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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Mar 17. 2023

혼자가 아닙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외향적인 사람을 부러워했던 지난 시절에는 나의 내향성을 애써 부정했다. 육아 6년 차에 접어든 지금의 나는, 원래의 나를 되찾은 기분이다. 외향성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내향적인 나를 받아들이고 그런 나를 조금씩 인정하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아이 둘을 보는 육아도 꽤 괜찮고, 엄마랑 친구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환경에 처한 것도 나름 괜찮고, 만날 사람과 찾아갈 곳이 딱히 없다는 현실도 견딜만하다.


커피를 마시지 않던 내가 아메리카노를, 그것도 시럽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게 되었으며 카페에 가는 일은 내 삶의 유일한 일탈이다. 카페에서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내 안의 여러 생각과 감정의 소리에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의 대화 소리, 노트북 키보드 치는 소리,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내 귓가에 다가올 때가 있다. 그때, 나는 뜻밖의 감정에 놀라곤 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 이름 모를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안도감이 커피 향처럼 은은하게 나를 감싼다. 아무리 혼자가 좋다 해도, 나 혼자 사는 것을 자랑하는 문화여도 우린 어느 때고 찾아오는 외로움을 피할 순 없다.



나는 오늘 한 기사를 보고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유서에 관리자의 갑질을 토로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이 근무했던 아파트에 추모 현수막이 걸렸으나 주민들의 항의로 제거됐다... 이 아파트의 한 관계자는 "집값이 내려간다는 주민의 항의가 빗발쳤다"며...


가족과 친구들, 나를 잘 아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이름 모를 사람들과 내 곁에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으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너와 내가 상관이 없다 해도, 너와 내가 다르다고 해도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그래서 우린 서로 이해하고 돌아보며 도우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배웠으며 그렇게 가르친다. 아이들은 환경미화원 이모님에게도, 경비 아저씨에게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고 누군가를 비하하고 무시한다. 누군가의 죽음보다 집값이 더 중요한 것이다. 큰일이다. 무서운 일이다. 집값이 떨어지고 오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보고 배울 오르고 싶은 어른들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내가 카페에서 외로움을 달랠 때, 이름 모를 경비원 아저씨는 죽음을 선택했다. 나는 누군가의 외로움과 고통 앞에 집값을 따지는 무서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쓴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차려본다. 나도 얼마나 많은 이들을 향해 '저렇게 되지 말자'는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왔으며 '집값'을 걱정하는 태도로 살아왔던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면, 그건 아주 보잘것없는 일이 아니라 지금 내가  수 있는 가장 큰 용기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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