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비효율과 더딤을 견딘다는 것
2025년을 기준으로 AI가 생성한 텍스트 양이 인류가 생산한 텍스트 양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요즘 특히 AI를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FOMO를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일단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고, 토큰을 다 써야만 할 것 같은 불안함이요. 새로운 모델이 나왔다는 소식에 뒤처지는 기분이 들고, 남들은 벌써 자동화를 끝냈다는데... 써도 불안하고 안 써도 불안한, 도구를 손에 쥔 채로 느끼는 특유의 초조함입니다.
이 불안의 정체가 뭘까요?
내가 하던 일이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대체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나보다 역량이 더 좋았던 사람은 이 도구를 더 잘 쓸 것이고, AI로 무언가를 계속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 감이 잘 안 잡힙니다. 불안은 커지는데 방향은 보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잠깐 그 불안에서 시선을 돌려,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불안을 필연적으로 사람을 근시안적으로 만드니까요.
우리가 AI를 쓰는 시간의 대부분은 효율성 향상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검색을 대신 시킨다거나, 피드 자동화, 사업 자동화, 코드 작성. AI가 생성한 텍스트의 대부분도 이 작업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용 방식이 AI FOMO의 주된 원인이 됩니다. '효율성 향상'이란 결국 내가 하던 일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대체하는 것이니까요. 대체될 수 있다는 감각이 불안을 낳고, 불안은 다시 더 많은 효율성을 추구하게 만들고, 그 효율성은 다시 대체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는 순환이 생깁니다.
그런데 '효율성'이라는 것이 정말 우리가 AI를 사용하는 최선의 방식일까요?
'생산성'과 '효율'은 동일성의 언어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생산성과 효율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는 동일한 일을 할 때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미덕이기도 합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노동자든 기계든 주어진 일을 '더 빨리, 더 많이' 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갓생'이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생산적인 하루를 보냈다'는 것이 칭찬이 됩니다. 아무것도 안 한 하루는 '낭비'라고 표현됩니다. 쉼조차 생산성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셈입니다. 비생산적인 것, 비효율적인 것은 우리 시대에서 죄악시 됩니다.
하지만 무언가 다르고 새로운 것을 할 때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롭고 다른 것을 할 때면, 익숙하지 않은 일과 상황이 발생해 우리를 당혹시킵니다. 해오던 것을 할 때보다 시간은 더 오래 걸리고, 생산성 역시 바닥입니다.
https://youtube.com/shorts/6sOth2RJvp8?si=Gfkdv3wWpq12GfZm
위의 유튜브 영상에서 '최악의 직원'은 자기가 못하는 일이 있는데 도움 요청을 하지 않는 직원이라고 말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정말 맞는 말입니다. 전체 조직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떨어지니까요. 그런데 개인의 입장에서는 바로 그 순간에 성장과 발전이 일어납니다. (아집은 안되겠지만요.)
시스템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시스템에 순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쫓겨나니까요.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심지어 그런 도구까지 모두의 손에 쥐어진 요즘 시대에 이런 '더딤'은 선택받지 못합니다. 장점을 살려서 빨리 차별화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것은 개인에게도 싫습니다. 감정적으로 하기 싫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회는 개인에게 자유라는 이름 하에 선택권을 부여했고, 책임까지 이양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은 더 이상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익숙하지 않음을 견디며 발생하는 부정적 감정을 선택하지 않아왔고, 그에 따라 꼭 직업만이 아니라도 개인은 '전문화'되었습니다.
전문화된 개인은, 본인의 영역에 대해 굉장히 fine 해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fragile 해졌습니다.
코닥이라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20세기 내내 필름 카메라 시장을 지배했고, 1995년에는 기업가치 세계 4위에 올랐습니다. 필름이라는 하나의 영역에서 극도로 정교해진 회사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한 것도 코닥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영진의 반응은 '훌륭하긴 한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필름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결국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열리자 코닥은 2012년 파산보호를 신청합니다. 같은 위기에 직면한 후지필름은 화장품, 의료장비 등 전혀 다른 분야로 뛰어들며 살아남았습니다. 투박하게라도 낯선 영역에 발을 들인 쪽이 생존한 것입니다.
이건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가지 스타일로 콘텐츠를 만들어온 크리에이터가 알고리즘이 바뀌면 무너지고, 특정 프레임워크만 수년간 다뤄온 개발자가 기술 스택이 바뀌면 갑자기 무력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영역에서 극도로 정교해진 개인은, 그 영역 밖에서는 부러지기 쉽습니다. Fine 해진 만큼 Fragile 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전문화'야말로 AI가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특정 영역 안에서 정교하게 작동하는 것, 주어진 프레임 안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답을 내는 것. AI는 그것을 인간보다 더 잘합니다.
최근 여러 면접에서 '본인이 AI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모든 전문 분야에서 이러한 도전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AI보다 잘하는 게 있으신가요?
일단 저는 대답하기 어렵군요..
AI는 혁신적인 기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도구를 '혁신'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못한 것 아닐까요?
제가 지켜보고 경험한 바, AI의 활용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극단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효율성 향상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가치의 창출입니다.
물론 이 둘을 칼같이 나누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인간이 하던 일이긴 하지만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방식과 연산력으로 분자 조합을 짜서 약물을 혁신합니다. 효율성과 새로운 가치 창출이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자동화와 효율화가 우리가 AI라는 혁신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최선의 방식은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가치를 더 빠르게 생산하는 것에 머무르면 경쟁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잠시 제가 좋아하는 어원 살피기를 해보자면...
