도 후덥지근한 공기를 완전히 밀어내진 못했다. 미지 씨 집 근처 빵집에 가서 디저트로 먹을 팡도르와 고구마빵을 샀다. 난생 처음 가보는 골목을 미지 씨와 걸었다. 미지 씨의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미지 씨는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더위를 잘 타나보다.
흔히 투룸으로 칭하는 구조는 사실 방이 하나다. 분리된 공간이 두 개라는 의미로 거실과 방이 하나씩. 미지 씨의 집은 방 두 개와 거실 겸 부엌에 작은 창고가 딸려 있는 구조였다. 평수는 열 평 남짓이었지만 방이 두 개라니 참 좋은 자취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침실이 아닌 다른 방 한 칸에는 책상과 거치대 위에 올려둔 노트북이 보였다. 그 주변으로 낮은 책장도 있었다. 야근을 할 수 없는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미지 씨는 저 방에서 무얼 하는 걸까.
내가 집을 한번 둘러보는 동안, 미지 씨는 진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집에 먹을 것이 없다, 찌개가 전부라는 말은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미지 씨는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흐르는 물에 씻었다. 나는 계란 안 씻는데. 문득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생각났다.
가족도, 애인도 아닌 사람이 나를 위해 집밥을 차리는 모습을 보는 건 새로웠다.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저녁 메뉴. 그날 팽이버섯이 아닌 애호박이 있었더라면, 애호박전이 됐을 메뉴. 미지 씨는 팽이버섯을 꺼내 밑동을 자르고 계란을 풀어 맛소금을 쳤다. 계란물에 팽이버섯을 적셔 서둘러 굽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다, 중얼거리면서. 뭔지는 몰라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미지 씨의 좁은 거실에는 아늑해 보이는 베이지색 쇼파, 상판 전체가 유리라 바닥이 내려다보이는 테이블, 그 아래 회색 러그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각각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지만 나름 서로 잘 어울렸고, 오히려 그 이질성이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했다. 미지 씨는 쇼파와 테이블 모두 운 좋게 당근으로 구했다고 했다. 가장 비싸지 않을까 했던 쇼파는 심지어 무료로 나눔 받은 것이라고 했다.
미지 씨는 팽이버섯이 익는 사이, 엊저녁에 끓여놓은 된장찌개를 데우고 전기밥솥에서 흰 쌀밥을 펐다. 그래서 식탁 위에는 쌀밥과 된장찌개 두 그릇씩, 그리고 팽이버섯 전과 전을 찍어 먹을 간장 종지가 올랐다. 전기밥솥은 남자친구가 사용하던 건데, 남자친구가 투잡을 하느라 도저히 밥을 해 먹을 시간이 없어서 본인이 가져왔다고 했다. 물을 더 넣었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다. 또 미지 씨가 중얼거렸고, 나는 밥을 한 술 펐다. 밥알이 폴폴 밥 위에서 굴렀다.
잘 먹겠습니다. 흰쌀밥은 오래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감돌았다. 그릇에 담긴 찌개를 언뜻 봤을 땐 몰랐는데, 한술 퍼니 고기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팽이버섯전은 씹을 때 마다 팽이버섯이 오독오독 식감을 자극했다. 단출한 밥상이었지만 한 그릇, 한 그릇에 각자의 맛이 정갈하고 가능한 만큼 깊게 담겨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나눴던 이야기가 서로의 속을 터놓은 진솔한 대화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미지 씨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나는 아직 들어갈 수 없다. 다만 미지 씨의 겉을 요모조모 맴돌며 지금의 미지 씨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요즘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건 자연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돌고 돌아 걸어 들어가면 어느덧 미로 한 가운데 도달하게 되는 것처럼. 그건 누군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일과도 같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함께 일하게 될까. 미지 씨와 일하면서 나는 어떤 모습의 나 자신과 만나게 될까. 또 미지 씨는 내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 미지 씨가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펼쳐 보인 데도 그건 당연하다. 나는 계란을 씻지 않는 사람이고 미지 씨는 계란을 씻어 쓰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