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를 다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와 진짜 파랗네."
순간 번쩍, 내가 대단지 아파트에 살고 있구나. 진짜 내 집은 아니라도(어차피 이 땅에서 영원한 내 집은 없으니까 뭐) 내가 아파트에 살다니. 가난한 동네 어느 어느 단칸방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에는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그렇게도 부러웠는데 나는 지금 아파트에 산다. 갑자기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신기하다. 내 삶이 놀랍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학부모가 되었다. 내가!
남들처럼, 누구처럼. 그런 거 생각하느라 잊고 살지만 사실 나는 다 가졌다. 충분하다. 잘 살아서 맞벌이를 하지 않고 전업 주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유로워서 셋째를 가진 것도 아니다. 사랑하고 감사하다 보니 요렇게 살고 있다. 우리가 조금 더 맞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되새기면서.
첫째가 내게 남편과의 연애 스토리를 물었다. 그 긴 여정을 어찌어찌 잘 요약해서 들려줬다.
"그렇게 엄마 아빠가 결혼하게 된 거야."
그러자 딸이 하는 말.
"엄마, 아빠랑 결혼 잘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아빠가 맛있는 것도 사주지, 어린이날 되면 핑크색 침대도 사준대."
"에이~ 그건 너희한테 좋은 거지 엄마한테 좋은 게 아닌데? 왜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길 잘한 거야?"
"아빠랑 엄마 서로 사이가 좋잖아."
허허. 수상한데? 남편이 나 몰래 아이에게 달달구리를 잔뜩 먹였나 보다. 어찌 요 녀석 입에서 요래 달달한 말이 나오는지. 나는 종일 기분이 좋았다. 내가 그렇게도 바라고 바라던 행복한 가정을 이뤄가고 있는 거 같아서. 고맙고 감사했다.
아이에게 못해주는 게 훨~~~~~씬 많다. 밤마다 나는 굳이 미안한 마음을 안고서 책도 읽고 정보도 찾아본다. 옆에서 남편이 말했다.
"애들 관련 영상 그만보고 네 시간을 가져. 네가 좀 푹 쉬면 좋겠어 나는."
셋째를 임신하고 나오는 배만큼이나 무게가 더 커졌다. 첫째에게도 둘째에게도 놓치지 말고 잘해줘야지. 그래서 알게 모르게 초조했다. 나는 지금 뭘 해야 할까? 남편이 또 말했다.
"지금 네가 할 일은 잘 먹고 잘 자는 거야."
그건 이미 너무 잘해서 탈이지 않나 생각했지만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남편은 늘 날 안심시키는 사람이다. 이 안정이 아이들에게 흘러가 오늘도 두 아이가 무사히 뛰놀다 집으로 돌아오나 보다.
나는 내가 집을 지키며 가꾼다 생각했는데 남편과 아이들도 함께 가꾸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나를 지키고 있다. 내 가족들이.
자식을 키운다는 건 인생을 다 갈아 넣는 거라는데 내가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렵고 힘든 것 같다. 나만 해주는 건 없다. 다들 하고 있을 뿐이다. 그 자리에서 다 지 삶을 살고 있다. 같이 사이좋게 살면 그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