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미국 백인 노동자들과 그 가정의 이야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부통령 JD 밴스>
2025년 현재 각종 언론엔 트럼프 얘기가 끊이질 않는다. 주식, 금, 코인과 같은 자산시장뿐만 아니라 전쟁, 관세, 이민자 문제 등 트럼프의 영향력이 정말 대단하다. 지금은 모든 것이 트럼프의 통제 아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트럼프 당선의 길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24년 7월 트럼프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하자, 민주당은 해리스를 내세워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다. 이는 '흑인 및 이민계층, 여성층의 유권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좋은 전략이었던 것 같다. 이런 무기를 가진 해리스를 트럼프는 어떻게 이겼을까? 그 승리의 주역에는 오늘 소개할 <JD밴스>가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는 트럼프가 대변하지 못하는 그 계층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백인 노동자 계층!
JD를 인상 깊게 본건 대선 토론회 및 기자 인터뷰에서였다. 그는 쉬지 않고 말한다. 그리고 막힘이 없어서 이미 그 질문에 대한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또한, 듣기 편하게 말하고, 논리적이며, 토론에서 말릴 수 있는 질문들을 공격으로 바꾸는 능력을 갖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 그에 대해서 알아보니 1984년생으로 정말 젊은 나이에 미국 부통령이 됐다. 책을 읽고 나서 보니 그가 그렇게 자신의 일처럼 정책을 얘기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백인 노동자 가정에서 자라며 겪었던 많은 일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이 책만으로 이미 그는 정계에 입문할 준비를 갖춘 사람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의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에서 '힐빌리'는 누구인가?>
JD밴스는 본인을 힐빌리라고 말한다. 책에 나와있는 표현을 빌려 힐빌리를 적어보겠다.
"미국의 쇠퇴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 다른 표현으로 백인 쓰레기라는 '화이트 트래시', 햇볕에 그을려 목이 빨갛다는 데서 유래된 교육 수준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미국 시골 백인을 가리키는 '레드넥'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리고 JD밴스는 자신을 백인 주류 지배 계급(WASP)이 아닌 '백인 노동 계층'으로서 힐빌리의 삶을 그려낸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일자리를 찾아 나선 힐빌리들. 그렇게 살기 위해 광산으로, 제조업으로 뛰어들었던 백인 노동 계층은 중서부 공업 중심지가 붕괴하면서 삶을 잃었다. (미국 자동차 공업지대의 쇄락을 보여줬던 "디트로이트의 종말(2004)"도 이 같은 맥락이었으리라.) 내가 의아했던 건, 영화나 SNS로 봤던 미국은 부유하고, 활력이 넘쳤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유학생들 사이에 "미국 백인 중산층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을까..
힐빌리는 내가 알던 부유한 미국 백인들이 아니다. JD는 힐빌리를 “의리가 있고, 가족 중심적”인 그룹으로 표현한다. 반면, “폭력적이고, 충동적이며, 현재는 고립된 채 별다른 의욕을 보이지 않는 그룹”으로도 그린다. JD는 자신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때로부터 힐빌리의 노래를 시작한다. 꿈은 있었으나, 10대에 아이를 가져서 자라난 곳을 떠나 공업지대에 정착한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마음은 따뜻했지만 폭력적이었고, 남편과 심하게 다투었으며, 남편 역시 술을 자주 마시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환경. 그 둘 사이에서 8번의 유산 끝에 10년 만에 태어난 딸. 그 딸 역시 10대에 아기를 갖고, 첫 번째 결혼생활을 시작했으나, 금세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고, 거기서 JD가 태어난다. 금세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되고, JD는 잠시나마 세 번째 아빠에게서 자라지만 그 가정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으로 끝났다. 누구의 성을 붙여야 하는지 헷갈릴 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힘들었던 JD. 그가 10대 때, 엄마는 JD를 죽이겠다며 차를 심하게 몰기도 하고, 술을 자주 마시며, 폭력적이었고, 결국 마약을 하다가 보호소에 맡겨지기도 한다. 마약 반응 검사를 피하겠다고, JD의 소변을 받으러 왔던 사건을 보면, 그때 JD 엄마의 상태가 얼마나 안 좋았는지 알 수 있다. 반면, JD가 외할머니를 그렇게 자주 언급한 건, 이런 환경 속에도 JD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따뜻하게 키워줬기 때문이다. 글 초반에 묘사했던 것과는 달리, 할아버지는 술을 끊으셨고, 할머니는 온화해졌다. 둘은 예전처럼 싸우지 않게 됐고, 그것이 손주들을 따듯하게 돌봐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 글에서 묘사하는 힐빌리 사람들은 마약에 빠져있고, 일에 대한 의욕이 적으며,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덜 교육받는 환경에 처해있다고 한다. 그것과 함께 현재 이 지역에 쏟아지고 있는 정책들과 그것의 부진한 효과, 이유들을 적고 있다. 정책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부유하게 자라서 고학력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들이며, 힐빌리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비판의식이 JD를 정치로 입문하게 만든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고, 한편으로는 JD가 이 문제 해결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
의미 있던 점 1) 결국은 일자리
힐빌리들이 살던 지역은 오래된 제조업 도시다. 제조업이 성장할 때는 JD 밴스 가족이 살던 지역도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세월이 흘러 쇠퇴하는 도시로 변했다. 어떻게 미국이라는 가장 잘 사는 나라에 이런 도시가 생겨났을까?
