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
어느 스토리나 그렇겠지만 특히 하이틴 영화의 성장물은 전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여자 주인공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가정환경에 평범한 외모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이 가진 외적 조건들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학교 내에서 소위 잘 나가는 아이들을 동경해 그들과 친해지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 또한 이러한 하이틴 성장 영화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을 먼저 보고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뚜껑을 열어본 ‘레이디 버드’는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론 왜 몇 년이 흘러도 하이틴 성장 영화들이 비슷한 줄거리를 가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10대 여자 아이들(여자 아이들이라고 보편화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필자가 여자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기에 이렇게 지칭하도록 하겠다.)이 미성숙한 십 대 시절에 겪는 보편적인 경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20대를 겪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10대 시절을 되돌아보며 왜 그때 좀 더 성숙하고 현명하게 행동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자기 전에 되돌아보며 이불킥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근데 하이틴 성장물들이 가지는 일련의 플롯이 증명하는 것처럼 10대 시절의 미성숙함은 나만의 결핍이나 부족함에 의해서가 아닌 성숙을 향한 성장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점은 자신의 자존감에 큰 위안이 된다.
영화에서 시얼샤 로넌이 연기한 크리스틴은 자신의 본명이 아니라 스스로 지은 이름인 ‘레이디 버드’로 불리기를 원한다. 그래서 가족들뿐만 아니라 학교 연극동아리에서도 자신을 레이디 버드로 소개하며 그렇게 불러줄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본래 모습이 아닌 자신이 이상화하는 모습으로 보이기 원하는 크리스틴의 낮은 자존감이 뚜렷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이 영화가 완벽한 성장물인 이유는 영화 후반에 뉴욕에 있는 대학에 간 크리스틴이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을 레이디 버드가 아닌 크리스틴이라고 소개하는 부분에서 나타난다. 이 부분을 보면 대부분의 관객은 흐뭇한 미소가 자연스럽게 지어질 것이다. 마치 크리스틴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긍정하는 것과 같이 성장한 모습을 보고 있는 관객들도 그러한 성장에 동참한 듯한 기분이 든다.
필자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이상화하는 다른 사람이 자신이길 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이상화에 빠지면 현재 자신을 초라하다고 느끼고 자신의 삶을 부정하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기연민은 자기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특히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누구나 저마다 이상화하는 자신의 모습이 있고 그것을 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각박한 현실 세계에서 자신이 이상화하는 모습이 온전히 자신이 되기에는 여러 장애물이 따르고 이에 따라 좌절을 필수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현재 자신의 모습에 긍정하고 행복할 것. 가장 간단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그렇기에 이러한 단계를 넘어서는 것 자체를 성장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크리스틴이 자신의 어리석음과 잘못을 깨닫고 성장한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성장한 지점에 도달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영화에서 마지막에 크리스틴이 새로운 상황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듯 보였던 것처럼 크리스틴도 새로운 상황 속에서 또 다른 실수를 하고 후회와 실망을 할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크리스틴이 성장한 것처럼 또다시 한번 더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어쩌면 인생에서 완전한 성장은 없는 것 같다. 성장을 하기 위해선 실수나 좌절이 필요하고, 후회와 실망도 필요하다. 모난 돌이 여러 번 구르고 비를 맞아 둥글어져도 완벽한 원형이 아닌 각자만의 원형 비슷한 것을 갖게 되는 것처럼 한 사람의 성장도 각자만의 인생에서 자신만의 원형 비슷한 것에 도달하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자신만의 원형 비슷한 것을 위하여 힘차게 구를 수 밖에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