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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사랑

by 정귤


6월 29일. 15시 18분. 37주에 3.5킬로 남자 아기가 태어났다. 내 인생 세 번째 아기가 내 몸에서 나왔다. 가장 아픈 아이였다. 진통을 하면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너무 아파요." 아무 소용없는 말을 내뱉으며 처음 보는 의료진들의 손을 덥석 꽉 잡았다. 나도 처음 듣는 어떤 고통의 소리를 짐승처럼 냅다 질렀다. 다들 분주했고 긴박했고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가족분만실이라는 그 공간에서 오직 나만 아팠다. 분명 입덧도 충분히 괴로웠고 남다르게 아팠는데 이번엔 진통까지 찐이었다.


28일. 새벽에 느낀 강렬한 진통으로 병원에 갔다. 뱃속 아기가 37주에 벌써 3킬로가 넘기도 하고, 수축검사에서 규칙적인 진통이 잡히니 입원하자는 담당 과장님 말씀이었다. 그날 오전에 바로 입원을 했다. 자연진통이 곧 올 것이라 믿고. 하지만 29일 새벽까지 진진통은 걸리지 않았고 새벽 4시에 촉진제를 맞았다. 양수가 터지고 이슬이 비치고 진진통이 찾아왔다. 무통을 미리 달고서, 치솟는 수축 그래프가 증명하는 진통에도 선뜻 맞지 않고 버티는 나를 보며 남편은 간호사를 불렀고 강제로? 무통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무통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그때부터 파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주기적으로 빠르게 밀려드는 진통의 파도가 내 배와 회음부와 항문. 정확히 알 수 없는 아래쪽 부위들을 강타했다. 몇 번은 호흡으로 넘겼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아픔이 더 빠르고 잦게 찾아왔다. 자연분만의 고통을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것 같다고 비유하던 어느 떠도는 글들이 생각났다. 무언가 끼여있지만 절대로 빠질 것 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대로 헤어 나올 수 없는 고통에 빠져, 죽어간다고 느꼈다. 아니, 죽고 싶었다.

"살려주세요"가 아니라 "죽여주세요"라고 말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사람들이 더 늘어났고 처음 보는 남자 의사 선생님이 밑에 서있었다. 내 배 위로 한 명, 배 옆에서 한 명. 총 두 명이 내 배를 누르고 밀었다. 어떤 기계가 들어오고 빨아 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뭐지? 수술로 바뀌었나?'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수술하기엔 아까워. 힘도 잘 주고 있었고 아기도 다 내려왔는데."라고 남자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격한 움직임들이 여러 곳에서 날 도왔다. 끼여있는 고통. 그건 아기였고 그 생명을 보기 위해 정신 잃은 나를 돕고 있는 많은 사람들. 밀고 당기고 땀을 닦아주며 철퍼덕. 무언가 나왔다. 안도의 소리들이 들려오고 미끄덩한 덩어리가 내 몸 위에 올려진 것을 느끼고서 난 다시 정신을 잃었다. 누군가 다급히 깨웠고 눈을 뜨니 회음부가 꿰매지고 있었다.


"산모님 고생하셨어요." 하는 소리 사이로 내 이름을 부르는 떨리는 목소리. 엄마였다. 아이 셋 엄마가 된 내 옆에 내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왔다. '오지 말랬는데 결국 왔구나.' 나중에 남편이 말하길 엄마는 밖에서 내 소리를 듣고 울고 있었다고 했다. 밥도 못 먹고 내내 진통한 내가 안쓰러워서 이온음료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인 단팥빵과 바나나를 싸들고서 엄마가 와있었다. 엄마는 내가 제일 불쌍하다고 했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고생했다고 애썼다고 말해주었다. 시아버지는 고맙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 엄마랑 내 여동생은 자꾸만 내가 불쌍하다고 했다. 그 말이 목에 걸려 눈물이 났다.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 난 그것이 사랑의 말이고 내 편의 마음이란 걸 깨달았다.


내 소식을 모르는 내 아빠가 이 순간 같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내게 무슨 말을 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아픈 순간들이 오면 나는 문득 떨어져 있는 아빠가 생각난다. 그 빈자리를 잘 채우려고 열심히 살고 있으나 그 빈자리는 그만의 자리이기도 해서 다 채울 순 없다는 걸 안다. 우리 아이들은 세 번의 탄생을 지켜본 아빠가 있었으니 훗날 쓸쓸한 마음은 들지 않겠다 싶다. 그거면 됐지 뭐.


뒤늦게 알았다. 첫째, 둘째도 자연분만을 했고 진통을 겪었지만 비교적 순산했다면 셋째가 이토록 난산이었던 것은 아기가 내려올 때 자세가 하늘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아기를 낳고 나서 처음 알게 됐다. 다들 몰랐었나 보다. 일명 후방후두위라 한단다. 분만 직전에 알게 되면 보통은 제왕절개를 권유한다는데 나는 두 번의 자연분만 경험이 있는 경산 모라 힘을 잘 주었고, 아기도 잘 내려왔기 때문에 제왕을 하기엔 아깝다는 게 의사 선생님의 판단이었다. 흡입기를 사용해 아기를 빼내었고 그 과정에서 아기 머리가 좀 눌리고 두혈종이 생겼다. 시간이 걸려 없어진다고 하지만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어찌 되었든 자분을 했지만 몸이 이전과 같지 않았다. 온몸에 힘을 많이 줘서 얼굴에 실핏줄이 다 터지고 배에 보라색 멍이 들었다. 팔다리가 다 뭉치고 회음부 고통에 앉는 것도 걷는 것도 힘들게 되었다. 이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서글퍼졌다.


신생아실에서 아기가 왔다! 힘겹게 아기를 안고 천천히 끔뻑이는 두 눈동자를 바라보니 몸에 힘이 들어간다. 뻐근했던 온몸에, 바로 앉지 못했던 내 하체에 힘이 들어갔다. 아기를 안을 힘이 생긴다. 이 아기에게 아직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물릴 힘이 생긴다. 왜 이리 예쁜 거야. 도대체 왜 밉지가 않은 거야. 왜 또 이렇게 벅찬 거야. 내가 이 아기를 안고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모든 고통이 잊힌다. 나는 바보멍청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미역국을 후루룩 마시고 싫어하는 생선 반찬을 몇 점 억지로 먹어본다. 내가 먹어야 저 녀석에게 또 줄 수 있으니까. 나는 희생정신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사랑 많은 사람도 아니고 그냥 그냥 사는 사람이다. 아기를 낳고 좀 행복해진 사람일 뿐. 행복해서 세 명 낳았다. 이제 행복 누리면서 살 거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남편 산후도우미님이 계시고 두 누나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셋째 동생이랑 이 엄마가 간다.


혼자 밥을 먹다가 "나의 십자가 고통 해산의 그 고통으로 내가 너를 낳았으니~" 찬양이 갑자기 떠올랐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 어렴풋이 그 고통을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아프지만 아기 얼굴 한 번에 모든 걸 잊는 것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라는 걸. 날 사랑하는 주님. 그리고 내 가족들. 아기 생각하는 날 보며 나를 더 걱정해 주는 친구들과 이웃들. 그들의 사랑이 사랑 없던 날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또 한 번 사랑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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