나는 이것이 전적으로 산업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철강 산업, 자동차 제조와 같은 일이 필요 없어졌다기보다는 그 일이 미국에서는 더 이상 성장하는 산업이 아니고, 러스트벨트 지역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산업이 별로 없을 뿐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산업은 무엇일까?
과거에 자동차, 철강 같은 산업이 있었다면, 그 이후로는 컴퓨터 → 인터넷 → 모바일 → 데이터 → AI와 같은 순서로 미국은 기술 집약적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내가 살아있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이런 발전을 이뤄내고 있을까?
첫째, 기술과 경제가 결국 패권이기 때문이다. 총과 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전 세계는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다. 기술은 한 국가의 경제와 안보에 영향을 끼치고, 그걸 무시하는 국가는 짧은 시간 내로 다른 국가에 기술적 종속 관계가 되고 만다.
둘째, 기술은 돈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창업한 수많은 IT 기업의 창업자들을 보면 그들의 좋은 뜻과 욕망이 결합하여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시키지 않아도 새로운 기술을 위한 창업에 뛰어든다. Youtube에 나오는 창업가들의 인터뷰 개수만 봐도 기술과 사업적 성취는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설명하고 싶은 세 번째 이유, 기존의 포지션을 후발 국가에게 계속 따라 잡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따라 잡히지 않았나? 왜 최근의 기술들은 따라 잡히는 속도가 빨라졌을까? 애초에 기술 격차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한다. 예를 들면, 내가 미국 비행학교에서 공부를 하는데, 이론 교관님이 한 영상을 틀어줬다. 그 영상은 1950년대에 제작된 것인데, 그 당시 대한민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돼서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이다. 더 충격을 주자면, 1960년대 미국은 마하 3을 넘는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스텔스 정찰기로 전 세계의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고 한다.(SR-71기) 지금은 어떤 수준일지 상상이 안된다.
이런 기술 격차와 함께 전 세계는 산업별로 국가의 역할이 있었다. 그저 단순 노동을 값싸게 제공하는 국가가 존재한다.(이들은 기술 제공을 위한 교육이 크지 않으며, 많은 인력을 동원한다.) 그리고 제품들을 가공하고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국가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기술의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설계만 하는 국가가 있었다.(이런 기술을 사용하려면 많은 교육이 필요하고, 필요한 인력은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물리적 전쟁이 없는 평화의 기간 동안 각 국가는 비슷한 모양을 그리며 성장하고 퇴보하고 있었다. 경영학 수업시간에 우린 PLC(Product Life Cycle)라는 것을 배운다. 한 기업이 제품을 출시하면 매출이 상승하다가 최대치를 찍고 나면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하락하는 것이다.(경쟁자의 저가 공세, 새로운 제품의 출현, 소비자의 니즈 감소 등의 이유로..) 국가의 라이프 사이클도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항상 일본을 연구한다. 일본과의 격차를 두고 10년이라는 사람도 있고, 20년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본에서 본 제품, 제도, 유행들이 일정 시간 지나 한국에서 들어온 것을 많이 경험했다. (지금의 베트남, 인도와 같은 이머징 마켓도 이런 격차를 두고 한국을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반면, 내가 선진국이라 여기던 서유럽 국가들의 정체기는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학교 1학년 때 40일간 유럽 여행을 하고, 이후로는 여행이나 업무로 유럽을 갔었다. 서유럽 국가들은 내게 문화적으로, 제도적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가리지 않고 살고 싶었고, 그곳은 모든 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도 이 국가는 관광 이외에 뭐해먹고살지? 하며 현지인에게 그 국가의 주력 산업을 자주 묻곤 했었다. 선진국이니 내가 모르는 마법을 부려서 부유하게 산다고 생각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유럽 경제에 대해 나는 걱정하고 있으며, 제도, 사회 인프라, 기술의 발전, 심지어 문화적 측면까지도 대한민국의 서울이 뒤처지지 않다고 느낀다.
