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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관한 첫 기억

서른의 서재: 김연수《이토록 평범한 미래》

by 김사슴


내가 김연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21살의 가을이었다. 20살,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해 그해 여름에 떠난 문창기행에서 김연수를 직접 만나기도 했건만, 기어코 해를 넘겨 21살이 되던 해에 그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그의 문장은 선선한 가을과 퍽 잘 어울렸다.


김연수 작가는 1994년 첫 장편 소설을 발표했지만 그가 이른바 ‘열일’했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때는 역시 2000년대 초반이다. 나는 그가 발표해놓은 소설을 부지런히 찾아다 읽었다. 시대와 사람,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성인이 되기만 하면 내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고등학생 때보다 더 자유롭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뭐든지 간에.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성장을 거듭하면 온전한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을까. 높은 파도가 엄청난 물살과 함께 들이닥치듯이, 20살의 나는 밀려 들어온 자유에 속수무책으로 파묻혔다. 자유라는 시간의 한복판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곧 물살이 잠잠해지자, 그 자유가 내가 생각해 온 진짜 자유가 아니라는 것도 서서히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자유는 제약으로 가득한 자유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먼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나는 앞으로 내가 버는 돈의 값만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고, 이게 보통의 삶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했다.


성공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 노동에서 저 노동으로 점철될 미래를 견디기 시작하는 방식으로, 나는 어른이 되어갔다. 그래도 그 속에 한 줄기 빛이 있다면 그 빛을 쫓으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은 채로. 하지만 일말의 희망마저 모조리 수포로 만들어버리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 일들은 나의 결의와는 상관없이 나를 바닥으로 내팽개치고 홀연히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노력과 결심, 의지와 행동으로 해결되지 않는 불가피한 일,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어디선가 나타나 나를 방해하는 수많은 상황, 나를 둘러싼 안락함을 몰아내고 출몰하는 불행들. 나는 그런 것들을 ‘어쩔 수 없음’이라고 불렀다. 세상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


어릴 적부터 나는 어쩔 수 없음의 근처에서 자랐다. 구덩이를 박차고 이 자리를 벗어나 저 너머로 뛰어가려 해도 번번이, 그리고 아주 손쉽게 나를 주저앉혔던 것들. 가난했던 집과 무능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노동으로 늙어가던 어머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따돌림 같은 것들.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가난한 나를 깔보는 친구의 시선 같은 것. 굳이 이유를 찾노라면 여러 변명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건 명확한 이유가 있기보다 오히려 어쩔 수 없는 문제들에 가깝다는 것이 당시 나의 결론이었다. 21살의 나는 돌출하는 비극들을 묶어 명명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비극은 룸펠슈틸츠헨이라는 이름의 난쟁이가 아니었다.



친구 J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던 날. J는 내게 그래, 이게 바로 네가 자주 말했던 그 어쩔 수 없음이지 라고 했다. 우린 전날까지도 같이 광안리에서 함께 재미있게 놀았다. 그 모습이 문득 꿈처럼 느껴졌다. 광안리에서 같이 치킨을 먹으며 J는 꼭 먼 미래에서 온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우리 각자의 미래를 단언하는 말을 내뱉었다. 그 말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 원하는 꿈을 이루고 세상 속에서 유명해져 있었다. 왜 나는 그 말들이 이상하다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J의 말투에 깃든 엄청난 확신 때문이었을까. 불과 하루 전의 기억이 갑자기 아득히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J는 정신병동에서 입원 절차를 마치고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J는 곧 휴대폰도 뺏길 거라고, 한동안 연락이 안 될 거라고 했다. J의 말투에는 내내 날이 서 있었다. 나는 J가 그저 잘 지내길 바랐다. 네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건 누구에게나 갑자기 벌어질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어쩔 수 없음이 정작 J에게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만드는 체념의 단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함을 알고 제 할 일을 묵묵히 이어가는 것과 어쩔 수 없음을 마주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것이니까. 나는 별다른 대답을 보내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J는 퇴원하고 학교에도 다시 나왔다. 졸업하고 일을 시작했고 월급을 받았다. 때로는 퇴사를 하고 쉬었고, 틈틈이 글도 썼다. 그사이 나도 서른이 되었다.



김연수가 작년 가을, 9년 만에 신작 소설집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느 때처럼 회사 일의 무료함을 달랠 요량으로 J와 메시지를 주고받던 때였다. J는 김연수의 신작 소식을 듣자마자 사인엽서가 딸린 양장본을 구매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별로 재미가 없다며, 중고서점에 팔기 전에 빌려줄 테니 내게 한번 읽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 소설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서 가장 처음 떠오른 것은 20대 초반의 나였다. 김연수의 소설을 보며 마음을 풀어헤치곤 했던, 뜨겁고 서늘했던 시절들. 가능과 불가능을 깨달으며 욕심과 현실을 오고 가던, 마음이 어렸던 그 날들. 9년이 흘러 다시 만난 김연수는 내게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올 테지만, 그럴수록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미래를 기억해야 한다고. 그게 우리의 삶을 지키고 훗날 주어질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지켜낼 방법이라고.



난 세상은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해. 지금 슬퍼서 우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모든 걸 이야기로 만들 수 있으니까. 이야기 덕분에 만물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어. (중략) 이야기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중략)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와. 그것도 자주.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아무리 세찬 모래 폭풍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는, 버스 안의 고개 숙인 인도 사람들처럼.

(p.120, 김연수,〈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이토록 평범한 미래》)


나는 J가 사라진 여름에 우리가 다시 일상을 이야기하는 미래가 올 것이라는 걸 알았을까. 때로는 서툴고 가끔은 버거울지라도 직장 생활에 적응해 돈을 벌고, 맛있는 떡볶이집을 발견하고, 서로 읽었던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평범한 미래를 만나게 될 줄 알고 있었을까.


나는 김연수의 말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 닥쳐올수록 미래를 기억하기로 했다. 당신과 나의 손길이 곳곳에 닿은 우리만의 공간에서 따뜻한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우면 귀여운 강아지가 살포시 다가오는 고요한 밤을. 미래를 기억하자. 미래의 기억은 어쩔 수 없음을 끊임없이 과거로 밀어 보내주고,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우주에서 보내는 바캉스는 언제 실현될지 몰라도, 하루 끝에 귀여운 강아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평범한 미래는 꼭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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