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을 행복에 집착해 왔다.
어릴 때는 너무 행복하면 숨을 참았다.
인생에 다시 없을 순간을 영영 붙잡아 두고 싶었다.
그래서 슬펐다.
그 행복들은 아주 짧게 나를 지나갔다.
나이가 들며 내 행복은 성취와 인정에서 온다고 믿었다.
뭔가를 해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잘'하고 싶었고, 그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요구하고, 칭찬에 목말랐다.
그러다보니 못미더운 나, 뛰어나지 않은 나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주변에서 눈치챌까 두려움에 떨었다.
그것이 나를 갉아먹는 줄 알면서도 해소할 방법을 몰랐다.
행복은 추구해야 마땅한 거니까, 대단한 것이니까.
너무 대단해서 어쩌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러다 최근 한 페스티벌에서 '유다빈밴드'의 무대를 보게 되었다.
보컬이 아주 어리고 귀여운 느낌을 가지고 있었고,
외적인 이미지와 달리 매우 강하고 시원한 발성이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웃으며 무대를 하는데 어쩐지 나는 울컥했다.
행복했다.
그래도 우린 좋지 아니한가
바람에 흐를 세월 속에 우리 같이 있지 않나
이렇게 우린 웃기지 않는가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에 우린 태어났으니까
- 유다빈밴드, 좋지 아니한가(원곡 크라잉넛)
삼십 도가 넘는 기온에 햇빛이 쨍쨍했지만 날이 맑아 좋았다.
내 위에는 그늘이 되어 줄 지붕이 있었고
산을 넘어 온 시원한 바람이 있었다.
그늘이 없으면 양산을 쓰면 되었고,
구름은 시간이 멈춘 듯 하늘에 그림처럼 떠 있었다.
허기져 사 먹은 국수는 저렴하고 양이 많았으며
밴드들은 각자의 공연에 최선을 다했고,
다채로운 음악이 끊이질 않았다.
땡볕에도 사람들은 평화로이 낮잠을 청했고,
무대 앞에서는 다 큰 어른들이 방방 뛰며 춤을 추었다.
시간에 떠밀려 보폭에도 맞지 않게 뛰는 듯 걸어가고 있던 나는
가만히 앉아서 행복을 만끽했다.
행복, 별거 없구나.
나는 이런 상황에서 행복해 하는 사람이었구나.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도 자꾸 까먹는다.
내가 나의 타인이 되어야겠다.
너는 이런 걸 좋아하는 구나, 이럴 때 행복하구나.
타인의 인정을 바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겠다.
거창하지 않아도 되고, 뭔가를 해내지 않아도 된다고-
내게 말 걸어주는 일은 오롯이 나의 몫일 테니까.
스쳐 지나가는 행복일지라도 잠깐잠깐의 행복들을 차곡차곡 모은다면
나도 행복할 수 있다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다고 믿게 되지 않을까.
- 세상의 모든 것들이 뜨거워지고 있는 유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