이처럼 각 국가의 산업별 역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국가 life cycle의 하강 국면을 만든 이유는 비단 그 국가의 부정부패나 내부 분열뿐만 아니라, 기술과 산업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첨단 기술을 배운 유학생들이 자국으로 돌아와 기술을 알려줄 수도 있고, 결정적으로 기존에 있는 기술을 빠르게 모방함으로 발생한다. 기술을 따라 하는 일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정말 잘하는 일이다. 그 일을 중국이 정말 잘한다고 생각하고, 인정해야 할 것은 한국도 많은 선진 기술들을 모방하고, 재생산하며 성장해 왔다. 그래서 세계화(누군가가 생각하기엔 식민지배 방식의 분업화)를 통해 선진국들은 자국에 공장하나 두지 않은 채로 라이선스만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지만, 그렇게 기술을 제공한 후 그 기술이 다른 국가의 것이 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기술의 경계를 국가로 두는 것 자체를 부정할 사람도 있겠으나 최근 Palantir와 Starlink 가 러-우 전쟁에 쓰인 것을 보면, 그리고 해당 기업을 통한 일자리 증가와 기업의 세금 문제를 고려하면 국가 단위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위 세 가지 이유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산업을 새로 만들어 내지 못하면 국가 Life Cycle의 하강 국면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하강 국면을 피하려면 계속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은 새로운 기술을 쏟아내며, 하강국면을 맞이하지 않고, 성장 국면을 유지했다.
따라 잡혔지만, 도망가지 못한 사례를 하나 들고 싶다. 내가 일했던 LG Chem 은 굉장히 유명한 범용 화학 제품들을 높은 품질로 전 세계에 제공하고 있었다.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그 제품들을 과거에는 독일, 프랑스, 일본에서 주도했으나, 지금은 우리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판매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해 줬다. 우리는 더 싸고, 더 빠르게 많이 만들어서 제공할 수 있었고,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의 기업들은 이제 더 세부적이고 개별 고객에 맞춘 상품을 제공하는 대신 생산량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나는 LG Chem이 사업의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LG Chem 보다 더 싸고, 더 빠르며, 많이 만들 수 있는 중국, 베트남, 인도 등의 기업에게 따라 잡힐 것이라 생각했다. 10년 넘게 배터리 사업을 추진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지만, 주 사업인 석유화학사업에서 더 큰 변화를 주지 못하고, 사업부 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결국... 유럽이 우리에게 따라 잡힌 것처럼, 우리도 다른 국가에게 따라 잡힌 것이다.
미국은 잘 도망쳐왔다. 그리고 life cycle의 하강국면을 잘 피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로 인해 힐빌리들을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제조업을 하자니, 지금의 높아진 인건비로는 불가능하다. 최신 IT 산업을 육성하자니 교육하는데 드는 비용과 기간도 길지만, 제조업만큼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은 세대를 거치면서 다음 세대에 더 좋은 직업을 갖길 희망한다. 러스트벨트에 있는 노동자들도 자녀가 자신과 같은 노동자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고 JD는 설명한다. 내가 중소기업에서 일했다면 자녀는 대기업에 다녔으면, 본인이 기업에서 조기 퇴직을 하게 됐다면 자녀는 공무원이나 전문직이 되길 소망하는 것이다. 미국의 산업과 노동시장은 이런 식으로 변해오고 있던 것이다. 이런 변화 동안 러스트벨트에 있는 사람들은 굶주리고, 희망을 잃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돈을 준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은 일을 함으로써 주체성을 느끼고, 자신이 노력한 대가로 받은 돈은 함부로 쓰지 못한다. 양질의 일자리,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취업할 수 있는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미국에 가져다주는 것. 그것이 JD와 트럼프가 지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 선진국들의 다양한 모델을 보고 있다. 기술적으로 잘 도망간 미국, 30년간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 장기간 부도가 나고 쇠퇴하는 유럽. 미국을 따라가려던 한국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한 것 같다. 최첨단의 기술을 따라가되, 기존의 고부가 제조업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 한국의 젊은 이들은 소위 '네카라쿠배당토'와 같은 IT 직군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직업의 쏠림 현상은 이미 일어나고 있지만, 첨단 산업은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한다. 일본과 같이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돋보적인 기술을 가진 제조업 기업이 더 생겨나고, 산업의 기반을 받쳐준다면 대한민국의 힐빌리 노랫소리는 조용할지 모른다. 제조업이 아직 남아있는 대한민국에 안도한다.
