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를 데리러 가는 길.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커다란 먹구름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하늘이 캄캄해졌다. 곧 어마어마한 비를 터트릴 것 같았다.
하리를 만나 서둘러 집으로 가는데 이런! 비가 후두두 떨어진다. 후다닥 벤치 밑으로 들어갔다. 쏴아아-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하리야 어떡하지?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하람이는 어떡하지?"
유모차에서 곤히 잠든 하람이를 바라보니 머릿속에 물음표만 동동 떠다닌다.
'그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더 많이 내리기 전에 뛰어가야 하나?'
"엄마. 나 다 젖었어."
"엄마도."
하리랑 눈이 마주치자 웃음이 났다. 깔깔깔. 마주 웃었다.
"하리야! 뛰자! 준비됐어?"
"응!"
"하나, 둘, 셋! 뛰어!"
퍼붓는 비를 그대로 때려 맞으며 뛰었다. 다행히 유모차는 가리개로 덮여있으니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뛰었다. 유모차를 밀며 물웅덩이도 밟으며 비를 맞았다. 모자부터 신발까지 다 젖었다.
이번 여름은 하람이가 태어나 집에만 있느라 나는 물에 발 한번 담그지 못했는데 이렇게 물놀이를 하는구나. 아파트 유리문에 비친 젖은 내 모습이 웃겼다. 그리고 시원했다. 더위를 식히는 비가 시원했고 다 내려놓고 그대로 비를 맞은 내 마음이 시원했다.
해방감일까. 비를 맞으면 안 된다는, 비가 오면 우산을 꼭 써야 한다는, 옷이 젖으면 안 된다는, 물웅덩이는 피해 가야 한다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서일까. 상쾌했다. 자유로웠다.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이래야 하고, 아기는 이렇게 키워야 하고, 성장기에는 뭘 먹여야 하고(또는 먹이면 큰 일 나고, 그 길로 꼭 가야 하고(또는 절대 가면 안 되고)... 그런 것들.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가 되어서도, 3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모르겠는데 해내야만 하는 것들 사이에서 괴로운데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날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그 부담감. 압박감.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되려면 얼마나 자주, 퍼붓는 비를 맞으면 되는 걸까.
예상치 못한 소나기를 피할 수 없듯 다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몰려온데도 하나, 둘, 셋! 뛰어! 하고 어린아이처럼 가슴 뛰도록 뛰어들고 싶다. 내 삶 속으로. 매번 시원할 순 없겠지. 쫄딱 맞은 모습이 바보 같기도 하겠지. 그래도 모두 내 삶이니까 즐겁게 누리면서 살아가겠다고 소나기 맞은 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