혁신(革新)의 '혁(革)'은 가죽을 뜻합니다.
한자에는 가죽을 의미하는 글자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짐승에게서 갓 벗겨낸 날것 그대로의 가죽인 '피(皮)'와, 그 생가죽의 털과 기름기를 긁어내고 수없이 두드리는 무두질 과정을 거쳐 전혀 다른 질감과 쓰임새로 만들어낸 '혁(革)'입니다. 즉, 혁신이란 단순히 겉모습을 꾸미거나 효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더디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뎌내어 본질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 단어인 'Innovation'의 어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라틴어 'Innovare'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안으로(In)'와 '새로운(Nova)'이 결합된 형태로, 밖으로 드러나는 껍데기가 아니라 내부의 근본부터 새롭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혁신이란 기존에 하던 일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동일성의 언어'가 아닙니다. 익숙함과 결별하고, 당장의 비효율과 더딤을 기꺼이 견뎌내며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과정입니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것은 동일성의 언어와 논리 위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사회의 미덕에 반하여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일들을 하며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때야말로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생기는 시기일 테니까요.
AI는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가능합니다. 새로운 가치는 오직 '더딤'을 견딘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물론 낯선 일도 반복할수록 익숙해지고 효율이 좋아질 것입니다. 그것은 AI라는 도구를 통해 가속화되겠죠. 순서의 문제입니다. 더딤이 먼저, 효율은 그 다음입니다.
AI라는 혁신적인 도구를 효율성의 논리로만 사용하기보다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레버리지로 사용하는 능력이 앞으로는 더더욱 요구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가치가 무엇이 될지는, 각자의 고유성에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고유성이 무엇인지, 고유성을 어떻게 가치로 만들 수 있을 지를 고민해봐야겠군요..
고유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그것이 뭔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고유성은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발견은 탐색을 거쳐야 합니다. 탐색은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일을 함으로써 가능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전문화가 시스템적으로 권장되는 사회에서 탐색은 어렵습니다. 이미 주어진, 익숙한 일을 잘하는 것이 인정받고, 낯선 것을 시도하는 것은 비효율로 취급되니까요.
어릴 때일수록 다양한 경험을 하고 책을 읽어서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 전문화되지 않은 시기에, 가능한 한 넓게 탐색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고유성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하지만 고유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탁월함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을 보면서 '천재'라고 말합니다. 마이클 조던을 보면서 타고난 재능이라고 감탄하고, 제임스 다이슨을 보면서 천재적인 발명가라고 칭합니다. 하지만 그 고유성 뒤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주목하지 않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 대표팀 선발에서 탈락했습니다. 당시 178cm에 불과했던 그는, 코치가 201cm의 동급생을 대신 선택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실력을 갈고닦아 전미 최고 수준의 유망주가 됩니다. 프로에 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9000번 이상의 슛을 놓쳤고, 300번 가까운 경기에서 패배했으며, 승패를 결정짓는 슛을 실패한 경우도 26번이나 된다. 나는 인생에서 끊임없이 실패를 경험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성공한 이유이다." 그의 동료였던 B.J. 암스트롱은 조던이 경기에서보다 연습 때 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증언했습니다. 경기를 실전처럼, 연습을 경기보다 더 치열하게. 그 지독한 반복이 지금의 조던을 만든 것입니다.
제임스 다이슨은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라는 고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가 제품이 되기까지 5,127개의 프로토타입을 직접 손으로 만들고 테스트했습니다. 5,126번의 실패입니다. 그 사이에 셋째 아이가 태어났고, 아내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미용 클래스를 열어야 했습니다. 완성된 제품을 대형 청소기 업체에 가져갔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먼지봉투 판매로 이미 큰돈을 벌고 있던 기존 업체들에게 '봉투 없는 청소기'는 자기 사업을 위협하는 물건이었으니까요. 결국 그는 직접 회사를 세웁니다. 그리고 다이슨의 연매출은 약 12조원이 됩니다.
조던이 고유하기만 했다면, 고등학교 대표팀 탈락 이후 농구를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다이슨이 고유하기만 했다면, 10번째 프로토타입 즈음에서 포기했을 것입니다. 고유하면서 동시에 그 고통을 '견뎌서' 탁월해지기까지 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탁월함은 수많은 실패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반복 작업, 피 말리는 규율을 통과해 낸 결과물입니다. 고유성이 '나는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답이라면, 탁월함은 그 다름을 세상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입니다.
'탁월함'을 두르지 못한 '고유성'은 자본주의와 현실의 시스템적 압박 속에서 가장 먼저 박살 납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나다움은 타인에게 그저 '괴짜의 고집'이나 '어린아이의 칭얼거림'으로 치부될 뿐입니다.
고유성을 발견하는 것도 더딤을 견뎌야 하고, 탁월함을 만들어내는 것도 더딤을 견뎌야 합니다.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서투르고, 실패하고, 반복하는 그 느리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하는 것. AI는 그 시간을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가장 인간적인 일입니다.
AI가 그 시간을 대신해줄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함께 통과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이것이 앞서 이야기한 'AI를 새로운 가치 창출의 레버리지로 사용한다'는 것의 구체적인 의미이기도 합니다.
더딤을 견디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하지만 그 견딤의 과정에서 AI라는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도착하는 곳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럼 이제, 당신은 어떤 비효율을 선택할 것인가요?
그 '더딤'을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