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었다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by 정다엘 이상


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AI와 로봇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전하며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한국은 저성장, 저출생의 늪에 빠진 것처럼 보이니 기술 발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까지 동반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삶의 이유나 존재의 목적을 물으며 어떻게 살지 고민하게 됩니다.


삶의 이유나 존재의 목적이 있을까요?




artworks-8hUNunJfPf7jLpzY-jYmGvg-t500x500.jpg 일론 머스크는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드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듯 합니다.




우선 저는 ‘근본적으로는’ 삶의 이유나 존재의 목적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목적 없이는 공허함을 견디기 힘든 존재이기에, 스스로 그런 미끼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미끼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인위적 목표’인 셈이죠.


저는 사람들이 설정하는 이 ‘인위적 목표’가 두 가지 극단을 가진 스펙트럼 안에서 나뉜다고 봅니다. 그 두 극단은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노예 도덕’과 ‘주인 도덕’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내가 좇고 있는 목표의 가치가 ‘외부’에 있느냐, 아니면 ‘내부’에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사회가 훌륭하다고 해서 쫓는 목표라면 전자에 가까울 것이고, 내 안의 기쁨과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후자에 가깝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서 자신의 목표를 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조금 씁쓸한 것은, 우리가 흔히 ‘어른이 된다’고 말하는 과정이 어쩌면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 즉 외부의 도덕에 비판 없이 순응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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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장하면서 경제 관념을 배우고, 치열한 경쟁 사회로 진입합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은 늘어나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점점 소위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갑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각자의 고유한 ‘색’과 찬란한 ‘빛’이 덧칠해지고 탁해지는 것만 같아 안타까움을 느끼곤 합니다. 그 ‘순수’를 지키는 것이 참 어려운 시대니까요.


물론, 과거에는 사회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깎아내며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 정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회가 빠르게 성장하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평생이 보장되던 시절에는 그게 가장 확실한 성공 방정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AI와 로봇 기술이 쏟아지는 지금, 세상은 다른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저성장과 인구 감소라는 파도를 맞았고, 단순히 성실하게 남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무엇보다 한 분야의 지식과 기술은 이제 AI가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학습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육체 노동을 로봇이 대체할지도 모르고요.




20260120095156288001.png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발표되고 큰 이슈가 되기도 했죠.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는 이제 전문성보다는 ‘결합’이, 기능보다는 ‘취향’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컨대 수술 기술이 뛰어난 의사는 로봇에 의해 대체될 수도 있겠지만, 수술을 잘하면서 동시에 환자의 마음을 읽고 유대를 쌓는 의사는 대체되기 힘들 것입니다.


트레이딩을 잘하는데 예술적 식견까지 갖추고 영업을 잘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대체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본인의 취향과 기질을 깎아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비로소 ‘대체 불가능한(Only One)’ 존재가 되는 것이죠.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강력한 생존 전략은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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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순히 좋아하는 걸 하라는 진부하고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AI 기술은 이제 거대한 인프라가 되었습니다. 생성형 AI를 통해 코딩을 하거나 이미지, 영상을 만드는 등 누구나 쉽고 빠르게 콘텐츠를 만들고 기능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죠. 이제 중요한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쏘아 올릴지 결정하는 개인의 ‘취향’과 ‘직관’입니다. 예술가나 사업가라면 AI를 도구 삼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결과물을 더 쉽게 창조해낼 수 있을 것이고, 회사원이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라도 AI로 생산성을 극도로 끌어올린 뒤, 그 위에 자신만이 더할 수 있는 인간적인 통찰을 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특성을 결합하여 Only One 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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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나 아니면 안 되는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해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쩌면 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거대한 즐거움을 주는 훌륭한 ‘인위적 목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감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은 우리 삶에 분명 긍정적인 고양감을 가져다줄 테니까요. 경험적으로 억지로 참으며 하는 노력은, 즐기며 하는 자의 에너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물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혼자 걷는다는 건 여전히 불안한 일입니다. 진화적으로도 인간은 무리에서 떨어지는 것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불안에 굳이 먹이를 주어 키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체 없는 미래의 불안 때문에 지금 당장 내가 가진 색과 즐거움을 포기하는 건, 미래의 나에게도 손해를 끼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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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항상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마음에 품고 삽니다. 미래는 세상의 뜻에 맡기되,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는 마음입니다. 그게 설령 남들과 다른 길이라 해도, 나의 즐거움과 나의 빛을 지키며 묵묵히 오늘을 사는 것이죠.




저는 그렇게 제 안의 빛을 지키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타인이 가진 고유한 빛도 현실의 무게에 꺼지지 않도록 응원하며 살고 싶습니다. 본질적으로 삶에 정해진 목적은 없다 해도, 우리가 ‘스스로’ 부여한 그 ‘인위적 목표’가 각자의 찬란한 색으로 빛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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