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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철수 Aug 01. 2024

경계선

요즘 회사를 나가고 있다.

재택근무를 오래하다 오랜만에 회사로 불려나가니 짜증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집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니 마음가짐이 새로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점심시간이면 웃고 떠들며 헛소리를 하던 직원들이 업무가 시작되면 진지하게 업무에 임한다. 12시 59분과 13시의 경계에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낮은 담을 넘듯 쉽게도 목소리를 바꾼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최근 이런 페르소나에 대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 공유했다. 영상을 끝까지 보지는 않았지만(점심시간은 소중하니까) 결론은 페르소나를 잘 활용해야한다는 내용이었겠다.     


우리는 각자 여러 페르소나를 가지고 산다. TV에서는 아예 부캐라는 말로 활동을 하기도 한다. 내 속에 또 다른 나와의 경계가 너무 명확해서 다른 얼굴, 다른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가족을 만나는 나, 회사로 출근해서 동료를 만나는 나, 회사에서 고객을 대하는 나, 강이지를 대하는 나, 부모님을 대하는 나, 혼자 거울을 보는 나, 친구를 대하는 나. 심지어 친구도 어떤 친구인지에 따라 그 페르소나가 달라진다. 이 정도면 페르소나가 아니라 자아 분열이 아닌지. 내가 원해서 부캐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하려다 보니 내가 쪼개지는 것이다. 나는 그 균열의 고통을 느낀다.     


친하지 않는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면 웃어버리는 습관이 있다. 스몰토크인데 스몰하게 받아드리지 못한다. 습관이라는 표현보다는 고장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고장난 로봇처럼 웃어버린다. 그렇게 웃고 나면 또 갈라지고 부서져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이걸 현타라고 부르나보다.     


이제는 가능하면 그냥 내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웃기지 않으면 웃지 않고,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MBTI가 유행하고 좋았던 점은 내 모든 성향을 합리화시켜주는 것이다. 나는 I니까 말을 하지 않고 무뚝뚝하게 있어도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는. 사실 난 무뚝뚝하지 않지만 덕분에 내가 입을 다물 수만 있다면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아이에게는 세상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세상을 보고 세상이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고 세상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겠다. 나는 세상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정말 어른아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어른아이도 합리화해줄 MBTI가 내 속에 있을까.

‘서른인데 뭐하지’ 활동을 시작한지도 꽤 오래되었다. 마흔이 되면 ‘마흔인데 뭐하지’로 이름을 바꿔야하나. 생각하보니 10년짜리 이름이라 아쉽다.

혹시 마흔쯤에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뭘 해야할지 모르지 않고, 이미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하고 있어서 더 이상 ‘뭐하지’라는 물음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12시 59분의 담을 넘듯 쉽게 마흔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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