(AI가 사람들의 상상만큼 활성화되는 때의 시나리오는 나중에 적어보겠다.)
의미 있던 점 2) 희망의 노래
5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던 엄마에게서 자란 JD. 두 번째 아빠에게서 태어나, 세 번째 아빠에게 잠시 길러졌던 JD. 마약을 하고, 폭력과 폭언을 일삼던 엄마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던 JD. 무엇보다도 그런 환경 속에서 인생에 대해 자포자기하고, 더 이상의 미래를 볼 수 없던 JD.
그가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은 나와 다른 이들에게 모두 희망을 준다. 해병대에서 그는 일상을 통제하는 법을 배웠고, 병원 진료받는 법, 은행 대출받는 법 등 진작에 배웠어야 할 사회적 활동들을 익힌다.
더 중요한 것은 해병대 이후에 JD도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꾸밀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재대하자마자 그는 오하이오 주립대에 입학하고, 로스쿨을 가겠다는 꿈을 꾸게 된다. 물론 그 이후의 삶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안 좋은 상황 속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의지를 가졌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 생각한다.
너무 아쉽게도 과정을 내 글로 담을 수 없다. 다만, 책을 읽어본다면 책의 절반이 넘는 어두운 그의 과거에서 그가 어떻게 한 걸음씩 일어나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좋았던 구절
- 가끔 내게 우리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마법처럼 문제를 해결할 공공 정책이나 획기적인 정부 프로그램을 바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가족과 신념, 문화와 관련한 문제들은 루빅큐브 같은 게 아니므로 그런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오바마를 보고 있으면 내가 어렸을 때 존경하던 사람들과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명확하고 완벽하게 표준 발음을 구사하는 오바마의 억양은 그저 생경하고, 그의 스펙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화려하다. 오바마는 복잡한 대도시인 시카고에서 자랐으며, 현대 미국의 엘리트 사회가 자신을 위해 펼쳐진 사회임을 아는 듯 매사에 자신감 넘치게 행동한다.
- 미들타운의 수많은 아버지들과 다르게 오바마는 훌륭한 아버지다... 대통령 영부인은 우리더러 자녀들에게 특정 음식을 먹이면 안 된다고 말하고, 우리는 그런 영부인을 미워한다. 틀린 말을 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우리도 영부인의 말이 옳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예일 로스쿨에 있을 때는 마치 내 우주선이 오즈에 불시착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의사 어머니와 기술자 아버지를 둔 가정을 중산층이라고 일컬었다. 연봉 16만 달러면 미들타운에서는 어마어마한 연봉이었으나, 예일 로스쿨에서는 학생들이 졸업 직후 첫 연봉으로 기대하는 액수였다. 그것도 부족할 것 같다고 걱정하는 학생들이 벌써부터 많았다.
- 전에도 말한 것처럼 사회적 고립은 나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공을 그저 거머쥘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 할 뿐 아니라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기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할모는 내 안에 있는 그런 염세적인 태도를 없애려고 늘 애썼고, 그런 면에서 할모의 노력은 성공적이었다.
- 현대 보수파의 미사여구가 그들의 최대 유권자가 겪고 있는 실질적 문제들을 파고들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보수파 세력은 내 또래 청년층에게 취업을 독려하는 대신 사회적 고립을 점진적으로 조장함으로써 그들의 포부를 짓밟는다.
- 우리 아빠를 예로 들자면, 아빠는 열심히 노력한다는 사람을 비난하지는 않지만,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들마저 신뢰하지 않았다. 내가 예일대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 아빠는 나더러 입학 지원서를 쓸 때 "흑인인 척했느냐고, 진보주의자인 척했느냐고 물었다." 백인 노동 계층의 문화적 기대가 이 정도로 바닥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